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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luebird Apr 22.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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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기 초가 되면 어김없이 선생님들 사이에 눈치 전쟁이 벌어졌다. 조금이라도 괜찮은 반을 맡기 위한, 조용한 신경전이었다. "그 반은 말썽쟁이 반이라 힘들어요. 두 반 연속으로 그런 반 맡을 순 없어요." 회의 시간마다 심심찮게 들리는 불만에 원장은 늘 난감해했다. 나 또한 별반 다르지 않았다. 나도 말 잘 듣고 공부 잘하는 아이들 반이 하고 싶었다. 이른바 '골통'들을 길들이는 건 너무 힘들었기 때문이다.


집중 못하는 아이, 숙제 안 해오는 아이, 노력은 보이는데 성적은 안 나오는 아이, 다양한 아이들이 있었지만, 학원조차 포기한, 진짜 골칫덩이들은 속이 타들어갈 만큼 힘들었다. 학기 초마다 그런 반이 걸리지 않기를 간절히 빌곤 했다.


키가 177cm인 나는 큰 목소리와 더불어 외형에서 오는 위엄이 있었다. 칠판 맨 위 귀퉁이까지 다 쓸 수 있고, 맨 뒷줄 아이들도 책에 낙서하는지 집중하는지 한눈에 볼 수 있었기에 학원생활은 내게 안성맞춤이었다. 그 덕에 왜소한 여자 선생님들에 비해 아이들을 잡기에 수월 했던 것 같다. 아이들이 꽤 잘 따르는 편이었다.


새 학기엔 선생님들만 긴장하는 게 아니었다. 아이들 역시 어떤 선생님이 걸릴지 촉각을 세웠다. 좋아하는 선생님이 걸리길 바라며 조용히 기도하는 아이들도 있었다. 그렇게 운명이 나뉘고, 학기가 시작됐다. 내 손에 들어온 명단을 확인한 순간, 나는 탄식했다. "이번 해는 망했구나." 희비가 엇갈리는 순간이었다.


하지만 10년쯤 그런 생활을 하다 보니 어느 순간 알게 되었다. 좋은 반, 나쁜 반은 없다는 것. 나와 잘 맞는 아이, 아닌 아이가 있을 뿐이라는 것을. 어떤 반이든 꼭 말썽쟁이는 있었고, 평범한 아이들이 대다수였고, 아주 뛰어난 아이들은 소수였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아무리 문제아라도 우리 반이 걸리면 몇 달간은 조용했다. 키 큰 여자 선생님, 숙제 안 해오면 끝까지 물고 늘어지는 무서운 선생님이라는 소문이 이미 퍼져 있었던 덕이었다. 그 소문은 나를 도와줬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결국, 내가 얼마나 만만한 선생님인지 아이들도 알게 되었다. 내가 바라는 수업은 즐거운 수업이었기에 유머를 공부하기 까지 했으니 말이다.


그리고 서서히 말썽쟁이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초보 시절엔 벌도 세워보고, 원장실에 보내보기도 했다. 하지만 어떤 아이들은 정말 어떤 방법으로도 통하지 않았다. 사춘기의 아이, 엄마도 포기한 아이. 학원 전기세 내어 주러 오는 아이. 학원이라는 곳은, 정말이지 세상 모든 이야기가 모이는 곳이었다.


한 번은 중학생 수업 중이었다. 한 아이가 시험지를 던졌다. “다시 주워.” 조용히 말했지만, 아이는 완강했다. 실랑이는 길어졌고, 교실은 금세 아수라장이 되었다. 수업은 엉망이 되었고, 결국 원장님이 교실까지 오게 되었다. 그 아이는 끌려가다시피 교실을 나갔고, 원장실에서도, 집에 가라는 말에도 묵묵히 서있었다. 결국 엄마까지 호출되었고, 몇 시간 실랑이 끝에 상황은 종료되었다. 그 아이는 엄마도, 원장도, 나도 모두 두 손 두 발 들게 한 첫 번째 학생이었다.


그렇게, 힘과 권위로 아이들을 통제하려 했던 시절이 있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단 하나 확실히 알게 된 것이 있었다. 아이들은 그렇게 쉽게 변하지 않는다는 것. 20년 동안 꾸지람으로 변한 아이는 단 한 명도 없었기에 말할 수 있다.


그런데도 나는 아이들을 많이 바꿨다고 생각한다. 그 비결은 아주 단순했다. 학기 초 명단을 보고 자리 배치를 하면서 가장 힘든 아이들을 내 시선이 닿는 곳에 앉혔다. 그리고 그 아이에게 집중했다. 그 아이를 내 편으로 만드는 것이 가장 중요한 일이었다. 그 아이가 책을 구겨서라도 가져오면, 과제를 미흡하게라도 해오면, 엉망인 자세를 잠시라도 고치면, 나는 그 순간을 절대 놓치지 않았다. 그렇게라도 노력해줘서 고마워. 글씨는 진짜 예쁘다.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는 말을 실감하는 순간이었다. 그렇게 반의 골통을 내 편으로 만들면, 그 해는 조용하고 편하게 흘러갔다.


전업주부가 된 지금, 딸들을 키우며 그 시절을 종종 떠올린다. 잔소리하고 혼내야 할 상황이 넘쳐나지만, 정말 중요한 건 그게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이들은 꾸지람으로 변하지 않았다. 20년의 교사 경험이 내게 알려준 진실이었다. 작은 행동도 놓치지 않고 칭찬해주는 것. 그게 아이를 바꾸는 유일한 무기였다. 애정과 관심이 있는지를, 아이들은 늘 확인하고 있었고, 그 확인이 끝나면 비로소 본모습을 드러내는 것이었다.


살다 보니 점점 더 확신하게 되었다. 아이들뿐 아니라, 우리 모두가 바라는 건 결국 ‘애정’과 ‘관심’이라는 걸. 가족, 친구, 내 곁의 사람들까지, 말 한마디, 눈길 한 번에도 우리는 반응하고 흔들린다. 그 시절 아이들에게 쏟았던 칭찬과 관심이 결국 그들을 바꾸었듯, 지금 내 아이들에게, 내 사람들에게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큰 것이 필요하지 않다. 구겨진 책 한 권에도 “노력해줘서 고맙다”고 말할 수 있는 따뜻한 눈길 하나면 충분했다.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가장 작지만 가장 확실한 변화의 시작. 그것은 잔소리가 아니라 ‘기다림’과 ‘따뜻한 말’일 것이다. 좋은 아이, 나쁜 아이가 따로 있는 게 아니었다. 좋은 어른, 좋은 엄마가 되기 위한 연습만이 남아 있을 뿐이다. 그리고 그 연습은, 여전히 오늘도 계속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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