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에서 방향을 잡는 것과 인생이 한 방향으로 나아가아먄 된다고 믿는 집착은 다르다.
돌이켜보면 나는 내가 어떤 특정한 사람이 되어야만 한다는 착각속에서 살아왔다. 내가 원하는 특정한 인물상을 그려놓고, 나를 그런 사람으로 보지 않는 사람들을 혐오했다. 어쩌면 그런 행위는 나 자신이 원하는 인물상에 미치지 못해 보이는 나 자신을 혐오한 것에 불과할 수도 있다. 삶에서 방향을 설정하는 것은 내가 무언가에 몰입하게 된다는 점에서는 도움이 되지만, 삶이 꼭 내가 원하는 방향으로 가야만 한다는 생각은 나 자신의 성장 뿐 아니라 타인과의 관계에서도 방해가 되는 경우가 많았다.
중국 항저우에서 박사과정을 마치고 쑤저우의 국제카지노 게임에서 경제를 가르치기 시작했다. 당시에 중국에서 카지노 게임 선생님을 거의 처음 시작했을 시기라서 많은 것들이 생소했다. 당시에 카지노 게임 선생님으로서 강단에 올라 학생들을 가르친다는 것은 너무나도 가슴 벅찬 일이었다. 워낙 초짜다 보니 참 많이도 부족했지만, 내가 공부한 것을 누군가에게 가르칠 수 있다는 사실이 마냥 좋았다. 더군다나 나는 거짓말을 못 하는 성격이라 학생들이 나를 진심으로 좋아해 주었다. 학생을 가르치는 일을 좋아하고 아이들에게도 잘 해주니 카지노 게임에서도 처음 치고는 나름 나쁘지 않은 평가를 얻게 되었다. 카지노 게임 선생님으로서 처음 스타트가 좋았던 셈이다.
1년차 까지는 별 문제없이 지냈다. 학생들도 나를 많이 좋아해 주었고 나도 그들과 좋은 관계를 유지했다. 하지만 이년차에 접어들면서 약간의 문제가 생겼다. 결정적으로 문제가 되는 부분은 학생 관리였다. 이는 아마도 대부분의 선생님들이 겪는 문제일 것이다. 고등학생 시기에는 심리적으로 안정적이지 못하다. 개중에도 특히 심리적인 문제가 많은 학생들의 경우에는 다루기 쉽지 않았다. 인생에 대한 희미한 개념조차 없던 나의 고등학생 시절을 돌이켜보면 그렇게 불안한 아이들이 이해가 안 가는 것은 아니다. 아무튼 불안정한 아이들을 내 수업에서도 어떻게 다루어야 할지 막막할 때가 많아졌다.
성격이 예민한 학생들의 경우에는 선생님이 조금만 뭐라고 하거나 주의를 주면 엇나가기 일쑤였다. 한번은 한 학생이 내가 시험 문제를 출제하는 방식을 사전에 고지하지 않았다며 수업 도중에 마구 소리를 질렀다. 이전에는 주로 객관식 문제로 출제를 했었는데, 큰 시험이 다가오자 주관식 문제를 함께 출제했다. 또 나는 중간고사와 기말고사 시험문제를 기출 시험 문제 위주로 출제하기 때문에 사전에 특별히 시험 유형을 알려주지 않더라도 별 문제가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연말에 학생들의 가장 큰 시험인 CIE를 준비하기 위해서는 중간고사와 기말고사에 미리 연습을 해 놓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해서 학생들이 이전에는 많이 접하지 못했던 주관식 유형들을 시험에 추가한 것이다. 아무튼 지금 돌이켜보면 내 의도가 좋은 것이었다고 하더라도 학생들 입장에서 생각을 하는 자세는 부족했던 것 같다. 당시에는 워낙 초짜고 경험이 부족 하다보니 어쩔 수 없었다.
가장 큰 문제는 이 학기 중간고사에서 발생했다. 시험을 보는 과정에서 몇몇 학생들이 컨닝을 시도했고, 이러한 행위가 잘 발각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달은 학생들이 더 가세하기 시작했다. 결국에는 절반의 학생들이 부정행위를 저지르는 집단 컨닝으로 번져버렸다. 아예 노골적으로 답안지를 몰래 펼쳐보는 아이들까지 나타났다. 이는 아이들의 문제이기도 하지만, 당시 카지노 게임에서 그만큼 학생들을 관리하려는 의지가 부족했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지금 생각해보면 아예 학생들의 컨닝 행위를 묵인해준다는 느낌까지 든다. 결과적으로 시험 점수가 시험 준비를 잘 해 놓은 학생들과 그렇지 못한 학생들이 비슷한 점수를 받거나 오히려 반대가 되는 경우도 생겼다. 때문에 시험 답안을 채점한다는 것 자체가 의미가 없어졌다. 그런데 도리어 많은 학생들이 나를 탓하기 시작했다. 시험 결과가 불공정 하다는게 그들의 논리였다. 집단 컨닝을 한 당사자가 결과의 공정함을 논하는 상황이 된 것이다. 문제의 원인은 본인들에게 있는데 결과에 대한 책임을 선생인 나에게 묻는 것이 어이가 없었다. 무엇보다 큰 문제는 열심히 수업준비를 해서 아이들을 가르치고 아이들의 실력을 향상시키는 것에 무엇보다 진심을 다했던 나는 크게 배신당하는 느낌을 받았다. 그리고 그런 학생들을 감싸면서 선생을 탓하려고 하는 카지노 게임가 싫어졌다. 이후로 그 카지노 게임와 아이들과 모두 인연을 끊었다.
