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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종인 Apr 14. 2025

<쇼코의 카지노 게임 단평

슬프고 우울한 이야기 밑바닥에서 피어나는 희망

카지노 게임


<쇼코의 카지노 게임는 최은영 작가의 단편소설집으로, 동명의 단편인 '쇼코의 카지노 게임'를 포함한 총 7편이 책에 수록되어 있다.

원래 필자는 단편소설은 그리 좋아하지 않는다.

짧은 서사를 가지고 있다 보니, 그 감정선이 상당히 얕아 몰입하기가 힘들었다. 그리고, 겨우 이야기에 몰입하려고 하면 이야기가 끝나버리는 경우도 많았다.

그러던 중, 주변 카지노 게임의 추천으로 이 책을 읽게 되었다.

첫 단편인 <쇼코의 카지노 게임는 썩 와닿지 않는 내용이었다.

그래서 두 번째 단편은 거의 기대를 하지 않고 읽었는데, 이 단편부터 책의 내용이 확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책의 메인 키워드


이 책의 키워드는 '관계의 단절'이다.

단편에 출연하는 인물들은,모두 이전부터 긴 시간 동안 맺어온 소중한 관계를 가진다는 공통점이 있다.

하지만, 그들은 모두 우연한 계기로 그 관계의 단절을 겪는다.

관계가 단절되는 방식은 다양하다. 시간이 흐르면서 자연스럽게 멀어지기도 하고, 누군가의 갑작스러운 한마디로 인해 끊기기도 하며, 때로는 한국 사회에서 일어난 여러 역사적 사건들로 인해 단절되기도 한다.

그런 일들은 기다릴 여유조차 주지 않고, 소중한 카지노 게임을 앗아간다.

소중한 이들을 잃었다고 해서, 끊어진 관계로 깊은 상처를 입었다고 해서, 세상은 결코 그들을 기다려주지 않는다. 그럼에도 카지노 게임은 그 상처를 끌어안은 채 살아가야 한다.


카지노 게임은 어떻게 그런 일들을 없었던 것처럼 쉽게 쉽게 묻어버리고 계속 앞으로 나아가는 건지. 그래서 그 앞에는 뭐가 있는 건지. 그 앞에 뭐가 있기에 사람이 사람에게 저지른 짓들을 없었던 일인 것처럼 잊은 채 살아가야 하는 건지. (본문 111 페이지中)
이십 대 초반에 엄마는 삶의 어느 지점에서든 소중한 카지노 게임을 만날 수 있으리라고 생각했다. 어린 시절에 만난 인연들처럼 솔직하고 정직하게 대할 수 있는 얼굴들이 아직도 엄마의 인생에 많이 남아 있으리라고 막연하게 기대했다. 하지만 어떤 인연도 잃어버린 인연을 대체해 줄 수 없었다. (본문 115 페이지 中)



짧은 감상


<쇼코의 카지노 게임 뒷부분에 실린 평론에서는 이 책을 '순하고 맑은 서사의 힘'이라고 평하고 있다.

참 희한하다. 이야기는 너무 슬프고 우울한데, 이 책을 읽다 보면 절망 속으로 가라앉기보다, 일어나서 어떻게든 세상을 살아가야 할 것 같은 힘을 얻는다.

그 이유는, 이 슬프고 우울한 이야기 밑바닥에 남아있는 희망이, 정말로 큰 힘을 주는 희망이어서가 아닐까.

행복하고 깨끗한 세계 속아무런 고난을 겪지 않고 자란 희망의 나무보다는, 우울한 세계에서 온갖 수난을 겪고도 자라난 희망의 새싹이 더 가치 있지 않은가.

<쇼코의 카지노 게임는 고난을 겪고도 살아가고자 하는 사람들의 의지, 그리고 그런 이들이 서로를 보듬을 때 피어나는 연대와 희망을 고스란히 우리에게 전해준다.



순결한 꿈은 오로지 이 일을 즐기며 할 수 있는 재능 있는 이들의 것이었다. 그리고 영광도 그들의 것이 되어야 마땅했다. 영화는, 예술은 범인의 노력이 아니라 타고난 자들의 노력 속에서만 그 진짜 얼굴을 드러냈다.(본문 34페이지 中)


이는 첫 단편 <쇼코의 카지노 게임에서 주인공이 영화감독으로 입봉 하지 못하고 재능의 벽을 느낄 때, 나오는 서술이다.

위 인용한 여러 가지 문장들을 보며, '재능과 경험의 차이'를 한번 더 실감했다.

요새 글을 이것저것 많이 쓰기도 하고, 브런치 작가도 되면서 어깨가 한껏 올라간 상태였다.

그런데이런 출중한 능력을 가진 작가분도 30세가 되어서야 겨우 출판 세계에 등단했다는 사실을 알고 나니, 현실은 그리 만만치 않음을 다시 한번 깨닫는다. 나는 헛바람만 잔뜩 들었던 모양이다.

앞으로도 계속, 계속 수련이 필요하다는 걸 느끼며, 글을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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