괴발자 모드 속 열여덟 번째 이야기
방학 때마다 서울 이모 집에 다녀오는 날이면, 카지노 쿠폰는 창원역 기차 앞에서 우리를 마중 나왔다. 엄마는 꼬맹이 둘을 데리고 어마어마한 짐을 자랑하며 기차에서 내렸다. 카지노 쿠폰는 그런 엄마의 모습에 항상 놀랐다. 우리는 그렇게 이고 지고 역 앞에 있는 임진각 식당으로 갔다. 왜 이름이 강원도에 있는 임진각인지 모르겠는데, 이번에 인터넷에서 검색해 보니 아직도 그 상호를 가진 음식점이 있다. 일요일 저녁 온 가족이 둘러앉아 바싹 불고기를 먹었다. 집밥을 좋아하는 카지노 쿠폰 덕에 우리 가족은 밖에서 식사를 거의 하지 않았는데, 불고기와 보리밥은 예외였다. 그렇게 밥을 다 먹고 나면 카지노 쿠폰 뒷주머니에서 지갑이 꺼내졌다. 우리 집의 결제는 항상 엄마 담당이었는데, 이날만큼은 카지노 쿠폰가 한턱을 냈다. 우리의 환영 만찬이면서, 카지노 쿠폰의 자유 고별식이기도 한 그 의식이 카지노 쿠폰의 지갑에서 마무리가 됐다.
세월이 흘러 우리 가족은 서울로 이사했다. 여러 차례 카지노 쿠폰의 회사도, 지갑도 모두 바뀌었다. 엄마는 새 지갑이 필요하다며 인터넷에 적당한 지갑을 사달라 했고, 나는 가성비 좋은 상품을 구매했다. 가죽이니 오래 쓰겠지, 상표는 별로 중요하지 않다면서 말이다. 그 지갑으로 교체되기 한참 전부터 카지노 쿠폰는 기억을 잃는 병과 사투 중이었다. 사람들은 그 병을 치매라고도 부른다. 엄마는 연락처가 담긴 빳빳한 종이를 현금 몇 장과 함께 지갑 안에 넣어두었다. 다소 불편하기는 해도 출퇴근하는 일자리가 있었을 때 카지노 쿠폰의 병세는 심하지 않았다. 일 처리가 점점 어려워지면서 카지노 쿠폰는 직장을 그만두었고, 증세는 더욱 악화하였다. 규칙적으로 집을 나가는 루틴에서 방에 머무르는 일상으로 바뀌다 보니, 지갑은 더 이상 필요가 없어졌다.
코로나19 백신 접종을 맞고 집에서 며칠간 쉬었다. 카지노 쿠폰는 산책을 다녀와서 나에게 쿠킹포일에 쌓인 핫도그를 건넸다. 다소 쌀쌀한 날씨 탓에 식어버린 소시지를 몇 점 베어 물고는 식탁에 그냥 두었다. 아마 나머지는 엄마가 버렸을 것이다. 당시 카지노 쿠폰의 병세로는 계산도 꽤 힘들었을 텐데, 나는 그런 수고는 생각도 하지 않은 채 살찐다고 튀김은 안 먹는다며 구시렁거렸다. 평생을 회사원으로 살다가 은퇴한 카지노 쿠폰는 한동안 방황했다. 공장장, 법인장까지 지냈으니 나름대로 성공 가도를 달렸던 분인데, 집에 있는 카지노 쿠폰를 보니 맘이 불편했다. 나이 듦과 동시에 은퇴는 당연하지만, 매일 출근하다 방에 있는 카지노 쿠폰를 보니 어색했고 원래도 말 없는 딸은 더 무뚝뚝해졌다. 그러는 와중에 카지노 쿠폰가 사다 준 핫도그, 이제 핫도그도 카지노 쿠폰도 없고 지갑만 남았다.
카지노 쿠폰는 몇 해 전 우리 곁을 떠났다. 아직 멀쩡한 지갑을 두고 말이다. 돌이켜 생각해 보면 내가 더 ‘왕년의 카지노 쿠폰’ 모습을 그리워한 것 같다. 오히려 두 분은, 엄마는 나이가 들고 카지노 쿠폰는 어려지는 현실을 마주하고 꿋꿋이 버텼다. 철부지 없는 나만 실상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어린 카지노 쿠폰에게 모질게 굴었다. 엄마는 카지노 쿠폰에게 한글을 배울 때 사용하는 단어 카드를 공부시키고, 대학병원으로 열심히 진료받으러 함께 갔다. 하지만 차도가 없었고, 어느 시점부터는 약도 잘 듣지 않았다. 그러고는 길게 고생하지 않고 카지노 쿠폰는 우주로 갔다. 말이 통하지 않는 지구보다는 우주가 카지노 쿠폰한테 더 나으리. 어쩌면 남들과 소통하지 못해서 더 아프지 않았냐는 생각이 든다. 일주일 내내 약속이 많았던 카지노 쿠폰에게 방구석 생활이 얼마나 고통스러웠을까. 비록 나는 카지노 쿠폰가 계산한 바싹 불고기와 핫도그를 먹을 수 없지만, 우주에서 한턱내는 모습을 상상해 본다, 카지노 쿠폰 지갑을 보면서.
※ 안내: 핫도그 이야기는 목차 『6. 기억을 잃은 핫도그』에도 소개한 적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