너무 마음이 힘들었지만 마음을 다잡고 다른 카지노 게임를 알아보았다. 다행이도 다른 몇몇 카지노 게임에서 나를 좋게 보아줘서 더 좋은 조건으로 일을 할 수 있게 되었다. 예전 카지노 게임에서 그런 말도 못하는 마음고생을 하고나서 배운 것이 많았기 때문에 면접에서 대답을 나쁘지 않게 한 것 같다. 인생은 내가 별로 좋지 않다고 생각했던 일들이 나중에는 좋은 일로 작용하기도 하더란 것을 느꼈다.
그 카지노 게임에서도 딱 일년은 잘 견디었는데, 문제는 또 일년 뒤에 발생했다. 이번에는 해당 국제카지노 게임의 외국인 교장이 문제였다. 여담으로 중국에서 일반적인 국제카지노 게임는 현지 교장과 외국인 교장 두 명이 카지노 게임를 운영한다.
첫 학기에는 카지노 게임나 나나 큰 문제없이 잘 하고 있었는데, 두번째 학기 부터는 이야기가 달랐다. 이학기부터 카지노 게임의 분위기가 많이 달라졌다. 일단 중국의 정책적 변화로 인해, 국제카지노 게임의 기존 커리큘럼에 추가적으로 중국 수능시험의 커리큘럼을 추가해야 한다는 조항이 생긴 것 같다. 정책적인 부분에 대해서는 사실 나도 추론해보는 것 정도지만, 학생수가 갑자기 두 배로 늘어나고 선생님들은 듣도 보도 못한 커리큘럼에 다시 적응해야 한다거나 두 배로 늘어난 학생들을 가르쳐야 하는 상황이 되었다. 그럼에도 카지노 게임는 어떤 이유에서인지 학생들의 증가분에 대비해 선생을 모집하지 않았다. 이러한 상황에서 선생님들의 불만은 쌓여만 갔고 나도 예외는 아니었다. 그리고 이 카지노 게임의 외국인 교장은 사사건건 시비를 걸고 선생들과 학생들을 괴롭히는 교장으로 유명했다. 특히 카지노 게임에서 문제가 생기면 그것을 선생 또는 학생의 문제로 돌려버리기 일쑤였다. 머지않아 그 시비와 괴롭힘의 타겟은 내가 되어 있었다. 당시에 내가 가르치는 학급은첫 학기에는 큰 문제가 없었지만, 이 학기부터는 학생 관리에서 다소문제가 생겼다. 이는 일학기에 비해 한 한급의 학생 수가 두배로 늘어나거나 기존에 독립된 두개 반을 한 개로 합쳐놓았기 때문이다. 그 교장은 나에게 몇 번 주의를 주었는데, 그렇다고 학급 관리가 극적으로 개선될 리는 만무했다. 그는 카지노 게임의 관리자들에게 단체 이메일로 나를 조졌다. ‘반 관리의 문제는 모든 것이 당신에게 있으며, 내가 몇 번 주의를 줬는데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 것은 당신의 문제이다.’ 라는게 그의 논리였다. ‘우리가 왜 너를 선생으로 데리고 있어야 하는지를 말해 보라’ 고 까지 했다. 나는 평소에는 사람들에게 화를 내지 않지만, 정도에 어긋나는 일 또는 타인을 불공정하게 모욕하는 사람들을 만나면 폭발한다. 다른 사람이라면 그냥 거지 같은 꼴 보기 싫어서 제 발로 나갈 법도 한데, 나는 해당 교장이 부당하게 선생들을 대하는 것을 카지노 게임 전체에 고발했다. 그리고 카지노 게임 복도에서 해당 교장의 면전에 일방적으로 소리를 지르기도 했다. 이런 행동은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참 후회되는 행동이다. 카지노 게임에서 교장은 속된말로 여러 사람들에게 찍혔지만, 그 일로 인해 나는 또 다시 다른 카지노 게임를 알아보는 신세가 되었다. 그리고 머지않아 나는 또 다른 카지노 게임로 갔다. 지금은 이러한 여러가지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경험들을 바탕으로 이 년째 별탈없이 잘 지내고 있다. 두 번의 이직 모두 근본적잘못은 학생 또는 카지노 게임에게 있었으나, 이를 대응하는 방법이 무척이나 부족했다. 삶에서 문제가 생길 때 상황 탓을 하기보다는 내가 부족한 점 또는 그 문제를 극복하기 위해서 필요한 것들이 무엇인지를 생각하면 된다.
삶에는 방향이 필요하다.
‘나는 학생들을 올바른 길로 이끄는 교사로 살아가겠다’는 나의 방향은 지금도 나에게 힘을 준다.
하지만 ‘나는 반드시 이런 사람으로 인정받아야 한다’는 사회적 이미지에 집착하는 건 결국에는 내가 만든 환상에 스스로를 가두는 일이었다.
나는 내가 상상한 ‘좋은 선생님’이 되고 싶었고,
그 이미지를 깨뜨리는 사람들에게 분노했다.
사실은 그들이 미운 게 아니라,
그들이 무너뜨린 나의 자의식이 미웠던 것이다.
내가 만든 이미지에 목숨 걸 필요 없다.
내가 생각하는 ‘멋진 나’의 모습에 집착할 필요없다.
내가 걸어가는 이 길 자체가 나니까.
그냥 나의 길을 걸으면, 그걸로 족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