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아휴직 3주 차의 결론, 지식중개인이 되기로 했다
"와우 매니저님, 잘 지내시죠? 별일 없죠? 어떻게 뭐 방향성은 잡으셨어요?" 친한 동료의 전화였다. 집에서 싸 온 삶은 계란을 집어삼키고 있는데, 갑자기 속이 막히는 듯했다. 이런, 전화받기 전에 물을 한 잔 먹었어야 했나. 우리는 답답한 일이 있을 때 서로 고민도 토로하고 뒷담화로 회사를 두들겨 팬 전우 사이다. 결국 나는 현실을 버티다 못해 육아휴직, 동료는 한 달 뒤 퇴사예정이다. 그만큼 운명을 같이한 막역한 사이지만, 왠지 뭔가 말하기가 부끄러웠다.
"아, 네 뭐 책 읽고 글 쓰고 있어요"
그렇다. 나는 세상에서 제일 행복한 일을 무료 카지노 게임 있는데. 전화를 끊고 왜 남에게 부끄러워했을까? 곰곰이 생각해 보니 사회에서 인정하는 "생산성" 있는 일이 아닌 것 같아서다. 차라리 "파이썬 공부무료 카지노 게임 있어요.", "자격증 공부해요."라고 하면 당당했을까? 그런데 세상은 꼭 생산성 있는 일만 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아니, 생산성의 의미를 되새겨봐야 한다. 꼭 볼펜 한 자루를 만들거나 코드 한 줄을 짜야지만 생산성 있는 건 아니다. 사람들에게 작은 공감의 기쁨을 주거나, 어려움을 덜어주는 것 모두가 생산성 있는 일이다. 아주 작고 몇 개 안 되는 글이지만 누군가에게는 감정의 울림이 될 수 있다.
육아휴직 이후 거의 3주가 되어가는 지금, 이제 스스로 하고 싶은 일을 찾은 것 같다. 소심하게 "같다" 라니. 솔히 아직 100% 확신은 들지 않아서다. 브런치에 이런저런 글들을 적으면서 스스로에 대해서 많이 생각해 보았다. 내가 뭘 좋아하는지? 나의 기질과 성향은 어떤지? 수많은 환경 속에서 내가 뭘 인정받고 잘해왔는지? 또 무얼 해야 후회가 없는지? 경제적으로 도움은 될지?책도 여러 권 들춰보고, 챗GPT와도 나름 많은 상담을 했다. 아내와도 얘기해 보고, 과연 죽음을 앞두고서 뭘 후회할지도 고민해 봤다.
지식중개인이라니. 공인중개사도 아니고, 뭔 지식중개인? 지식산업센터 중개하시는 분인가요? 이건 사실 내가 만든 단어의 조합이라고 보면 된다. 간단하게 얘기하면 "어려운 지식을 쉽게 풀어서 설명하거나 비판적으로 볼 수 있도록 해주는 것."이다. 콘텐츠 크리에이터, 지식 큐레이터 등의 단어가 있지만 다른 단어들은 있어 보이는 척하는 것 같아 낯간지럽다. 그냥 지식중개인이 가장 직관적이다.(물론 지식브로커로 하려다가 사기꾼 냄새가 나서 바꿨다.) 지식중개인은 수학, 심리학, 철학, 경영학, 물리학 등 세상에는 정말 수많은 지식 중 내가 관심 있는 것들을 쉬운 방식으로 소개한다. 그리고 다소 다른 시각에서 볼 수 있게 하는 역할이다. 근데 나는 왜 지식중개인으로 정체성을 삼았을까?
우선 나의 성향과 히스토리를고려했다. 앞의 글에서 분석했다시피 그나마 좋아하고 잘한다고 생각하는 것은 "글 쓰고, 가르치거나 발표하고, 기획하고, 정리하는 것"이다. 물론 이것은 나의 착각이자 내가 만든 이야기 일 수 있다. 그래도 확실한지 아닌지는 부딪쳐봐야 안다. 무엇보다 브런치에 하루에 1개씩 글을 작성할 때면 놀랍게 시간이 빨리 간다. 그저 보고, 듣고, 겪은 일을 풀어서 쓰는 것뿐인데도 깊은 몰입감을 느낀다. 틀리더라도 이 일을 계속하고 밀어붙이고 싶다. 실패하더라도 후회는 없을 것이다. 누군가에게 지식을 쉽게 풀어서 알려주는 것, 가슴이 뛰고 재미있으며, 세상을 이롭게 할 수 있을 것 같다.
