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으로 정신과를 방문하다.
어느덧 둘째 아이는 돌이 되었다.
첫째 때에는 돌잔치 업체에서 진행해서 많은 사람들이 왔었다. 그때는 모든 것이 처음이라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다행히 첫째는 온순해서 울거나 떼쓰지 않아 수월하게 돌잔치를 마무리했었다. 하지만 중요한 말을 못 하고 끝이 났었다. 사회자가 신랑과 나에게 마이크를 넘겼고 한 마디씩 하라고 했는데 땀을 뻘뻘 흘리던 신랑도 나도 정신없는 행사에서 갑자기 마이크를 넘겨받고는 당황했었다. 서로에게 고맙다고 했고 아이에게도 한마디 한 것 같다. 하지만 정작 100일부터 일하는 동안 아이를 돌봐준 친정 엄마에게는 고맙다는 말을 놓치고 말았다. 행사가 끝날 때쯤 친척분이 나한테 얘기온라인 카지노 게임.
" 그래도 엄마한테는 고맙다고 했어야지."
맞다. 그 말을 놓치고 말았다. 아이가 밝게 커가는 건 다 엄마 덕분이기 때문이다. 아이와 눈을 맞추고 놀아주며 항상 즐겁게 해 준 게 엄마였다. 엄마는 나를 키울 때도 공부하라, 숙제해라 라는 말을 한 번도 한 적이 없다. 심지어 난 엄마에게 맞아본 적도 없다. 엄마는 항상 힘든 현실에서도 긍정적인 사람이었다. 그래서 아이는 우울한 순간 없이 지금까지도 밝게 크고 있다.
그렇게 그 자리에서 못다 한 말을 가슴에 품고 다음 둘째의 돌잔치에는 꼭!! 얘기해야겠다 다짐했다. 물론 중간중간 감사를 표현했지만 모든 사람들 앞에서 한번 더 해야겠다는 다짐을 한 것이다.
그리고 시간이 흘러 둘째의 돌이 되었다. 둘째 때는 시댁 친정 식구만 모시고 우리 집에서 상을 대여하여 전통방식으로 진행하기로 했다. 그리고 식사는 뷔페로 예약을 했다.
유일하게 나의 친가 친척 중에 부산에 사시는 큰 아버님 내외만 오시기로 했다. 부산에서 오시니 우리 집에서 주무시고 돌잔치를 함께 하기로 했다.
하나 있던 외아들을 10살 때 교통사고로 잃고 많이 힘들어하시며 지금까지 잘 버티고 계신 분 들이다. 우리 아이들을 특히 좋아하셔서 돌잔치마다 올라오셨다. 멀리서 오시니 우리 집에서 주무시는 게 당연했다.
그렇게 버스를 타고 올라오신 내외를 마중하고 집으로 모시고 왔다.
돌잔치는 일요일에 하기로 온라인 카지노 게임.
그래서 큰 아버님 내외와 함께 가까운 곳으로 나들이를 갔다 왔다. 그리고 토요일 오후가 중반쯤이 되었다.
난 속으로.... ' 친척분들이 오셔서 주무시니 시댁 식구들이 또 토요일부터 올 일은 없겠지?' 라며 안도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건 내 생각일뿐이었다.
신랑한테로 그녀의 전화가 왔다. 한참 통화 후 신랑이 얘기했다. 그녀 집으로 오신 아버님이랑 함께 우리 집에서 주무시겠다 했다고...
" 방도 두 개고 큰아버지도 계신데 어떻게 자? "
옛날에는 뭐 좁은 집에서 다 같이 잤다며 괜찮다고 온라인 카지노 게임는 것이다. 24평 방 2개짜리 집에 부산에서 친척분까지 올라와 있는데 굳이 같이 자겠단다. 작은방은 아이들 침대와 짐으로 가득해서 1명 누울 수 있는데 말이다.
큰아버님 내외와 시댁은 첫째 돌 때 얼굴을 익힌 사이지만 그 외엔 특별한 게 없는데 한번 보고는 참 편하신가 보네...
