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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돌뭉치 Apr 17. 2025

11. 현실판 카지노 게임 사이트

괴발자 모드 속 열한 번째 이야기

레오 리오니 작가의 『프레드릭』을 처음 읽었을 때는 어쩜 저런 베짱이가 있냐고 생각했다. 다들 열심히 일할 때 앉아서 색을 논하다니, 일개미 처지를 대변하는 나로서는 이해되지 않았다. 물론 빛을 탐할 수는 있지만, 생계를 먼저 해결해야 한다는 인식이 강했다. 이 책에 관해 사람들과 의견을 나누다 보니 다양한 생각과 마주할 수 있었다. 그래서 다시 읽어보았다. 두 번째 읽은 감성으로 동화책을 소개한다.


너른 풀밭에 들쥐 가족 다섯 마리가 등장한다. 카지노 게임 사이트도 구성원 중 하나이다. 카지노 게임 사이트은 유일하게 본인의 이름으로 불린다. 겨울이 오기 전, 카지노 게임 사이트을 제외한 네 마리 들쥐는 식량을 모으기 위해 열심히 일한다. 가만히 있는 카지노 게임 사이트에게 가족들은 뭐 하냐고 묻지만, 왜 일하지 않냐고 질타하지 않는다. 나머지 가족들이 그의 행동을 지지하는지 아닌지는 알 수 없지만, 가만 내버려 둔다. 추위가 깊어지면서, 들쥐 가족이 준비한 식량도 바닥나고 그들은 의욕을 잃는다. 이때 카지노 게임 사이트은 자신이 그동안 모았던 경험을 생생하게 묘사하면서 그들의 감각을 되살려준다. “카지노 게임 사이트, 넌 시인이야!” 그들은 찬사를 보낸다. 카지노 게임 사이트에게 이런 가족이 없었다면 시인이 될 수 있었을까.


애초 주인공에 대한 내 감정은 부정적이었다. 토론을 마치고 나서는 과연 내 생각이 맞는지 의심하기 시작했다. 재독한 이후 나의 소회는 완전히 바뀌었다. 지금의 카지노 게임 사이트을 만든 것은 든든한 가족 덕분이다. 특히, 불투명한 미래에 대한 주변인들의 지원은 중요하다. 옆에서 꼭 말해야 응원이 되는 것은 아니다. 너를 믿고 기다려야 주겠다는 눈빛 하나만으로도 큰 힘이 될 수 있다. 나는 그렇게 카지노 게임 사이트의 들쥐 가족에게서 든든한 연대감을 보았다.


여기 현실판 프레드릭이 존재한다. 그녀는 개발자이고, 누워있는 것을 좋아한다. 물욕이 없었으면 프레드릭과 비슷한 삶을 살았을 텐데, 카드 청구서의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해서 사계절 내내 일한다. 일단 지르고 뒷수습하기를 선호해서, 프레드릭처럼 가족의 조건 없는 지지가 무척 소중하다. 돌뭉치의 가족은 미호씨, 꿈꾸는 낙타 이렇게 세 명이다. 상은씨는 몇 해 전 제2의 프레드릭을 꿈꾸며 우주로 갔다.


집에 우렁각시가 왔다 갔다. 퇴근하고 문을 여니 산뜻한 향기가 코끝을 찌른다. 우리 엄마 미호씨는 전철 첫차를 타고 와서 이불 빨래를 하고, 나와 마주칠세라 얼른 도망간다. 나와 만나게 되면 저녁도 같이 먹고 어영부영하다 나의 잘 시간이 늦어질 것을 걱정해서이다. 그녀는 대단하다. 평생을 딸에게 폐를 안 끼치는 일관된 신념으로 살고 있다. 엄마 공연 볼까요? 거기 갈까요? 물을 때마다 한 번에 승낙한 적이 없다. 다 괜찮다고, 비싸다고 거절한다. 장성한 딸을 둘이나 키워놨으면 이제는 부려 먹을 법도 한데, 전혀 그러지를 않는다. 나쁜 심보는 딸만 가졌나 보다. 그 따님은 어떻게 서든 엄마를 괴롭히려고 일을 만든다. 떼인 돈 받아준다는 악덕 채무자처럼 엄마 집만 가면 누워서 꼼짝 안 한다. 그녀는 법 없이도 살 것처럼 고운 심성을 가졌지만, 악한 여식을 만나 육십여 년 평생 걱정만 하며 산다. 비가 오면 전날에 우산 가져가라고, 날씨가 추우면 패딩 입고 가라고 문자를 보낸다. 요즘 미호씨에게 새로운 걱정거리가 생겼다.


작년에 집에 에어컨이 고장 났다. 8월 중순, 엄마 집에서 긴 연휴를 보내고 온 이후로 에어컨만 틀면 두꺼비집의 차단기가 나갔다. A/S도 받기 힘든 한 여름인지라 어쩔 수 없이 선풍기로 버텼다. 그 에어컨은 원래 살던 집사람으로부터 산 것이어서, 고칠 방도를 물었으나 정비 서비스를 받는 수밖에 없었다. 가을이 시작될 무렵 수리기사가 방문했다. 원인은 본체와 실외기를 연결하는 배관 문제라서 공사를 해야 한단다. 구매한 에어컨으로 한 계절도 보내지 못한 터라 그 사람에게 연락했고, 몇 번 쓰지 못했으니 흔쾌히 자신이 반을 부담하겠다고 했다. 그래서 견적서를 전달했는데, 갑자기 입장이 돌변했다. 본인에게 책임이 없으니 돈을 낼 수 없다고, 실랑이하다 그녀는 전화를 끊었다. 그렇게 해가 바뀌는 내내 딸자식의 다가올 여름을 걱정하며 지내다 에어컨 수리기사를 다시 초대했다. 진짜 대단한 미호씨는 무상으로 이 문제를 해결했다. 맙소사! 상은씨가 떠난 이후로 내가 그녀의 보호자가 되어야 하는지 걱정했는데, 역시 엄마다. 감히 누구의 보호자가 될쏘냐. 한없이 작아진 마음으로 미호씨를 우러러본다.


※ 안내: 미호씨, 상은씨의 대한 소개는 목차 『3. 뿌리를 찾아서』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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