두 번째는 환경적인 측면이다. 나의 성향을 보면 교사, 교수, 컨설턴트, 작가 등이 어울린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내 영역에 특화된 직업을 지금 준비하기에는 어렵다. 직장을 포기하면서 뭔가를 시도하기에는 무리이고 기회비용이 만만치 않다. 중요한 건 특별하게 좋아하는 전공이나 분야가 없다. 인문학이나 철학은 교양서적으로 읽을 때는 재미있지만, 전공 수준으로 가면 질 좋은 수면제일 뿐이다. 전문가가 되고 싶지만, 특별한 훈련과 배움을 거쳐야 한다. 장시간의 시간도 쏟아부어야 한다. 분야를 막론하고 옆에서 수많은 석박사들이 고군분투하는 것들을 봐왔다. 솔직히 나에게는 그럴만한 시간이 없고, 투여할 만한 호기심이나 가치를 느끼지 못한다.
무엇보다 좋은 동료가 생겼다. 바로 챗지피티와 같은 생성형 AI다. 물론 지식을 쉽게 풀어서 알려준다고 하면 챗지피티만 갖고도 충분하다. 그냥 뭘 물어보고 "쉽게 알려줘"라는 프롬프트를 입력하면 끝이다. 다만 챗지피티가 아직 현실에서 어려워하는 부분이 있다.
바로 현실형 콘텐츠에서 나오는 찐공감과 불완전함무료 카지노 게임. 그럴듯하게 글을 써주지만 사람의 눈으로 보는 현실인식과 공감성은 아직 부족하다. 챗지피티에 유명 작가의 글을 복붙한 다음에 "공감 가면서도 멋진 글을 써줘"라고 한다고 해서 도서관에 중년 아저씨들이 가득 찬 글의 소재를 추출할 수 없다. "육아 이야기를 써줘"라고 하면 일반적인 육아의 사례를 설명할 수 있지만, 밤에 아이와 같이 자면서 소변 훈련하다가 얼굴에 묻은 생생한 이야기는 만들기 어렵다. 결국 무언가 내용과 글감을 구체적으로 던져줄 수 없다. 대략적인 개요는 짜줄 수 있지만, 구체적인 기획은 부족하다.
또 챗지피티는 글의 리듬과 내용이 "지나치게 매끄럽다". 글을 읽으면 마치 목적지가 분명한 부드러운 아스팔트 도로를 달리는 느낌이랄까? 사람이 쓴 글들은 불완전무료 카지노 게임 울퉁불퉁하다. 비포장 도로처럼 구멍도 많고 모래가 흩날린다. 글 내용도 이리 갔다 저리 갔다 하다가 다시 간신히 주제로 돌아온다. 리포트나 보고서에는 최적이지만, 소설이나 글쓰기는 아직 조금 티가 난다.
그럼에도 너무 좋은 동료다. 지식들의 요약과 정리를 정말 잘하고 쉽게 설명한다. 챗지피티가 없었으면 지식중개인은 굉장한 시간과 에너지를 소비하는 작업이다. 우선 어려운 지식을 100%는 아니더라도 최소 절반 이상은 이해해야 한다. 그리고 쉽게 풀어쓰기 위해서 많은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원전이나 번역 한 글자 잘못 쓰면 전공자나 교양 수준이 높은 사람들의 비판의 화살이 날아온다. 세상에는 정말 굇수나 덕후들이 많다. 그러나 챗지피티는 다르다. 100% 완전하지 않지만 누구보다 놀라운 지식과 추론능력을 갖고 있고 다른 AI로 교차검증도 가능하다. 또 다른 핵심적인 장점은 다양한 방식으로 풀어낼 수 있다는 점이다. 예전에는 글만 썼어야 했다면 이제는 영상이나 웹툰으로도 만들 수 있다. 간단하지는 않겠지만 배우고 익히면 충분히 가능하다.
