말해지지 않은 것들,
글을 쓰지 않을 때는 읽었다. 쓰지도 읽지도 않을 때는 창밖을 바라보며 상념에 빠졌다. 저기 어딘가 삶이 있었다. 나는 그렇게 믿었고, 글쓰기가 나를 그곳으로 데려가주었다.
대니 샤피로 『계속 쓰기: 나의 단어로』
아직 어린, 자신과 주변의 것에 대해 어떤 확신도 가지지 못했던 시절부터 나는 책 속의 글이 보여주는 세상을 보았다. 그것은 진실 혹은 사실의 문제가 아니다. 더 많은 세상의 내용들을 습득하는 것과는 관련이 없다는 얘기를 하는 것이다. 그저 글 안에는 언제나 새로운 세상이 있었고, 그것들을 읽는 순간 '반짝' 내 안의 어딘가에 짧은 섬광이 비치는 것 같았다. 내게만 비밀스러운 작용을 일으키는 그 일은 제법 긴 학창 시절에 들어서며 끊긴 듯 짧게 짧게 이어지다, 대학에 입학하고 드디어 온 시간이 통째로 내 앞에 놓였을 때 다시 폭발하듯 되살아나기 시작했다. 이후로 '책'과 '읽기'를 놓은 적이 있었던가. 없었을 것이다.
온라인 카지노 게임 쓰는 행위에 대해 이야기하려니 역시 읽는 행위로 돌아가게 되었다. 쓰게 된 것은 읽었던 것과 깊이 연결되기 때문이다. 내가 무언가를 기록하거나 쓰고자 했을 때. 그것은 내가 무수한 무언가를 읽어왔던 행위에 맞닿아 있었다. 타인의 글이, 어디선가 펼쳐든 여백의 공간에 빼곡히 적힌 글이, 단단한 세상이 되어 확실한 형태를 지닌 채 늘 위태하게 부유하던 내게로 왔다. 내게 세상은 호기심과 온갖 의구심이 가득 찬 질문의 대상이었음에도 글을 읽을 때면 그 실체가 느껴졌다. 내 망상 속에서의 위안이었을지 모른다. 하지만 난 글을 읽을 때만이, 이것이구나, 이런 생각과 감정이 존재하는구나, 하며 세상의 단단한 물성을 느낄 수 있었다. 그때부터 내가 지금 알아야 할 것, 관심이 향하는 주제 별로 도서를 검색해 읽게 된 습성이 생긴 것일지 모른다. 시시각각 검색 창에 키워드와 주제어를 써넣고는 떠오르는 책 목록들을 죽 훑어본다. 단단하게 존재하는 세상을 보기 위해서.
우리는 누구를 위해서 쓸까? 친구나 적, 아니면 전 애인? 가족? 넓은 독자층? 자기 자신? 온라인 카지노 게임 쓸 때 머릿속에서 사람이 많을수록 온라인 카지노 게임 완성할 수가 없어진다. 머릿속에서 바빠질 뿐이다. 출퇴근 시간에 사람들로 꽉 찬 지하철을 타고 있는데 아무도 서로 눈을 마주치지 않고 그저 문이 열리기만 기다리는 기분일 것이다. 그래서 나는 단 한 명의 독자를 위해 온라인 카지노 게임 쓴다고 말했던 커트 보니것의 충고를 귀하게 여기고자 한다.
나는 늘 한 사람의 독자를 특정하고 온라인 카지노 게임 쓴다.
……
내 문장 하나하나가 애원 같았다. 제발 나를 이해해 주세요.
대니 샤피로 『계속 쓰기: 나의 단어로』
다른 이의 글을 읽으며 세상의 물성을 비로소 느낀 나는 '왜', '어느 순간부터', 나의 글을 쓰고 싶었을까. 내 안의 무엇이 점점 단단해져 갔다고, 그렇게 밖에는 설명할 수 없다. 내 것도 단단해졌으니, 누군가에게 단단한 세상을 보여줄 수 있는 것 아닐까. 여러 사람이 아닌 단 한 사람에게라도 '이런 세상―이런 현상, 이런 생각, 이런 감정, 이런 삶의 영역, 이런 사람'이 있다는 것을 전해주고, 누군지 모를 그 사람은 흐릿하게 의구심을 가지던 세상의 한 부분을 우연히 나로부터 확신하게 되는 것. 그 일이 일어나면 좋겠다. 그런 생각을 했다.
