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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가희 Apr 30. 2025

카지노 게임 추천 (La Chute)

이 글은 알베르 카뮈의 <전락을 읽고 작성한 '이야기'입니다. 책에 대한 스포일러가 일부 포함되어 있습니다.


인간이란 그런 겁니다. 두 가지 면이 있어요. 인간에게 가장 자연스러운 생각, 마치 인간 본성의 밑바닥에서 솟아오듯 천연하게 떠오르는 생각은 자기에겐 죄가 없다는 것입니다.



카지노 게임 추천 생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 책이 무엇이냐는 질문을 들을 때, 카지노 게임 추천 답은 줄곧 일정함을 유지했다. 데미안. 시간이 흐름에도 이 사실은 변치 않았다. 인생에서 데미안의 등장과 그와의 만남은 꽤나 시기적절하였고 그는 선과 악에 대한 카지노 게임 추천 인식을 바꾸어주었으며, 카지노 게임 추천 죄책감을 덜어주고, 타인에 대한 용서와 이해를 도모하였다. 이미 수없이 말한지라 이에 대한 더 이상의 논의는 생략하겠다.



그렇다고 한들 누군가 나에게 ‘그것이 가장 사랑하는 책인가’에 대한 질문을 다시 던진다면 카지노 게임 추천 대답은 완전히 다른 방향을 향할 것이다 (아직까지 이러한 질문을 받아본 바는 없다). 실은, 사랑이라는 단어는, 나에게 있어서 중압감이 따르는 것이다. 명확히 알 길은 없지만, 아마 이러한 사실이 단어를 쉽게 구사하지 못하는 것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으리라 의심치 않는다 (무의식의 통제라 보아도 무방하지 않겠는가). 그럼에도 이 책에는, 단언컨대 ‘사랑’이라는 단어를 붙임에도 결코 카지노 게임 추천 말에 대한 번복과 후회가 없으리라.



그 시절의 나는 더 이상 밑도 끝도 없이 추락했다. 무언가에 홀린 듯 (필시, '카지노 게임 추천'이라는 어사에 이끌렸을 것이다) 책을 집어 들었고 미친 듯이 그 자리에서 책장을 넘기기 시작했다. 찰나에 나는 클라망스에게 깊은 사랑을 느꼈다. 아니, 몇 년이 흐른 지금 이 순간에도 나는 장 바티스트 클라망스, 그를 사랑한다. 그 무거운 단어로 나는 하나의 세계 속에서 생성된 우리의 일체성을 담보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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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를 사랑하기 시작하면 대상과 나 사이의 공통점 모색에 착수한다. 공통분모를 점진적으로 늘려가다 보면 수면 아래의 미세한 차이점들이 저마다의 자취를 드러내기 시작하고 그것은 이내 자신이 갖지 못한 것을 소유하고 있는 상대 고유의 독창적인 특색으로 변주되어 스스로를 잠식시킨다.



적어도 나에게 있어서는, 누군가의 직업보다 그 사람이 어떤 부류에 속하는 인간이냐가 더 흥미롭게 다가온다. 인간을 분석하는 나만의 방법을 관찰과 연상의 확장이라 표현해 볼 수 있겠다. 가령, 중저음의 목소리를 가진,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후줄근한 재킷을 걸치고 자연스럽게 뒤로 넘어간 정돈되지 않은 반곱슬의 긴 머리를 가진 남성은 다소 무심하고 소탈한 향기를 풍긴다. 여기에서 탐색을 그친다면 우리는 그 남성이 지닌 재미있는 요소들을 놓치고야 말 것이다. 깨끗이 다듬어져 일정한 길이를 유지하는 손톱, 일말의 흐릿한 자국도 보이지 않는 새하얀 신발, 기분에 따라 변화하는 그의 시곗줄. 우리는 누군가와 더 긴밀하게 연관된 무언가를 관찰해야 한다. 이로 인해 보이지 않던 정갈하고 세심한 (더 확장해 본다면 무언가에 지나치게 계산적일 수 있는) 그의 이중적 면모가 표면 위로 드러나는 것이다.



나는 사소한 단서들로 누군가에 대한 내밀한 정보를 모은다 (이것은 단지 누군가를 좀 더 이해하기 위한 카지노 게임 추천 욕심일 뿐 별도의 음산한 이유는 없다). 앞서 언급한 이중적 면모의 사례는 그날 암스테르담 지하의 어느 바에서 나에게 진(정류精溜 알코올에 주니퍼 베리로 향기를 내는 무색투명한 증류주)을 건네던 클라망스의 모습이었다.



과장된 화려한 언변으로 툭툭 내뱉는 다소 도발적이고 무거운 그의 삶, 쾌활한 듯하면서도 이미 세상의 모든 시련을 통달해 버린 것 같은 서글픈 표정, 이 사소한 것들은 나에게 그의 에고이스트적 면모에 대한 신호를 보내오고 있었다. 어쩌면 초반에 나를 엄습해 온 거친 공포의 감정은, 스스로 방심을 면하지 못하도록, 그의 매혹에 격렬히 저항하도록 하기 위함이 아니었을까.



