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가 외출하면 나는 무서운 선생님으로 변신한다. 분홍색 카지노 쿠폰와 함께.
선우는 색칠공부를 좋아한다. 알록달록, 여러 가지 색의 크레파스로 공룡을 색칠하고 있다. 빨강, 노랑, 파란색 구분도 못하면서.
“선우, 여기 공룡 꼬리 빨간색으로 색칠해 봐.”
선우는 고개도 들지 않고, 손에 쥐고 있던 연두색 크레파스로 공룡 머리를 색칠한다. 하아, 안 되겠네. 옆에 있던 분홍색 카지노 쿠폰를 손에 들었다. 카지노 쿠폰 꽁무니를 바닥에 내리쳤다.
“선우, 빨, 강, 색. 빨간색으로 여기 색칠해.”
이번에도 선우는 내 말을 무시하고 자기 마음대로 색을 칠한다. 말 안 듣는 어린이는 혼나야지. 다시 분홍색 카지노 쿠폰 끝으로 바닥을 힘껏 내리쳤다. 탁, 탁. 조금 시원한 기분이다.
“쓰읍. 선우, 안 되겠네. 그만하고 누나 봐봐. 빨리.”
내 말은 선우의 귀에 들리지 않나 보다. 어느새 초록색 크레파스를 손에 든 선우는 계속해서 색칠만 하고 있다.
“색칠 그만해.”
초록색 발을 갖게 된 공룡 그림을 홱 잡아챘다. 선우의 작은 손과 함께 방바닥에 진한 초록색 선이 그려졌다. 그제야 선우는 손을 멈추고 고개를 들었다. 언제나처럼 나를 봐주진 않지만.
“선우, 누나 봐봐. 이게 빨간색이야. 빨, 강, 색.”
크레파스 통에 빨간색 크레파스를 내려놓았다. 선우에게 다시 빨간색 크레파스를 잡으라고 했지만 선우는 멀뚱멀뚱 내가 뺏은 공룡 그림만 보고 있었다. 또다시 탁, 탁. 나는 카지노 쿠폰를 더욱 세게 바닥에 내리쳤다.
“임선우! 누나가 빨간색 크레파스 잡으라고 했지! 너 색깔 몰라서 엄마가 맨날 너 데리고 멀리 유치원 가잖아!”
선우가 조그만 입술을 삐죽거린다. 웃지도, 울지도 않는 선우의 작은 표정이다. 아, 귀여워.
원래는 더 혼내야 했는데.
너 때문에 나는 학교 끝나면 집에 못 간다고, 앞집에 가 있어야 한다고 혼내야 했는데. 그런데 나도 모르게 선우를 끌어안았다. 방 안을 가득 채운 크레파스 냄새가 우리 둘을 끌어안았다.
“선우야, 누나가 미안해.”
나는 분홍색 카지노 쿠폰를 저 멀리 던져버렸다.
빨강, 노랑, 파랑을 몰라도 귀여운 내 동생.
웃지도 않고, 울지도 않지만 입술을 삐죽이는 모습이 귀여운 내 동생.
참 신기한 일이다. 어렸을 적 엄마한테 카지노 쿠폰로 혼난 적이 없는데, 왜 난 카지노 쿠폰를 들고 선우를 혼냈었는지 알 수가 없다. 누가 가르쳐준 것도 아닌데, 그렇게 혼내는 걸 본 적도 없는데. 정말 신기한 일이다.
이게 장녀의 본능이었을까? 엄마가 잠시 외출을 하면 그렇게 카지노 쿠폰를 잡고 선우를 가르쳤다. 자폐 스펙트럼을 가진 선우가 색깔 구분을 못하는 걸 알고도 그랬는지, 정말 내가 가르칠 수 있다고 믿고 그랬는지는 잘 모르겠다. 분명한 건, 어린 마음에 엄마에게 서운한 걸 선우에게 풀었던 것 같다.
어른들이 말한 ‘네가 선우를 챙겨야 한다’는 게, 선우를 혼내고 겁주라는 건 아니었을 텐데. 나도 모르게 엄마가 없으면 내가 엄마 대신, 선우의 보호자라고 생각했었나 보다.
어른이 된 선우는 지금도, 내가 순간 선우를 이해하지 못하고 짜증을 내면 입을 삐죽거린다.
마음이 여린 아이, 선우.
그래서 나는 더 불안하다. 그리고 더 두렵다. 여린 선우가 차가운 세상의 시선에 상처받을까 봐. 내가 지켜주지 못하는 순간, 누군가 그 마음을 짓밟을까 봐.
마음이 여린 어른이 되어버린 선우.
나는 너를 어떻게 보호해야 하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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