시댁 식구는 자기들만 생각하는 것이다. 상대방이 편할지 불편할지는 전혀 생각이 없다. 그렇게 큰아버지에게 오후에 시부모가 오신다고 하는데 괜찮으시냐 같이 거실에서 주무시던지 해야 한다고 말씀드렸다. 생각지도 못한 전개에 당황하셨다. 그녀에 대해 대충은 알고 있어서 그렇게 반가워하지도 않는데 굳이 함께 보내겠다는 것이다.
그렇게 두 분 내외가, 이혼 한 부부가 함께 집으로, 아니 신랑이 모시러 갔다.
그 사이 큰 아버님 내외는 사돈끼리 같이 자는 것도 불편한데 그냥 오빠네 집으로 가겠다고 하셨다. 난 중간에서 곤란하게 되었다. 그냥 하룻밤만 참아 주세요~ 라며 두 분을 달래 드렸다.
그렇게 사돈끼리 좁은 집에서 다 같이 내가 차린 저녁을 드시고 이야기도 하다가 자야 할 시간이 되었다. 아버님과 큰 아버님이 거실에서, 그녀와 큰어머님은 좁은 작은 방에서 주무시게 되었다.
돌잔치 준비에 어르신들 아침밥도 차려야 하네...
돌잔치 준비를 마치고 오빠네와 아주버님네까지 모두 모였다. 사진도 찍고 덕담도 나누며 시간을 보낸 뒤 다 함께 예약했던 뷔페로 갔다. 차를 나눠 타고 30분 거리에 도착했다.
10여 명이 모일 수 있는 룸을 예약했었고 일단 모두 자리를 잡고 점심 식사를 시작온라인 카지노 게임. 그때 난 결심했던 말을 꼭 해야겠다 싶어 먼저 일어나서 감사의 말을 전온라인 카지노 게임. 첫아이 돌잔치 때 못한 말을, 이제 둘째까지 봐주고 계신 엄마에게 감사하다고 전해야 할 시간이었다.난 자리에서 일어나 모두의 관심을 모았다.
" 일단 첫째 때 정신이 없어서 말을 못 했는데 첫째부터 둘째까지 봐주고 계신 엄마에게 감사드립니다. 엄마가 이렇게 봐줬기 때문에 일도 할 수 있었고 너무 감사합니다. 다들 맛있게 드시고 건강하세요 "
그리고 신랑도 일어 나서 한마디 했다. 기억은 안 나지만...
나는 다 함께 건배를 하자고 제안을 했다. 그때 그녀의 얼굴을 봤는데 미소를 짓고 있었다. 그렇게 돌잔치는 잘 끝났다고 생각했다. 첫째부터 둘째까지 모든 행사에 그녀가 있었지만 그래도 이번에는 잘 마무리되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건 나의 착각이었다.
일주일 뒤 주말에 돌잔치 기념으로 친하게 지내는 회사 동료 부부와 리조트를 가게 되었다. 오랜만에 아이들과 여행을 와서 기분이 좋았다. 하지만 수영장에서 아이들이 놀고 있을 때쯤 신랑이 전화를 받았다. 그리고는 저 멀리 떨어져서 거의 한 시간을 통화했다.
" 누군데 오래 통화해?"
" 시어머니지 누구겠어."
함께 온 동료가 물어보길래 얘기온라인 카지노 게임.
이렇게 오래 통화하면 또 뭔가 일이 있는 것이다. 그녀는 남의 상황은 신경 쓰지 않기에 우리가 친정에 있든 친구네서 저녁을 먹든 놀러를 왔든 전화를 해서는 한 시간씩 얘기했다. 나와 있다고 얘기해도 소용없다. 신랑은 핸드폰을 들고 쓱 나간다. 오래 통화하니까...
아그전에며칠 전나의 핸드폰이 고장이 난 상태였다. 그래서 신랑한테로만 전화가 온 것 같다. 갑자기 신랑이핸드폰으로나를 바꿔 주려고 하면서 한마디 온라인 카지노 게임.
