괴발자 모드 속 여덟 번째 이야기
30년 넘게 몸에 근육을 간직하고만 살았다. 그러다 5년 전, 집 앞 필라테스 강습소가 문을 열면서 오픈 특가로 등록하였다. 당시에는 필라테스가 인기를 끌던 시기라, 한번 해볼까 하는 생각에 시작하였다. 역시나, 30년 넘게 묵힌 근육이 움직일 리가 없다. 이렇게 몸이 뻣뻣할 수 있을까. 다행히도 그룹 수업이어서 강사님이 다른 사람을 지도할 때 한숨 돌리면서 버틸 수 있었다. 이것이 단체 수업의 묘미다. 운동을 시작하면 바로 몸짱이 될 줄 알았는데, 변화가 전혀 없었다. 오히려 안 쓰던 힘줄을 사용해서 통증만 커졌다. 그래도 곧 바뀔 거라는 기대감만 키우다, 코로나를 만났다. 그동안 만났던 바이러스 중 가장 센 놈이다. 덜컥, 강습소가 문을 닫았다. 며칠만 쉬겠지 했는데, 한 달 넘도록 열지 못했다. 그 와중에 회사도 재택근무로 전환했다. 출퇴근이 사라지니 활동량이 줄면서, 몸은 더 쑤시고 살은 더 붙었다. 이래서는 안 되겠다고 결심하고, 운영 중인 강습소를 찾던 중 근처 조그만 점핑 학원을 발견했다. 필라테스보다 수업 인원이 적어서 감염 걱정은 덜 했는데, 유산소 움직임이다 보니 근육량에 변동이 없었다. 그래서 큰마음먹고 PT를 시작했다. 그래, 역시 운동은 헬스지! 하고 시작한 게 벌써 3년 차다.
5년의 총 기간 중, 필라테스를 1년 넘게 하고 점핑을 반년, 나머지 기간은 헬스로 채웠다. 헬스의 매력은 여기서 나타난다. 필라테스와 점핑은 그룹 수업으로 받았으니, 중간중간 딴생각도 가능했다. 하지만, 1:1 코칭은 다르다. 50분 내내 PT 강사님이 나에게만 집중하시니, 잡념은 어림도 없다. 쉬는 시간도 워치로 1분, 2분 쟤면서 레슨을 재개한다. 스파르타식으로 3년 동안 받고 나니, 드디어 변화가 나타났다. 헬스를 시작하고 처음 1년은 오히려 살이 찐 것 같다. 이만큼 움직였으니 먹어도 된다는 보상 심리가 작동했기 때문이다. 그다음 1년은 체중이 줄었다가 늘기를 반복했다. 운동뿐만 아니라 식단의 중요성을 깨달은 시기이기도 하다. 그래서 점심을 샐러드로 연명하면서 올라간 몸무게를 끌어내렸다. 마지막 1년 그리고 최근까지, 헬스를 시작한 지 3년 차에 들어오니 살이 쭉 빠지다가 어느 적정선에서는 많이 먹어도 찌지 않는다. 호주에 있는 동생집에서 한동한 폭식할 때도 체중계의 변동이 없었다. 장고의 결실이 이제 나타나나 보다. 홀쭉해진 뱃살을 보면 즉시 체감한다. 며칠 전 받은 건강검진의 인바디 결과에서는 대학생 때 무게로 돌아가 있었다. 진짜 안심이 된다.
몸무게의 정점을 찍고 나니, 운동하는 저자에 대한 관심이 커졌다. 황석영 작가는 “소설을 엉덩이로 쓴다"라고 인터뷰했다. 여기 소설을 카지노 게임 위해 체력을 기른 또 다른 창작가가 있다. 『상실의 시대』로 유명한 무라카미 하루키이다. 이름만 들어도 대부분 알 것이다. 특히, 읽어봐야겠다고 결심하게 된 이유는 제목에 있다. 『달리기를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 표제를 문장처럼 길게 풀어썼다. 일본어 번역이 잘못된 건가 싶어서, 밑에 쓰인 영어를 읽어봤는데도 직역한 그대로이다. 『What I talk about when I talk about Running』이 또 다른 제목이다. 얼마나 진실되게 말하고 싶었으면, 이렇게 꾸밈없이 이름을 지었을까. 내가 아는 한 제목은 글 전반을 대표하면서도 호기심을 가질 수 있도록 엄청난 내공을 들여서 지어야 하건만, 작가는 진짜 담백하게 썼다. 마치 본인이 진짜 하고 싶은 말을 쓰려는 것처럼 느껴져서 책을 펼쳤다.
무라카미 하루키 작가가 마라톤을 하기 시작한 이유는 소설을 잘 쓰기 위해서였다. 글을 건강하게 오래 잘 쓰려면 체력이 뒷받침해 줘야 한다. 당시 저자의 생활 여건상 쉽게 시작할 수 있는 게 달리기였고, 그것이 마라톤으로 이어진 것이다. 이 책에서 인상 깊은 대목은 키워드 세 개와 한 개 구절이다. 글을 쓰기 위해서는 재능과 집중력, 지구력이 필요하다. 이 기준에서 보면, 나에게 소설을 쓸만한 재능은 없다. 그러면 소설 아닌 글을 쓰면 된다. 집중력과 지구력은 누구보다 자신 있다. 무라카미 하루키 작가가 마라톤을 한다면, 난 일주일에 2회 헬스 하면서 주의력과 지속 가능한 체력을 기르고 있다. 이제 열심히 쓰는 일만 남았다. 여기서 중요한 대목은 페이스 조절을 잘하라는 것이었다. 오늘 너무 잘 써진다고 무리하면, 내일 슬럼프가 올 수 있단다. 마라톤도 그렇고 글카지노 게임도, 하물며 인생까지 비슷한 것 같다.
책의 제일 마지막 장에는 무라카미 하루키 작가가 희망하는 묘비명의 문구가 쓰여있다. 이름과 함께 직업을 나타내는 작가 옆에 러너를 넣고 싶다고 했다. 그러면서, “적어도 끝까지 걷지는 않았다”라고 쓰이기를 바라고 있었다. 나도 묘비명 문구를 적어본다. 돌뭉치 개발자 그리고 이상한 작가, 적어도 세상을 똑같이 바라보지는 않았다. 그리고 이틀에 한 번, 오늘도 독자와의 약속을 지켰다, 엉덩이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