"근데 수요가 있을까? 사람들이 좋아할까?" 가장 먼저 든 질문이다. 내가 아무리 좋아해도, 사람들이 좋아하지 않는다면 말짱 도루묵이다. 내가 아무리 볼펜 돌리기를 잘해도 사람들이 관심을 갖지 않는다면 쓸모가 없다. 수요를 고민하지 않을 수 없지만, 작은 확신이 있다. 지식을 희망하는 사람은 많고, 쉽게 이해하고 싶어 한다. 서점에 가보면 전문지식을 쉽게 설명한 교양서적은 많은데 솔직히 너무 어렵다. 저자를 보면 모두 교수, 박사님들이다. 아무리 덜어내고 덜어내도 학자적 습관이 묻어날 수밖에 없다. 현실인식은 단편적이고, 설명은 개념위주다. 세상은 복잡한 방정식인데 수학의 정석을 읽는 느낌이다. 좀 더 쉬우면서도 지적 욕구를 충족했으면 좋겠다. 서점에 가면 자연스레 쉽고 편한 자기 계발서나 감성에세이, 곰돌이 푸우 같은 책에 끌리는 이유다. 그 사이에서 뭔가를 분명 만들어낼 수 있다.
작업방향은 이렇다. 유튜브에서 영화를 소개하는 것처럼 책이나 지식들을 설명한다. 그리고 글, 영상, 그림으로 풀어낸다. 어려운 지식들은 챗지피티와 풀어내서 그걸 우리 현실과 연계시켜 설명한다. 현실에서 겪을 법한 생생한 비유도 곁들이고, 어그로도 끌어본다. 지식을 위한 재료는 직접 만들지 않는다. 똑똑하고 위대한 사람들이 남긴 재료들을 소개하고 요리하는 게 역할이다. 시간을 들여서 비싼 요리도구로 요리하지 않는다. 그런데 열량만 높은 패스트 푸드도 아니다. 전자레인지에 빠르게 데워먹으면서도 영양분은 섭취할 수 있는 음식과 같은 콘텐츠를 만든다. 안락의자에 앉아서 근엄하지만 웃음기 가득한 얼굴로 그저 책 내용에 대해 토론하는 건 지루하다. 칭찬이나 해석만 하지 않는다. 재미도 있지만, 삐딱하게도 바라보고, 현실과 연관시키는 콘텐츠가 핵심이다. 고속도로 휴게소에서 명언집을 사는 트럭운전사 아저씨들도 읽고 볼만한 콘텐츠가 목표다.
잘 모르는데 아는척한다고, 틀렸다고도 할 수 있다. 누군가는 어렵다고, 누군가는 너무 쉽다고도 할 수 있다. 공인중개사는 사는 집을 짓는 건설이나 설계전문가가 아니다. 건축구조와 인테리어에 잘 모르고, 변호사나 법무사보다 계약지식이 떨어질 수 있다. 그럼에도 고객의 사정에 맞게 집을 데려가서 소개해주고, 경험에 기반한 현실적인 상담은 다른 전문가보다 믿을만하다. 지식중개인도 마찬가지다. 전문지식은 떨어지지만 잘 소개해주는 건 전문가보다 나을 수 있다. 물론 비슷한 지식중개인이나 콘텐츠 제작자도 분명 많다. 세상에 독특한 아이디어란 없고 똑똑한 사람들은 정말 많다. 롤모델로 삼아서 참고하고 배우되, 그들과는 다른 차별점을 만들어내야 한다. 기획하고 반영해 보되 현실에서 부딪치며 수정해 보자.
지식중개인이란 하고 싶은 일을 찾았다고 해서 당장 가슴이 벅차오르는 않는다. 100% 확신할 수 없고, 당장 돈을 버는 것도 아니고, 구체적인 일감이 있지도 않다. 잘하는지도 모른다. 이리저리 다른 일들에 치이다 보면 또 분명히 열정도 사그라들고 이게 맞나라는 생각도 들 수 있다. 그럼에도 뭔가를 만드는 일은 나에게 설렘을 준다. 타자를 치는 손가락에 생기가 돈다. 만들어보자. 작은 세상에 조그마한 먼지라도 남겨보자. 쉽지 않겠지만 한 발씩 걸어가 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