아니, 아니다. 깊이 들여다보니 이런 의도도 충분히 가능하다. 나도 드디어 세상의 다양한 생김새를 보여주고 싶다는 어설픈 욕망은―내가 수많은 글을 통해 누려왔듯이 다른 이에게도 내가 적어 내려 간 글이 불현듯 어떻게 작용할지 모른다는 희망이 바탕이 된―, 내 안에 단단해져 가는 것들을 뱉어내 나라는 존재를 세우고 설명하고 이해받고자 함은 아니었을까. '이런 세상'도 있다는 것을 이해해 주세요. '저는 이런 사람입니다.' 결국 작은 확신을 나누고, 작은 이해를 구하기 위해서라면, 어느 누구든 글을 써도 좋다고 말하고 싶다.
대단히 거창하게 들리겠지만, 자기 자신에 관해 생각하고 글을 쓰는 것이 직업인 경우에는 억지스럽고 어이없을 정도로 스스로를 대단하게 평가하는 것이 우선이다. 그래야만 한다. 그렇지 않다면 나는 아예 글을 쓰지 않았을 테니까. 온종일 인터넷 서핑만 했을 테니까.
세라 망구소 『망각 일기』
하지만 쓰고 표현해 보려는 욕망이 생겨나고 그것을 받아줄 대상을 떠올리며 짧은 글을 만들어내는 이 모든 과정이 쉽지만은 않다. 매우 부끄럽고 용기가 필요한 일일지 모른다. 항상 다른 이들의 말에서 확신의 힘을 빌리던 내가 누군가에게 말을 건네기 위해서는 말이다. 수첩에 적어두는 일기의 한 두 구절이 아닌 이상, 분명 나는 누군가를 향해 말을 건네는 중인 것이다. 용기를 가지기 위해 끊임없이 스스로에게 되뇐다. 내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고유한 나만의 것이다. 아직 세상에 말해지지 않은 것들. 고유한 모든 것은 가치롭다. 나의 유일무이함으로 세상은 또 다른 확신과 이해를 구할 수 있다. 계속 반복해 나에게 들려주어야 할 주문이다.
무엇보다, 당연하게도, 가장 먼저 할 일은 쓰는 것이다. 그런 다음에는, 쓰는 것을 계속해나가야 한다. 그것이 누구의 흥미를 끌지 못할 때조차. 그것이 영원토록 그 누구의 흥미도 끌지 못할 것이라는 기분이 들 때조차. 원고가 서랍 안에 쌓이고, 우리가 다른 것들을 쓰다 그 쌓인 원고들을 잊어버리게 될 때조차.
아고타 크리스토프 『문맹』
오랜 시간 축적된 이 욕망이 단발적인 행위로 그치지 않고 계속해 쓰기 위해 결국 그 실체를 한 번 더 아고타 크리스토프의 글에 빚졌다. 그녀의 언어에 맺힌 확신에 힘입어, 나는 다시금 쓰는 일에 대한 상념을 견고히 한다. 그래, 이런 거지. 쓴다는 것은 이런 일이지. '그것이 누구의 흥미를 끌지 못할 때조차. 그것이 영원토록 그 누구의 흥미를 쓸지 못할 것이라는 기분이 들 때조차.' 무한한 우연을 가장한 채 내 안의 솟구치는 욕망을 천천히 바라보면서 한 자 한 자 적어본다. 무엇이 될지 어디로 가게 될지도 모르지만 '세상에 대한 나만의 확신과 이해를 풀어놓겠다'는 최초의 씨앗이 움튼 이후부터 나는 글을 쓰게 되었다.
말해지지 않은 것들.
나는 그걸 말하려고 인생을 바치고 있다.
그것은 내 것이다.
대니 샤피로 『계속 쓰기: 나의 단어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