진실함과 미워할 수 없는 허세는 나의 경계심을 허물기 위한 그 만의 비법이었을 것이다. 타인에게 너무나 손쉽게 동질의 상태를 경험하는 나의 이 가녀린 천성은, 초면인 사람을 보면 필사적으로 방어의 벽을 내민다. 이토록 가상한 분투를 하였음에도, 극도로 강한 공감을 자아낸 클라망스 내면의 이야기는 나의 조심성을 면하고야 말았다. 그간의 인간을 향하던 시끄러운 경보들은 수포로 돌아갔고, 이내 나는 인간을 단념할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받아들여야 했다.



그날 밤, 그녀가 뛰어내린 강물을 통해 퍼져나간 비명과 동시에 자신의 집으로 발걸음을 옮겼다는 그의 비통한 고백을 들었을 때, 깊은 곳에서 끓어오르는 이 기이한 감정은 가히 어떤 단어로도 표현할 수 없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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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한의 시작은 그의 죄책감과 강박증적 태도에 대한 공감이었다. 나 역시, 자아도취 속 남몰래 감싸 안던 오만함을 고해하고 싶었던 것이다. 그러나 이 또한 그의 계략이었다는 사실을 알아차렸을 때는, 이미 무언가, 매우 불쾌한 무엇이, 일말의 변명에 지나지 않았던 억울함을 호소하는 헐어버린 카지노 게임 추천 구각에 들러붙었다. 그것들은 심층의 기억을 되짚어가며 모든 종류의 원한, 복수, 나아가 위선까지 모조리 긁어모아 먹이로 삼아가며 번식했다. 행복감과 관계의 충만함을 느낄 때에도 이들은 어김없이 몸뚱어리에서 개체 수를 늘려갔고, 온 살가죽을 도려내고 싶게 만들었다. 이미 나는 한없이 약해지고, 흔들리고 있었다.



새하얗지만, 너무나 히여서 순결해 보이지만, 결국 그것들은 습기로 가득 찬, 이미 썩어버린 죄악 덩어리에 들러붙어 기생하는 곰팡이였을 뿐이다. 이내, 더러운 짐을 이고 살아가야 한다는 사실이, 마치 코르셋처럼, 나를 몰염치하다는 말로 죄어오는 것이었다. 그 누구도 가벼운 말들로 이 추악함을 달랠 수 없었다.



그것들을 그냥 도려내버리면 되겠냐마는, 얇은 종이 한 장에 손끝을 베었을 때에도, 나를 아프게 하는 애꿎은 종이를 탓하는, 이러한 나는, 스스로를 너무 사랑하는 나머지 차마 그럴 수가 없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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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과 며칠 전까지 그를 향했던 비난을 품은 조소의 웃음들은 방향을 틀어 나에게 꽂혔고, 떳떳하지 못한 이면의 결함들을 마주 보게 하였다 (그는 이 사실에 난폭할 만큼의 미묘한 쾌감을 느끼는 듯했다). 나는 필사적인 항변의 소리를 내질렀다. 살아있음이야말로 한 줌의 진실도 없는 하찮은 거짓들의 집합 아니겠는가!



그러다 이내 이러한 인생의 심판이 다소 정상적인 상황이라는 것을, 비애의 감미로운 맛이라는 것을 수용하고 난 후에야 터지기 직전의 부풀려진 삶에 미세한 숨구멍이 뚫리기 시작했다. 도덕적 완성의 불가능성에 카지노 게임 추천 인정, 그리고 이 모든 것들의 책임에 카지노 게임 추천 용기를 고했다. 영원한 묵살은, 영원한 변명은, 영원한 해방은 없다는 사실을 외쳤다.



비로소 주변을 맴돌던 웃음소리는 자취를 감추었다. 그곳에는 잠들어 있는 센강 앞 홀로 서있는 나 자신과, 어둑한 강물에 비친 푸르스름한 빛으로 얼룩져있는 형상만이 남아있을 뿐이었다.




나의 인생에서 클라망스의 등장은 꽤나 시기적절하지 못했다. 시나브로 많은 것들에 대한 기억이 사라져 갈 때쯤 그는 나의 양발을 항구에 묶어두고 심판의 저울을 손에 넘겼고, 나는 또 한 번의 카지노 게임 추천을 겪어야만 했다. 그의 교묘하고 용의주도한 거울놀이 속에서 나는 보이지 않는 누군가의 가학자인 동시에 스스로의 피학자로서 위치한다. 그리고 나는 오늘도 어김없이 최후의 심판을 맞이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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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어느 누구의 무죄도 단언할 수 없는 반면에 모든 사람의 유죄를 확실히 단언할 수 있습니다. 인간은 누구나 다른 모든 사람의 죄를 증언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나의 신념이요, 또 나의 희망이기도 합니다.
… 그렇지만 안심하십시다, 이제는 때가 늦었습니다. 영원히 때는 늦었어요. 다행한 일이지 뭡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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