" 엄마 아픈 거 알고 있었다고 해 ..."
영문도 모른 채 난 받기 싫은 핸드폰을 받아 들게 되었다.
" 안녕하세요 "
" 안녕 못하다. 너 시어머니가 아프다는데 들었어? "
".... 네..."
" 아픈 거 알았으면 이번 주에 왔어야지. 니들끼리 놀러를 가? "
" 죄송합니다"
" 또 죄송하다고... 죄송할 짓을 왜 해!"
그때부터 난 입을 닫았다. 어차피 할 말은 그 말 밖에 없고죄송하다말을 하면 또 꼬투리만 잡을 테니 이번에는 그냥 듣고만 있기로 온라인 카지노 게임. 그녀는 자기가 아픈데 주말에 안 왔다며 '아픈 거 알면 반찬이라도 해서 왔어야지' 라며 진짜 하고 싶은 얘기를 뒤로 미루고는 꼬투리를 잡기 시작온라인 카지노 게임. 난 그냥 듣기만 온라인 카지노 게임. 대답도 안 온라인 카지노 게임. 혼자 떠들어라 그래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리자 하는 마음으로 듣고만 있었다.
그랬더니 이번에는 이렇게 말한다.
" 꿀 먹은 벙어리도 아니고 왜 대답을 안 해!"
어쩌라는 건지 장단을 맞출 수가 없다. 그리고 진짜 진심이 나왔다. 그녀가 왜 화가 났는지
" 야 너네 엄마가 그렇게 잘났냐? 너네 오빠가 그렇게 잘났어? 시댁에서는 아무것도 안 했어? 애들 옷 사주고 돈 주고 했는데 친정에만 고맙다고 하더라. 대학 나온 애가 그런 것도 몰라? "
난 그 말을 잊을 수가 없다. 지금도... 예의 밥 말아먹은 그녀의 말한마디에 난 지쳐 버렸다. 그 이후로 수없이 그 말이 가슴에 꽂혀서 맴돌았다. 그렇게 오랫동안 쏟아 나오는 쓰레기를 내 가슴에 쑤셔 넣으며 전화를 끊었다.
아이를 데리고 오랜만에 보낸 주말여행이 이렇게 또 망가졌다. 난 그때부터 그녀가 왜 자주 아픈지 깨달았다.
아파서 짜증을 내는 게 아니라 짜증이 나서 아파오는 것이다.
항상 아프다고 한 날에 끝에 가서는 이렇게 쓰레기통처럼 말 같지도 않은 말을 퍼부었다. 자기 할 말을 다 쏟아내고 나면 아프다고 안 온라인 카지노 게임. 아마 그때도 일주일 내내 우리가, 아니 내가 시댁에 고맙다고 하지 않은 일로 두통이 오고 아프다가 주말에 놀러 갔다는 소리에 전화로 퍼부은 것이다.
전화를 끊고 돌아갔지만 다 함께 있는 자리에서 더 이상 신랑과 얘기를 할 수는 없었다. 웃지도 못할 얼굴로 억지웃음을 지으며 1박 2일을 보내고 돌아오게 되었다.
난 그때부터 신랑한테 말을 하지 않았다. 머릿속에는 수십 가지 말들이 떠다니며 외치고 있었지만 시작하지 못했다. 그때부터였을까... 난 핸드폰 벨소리만 울리면 심장이 벌렁벌렁 뛰기 시작했다. 그래서 핸드폰이 고장 난 상태로 고치지 않았다. 그렇게 한 달의 시간이 지났다. 중간에 핸드폰을 고쳤지만 고쳤다고 말하지 않았다.
그녀 때문에 또 우리 사이는 망가졌고 아무 말도 없이 남처럼 한 달 두 달의 시간이 지나갔다. 핸드폰이 고장 났다는 핑계로 그 이후로 그녀에게도 연락도 찾아가지도 않았다. 하지만 그런다고 마음이 편하지 않았다. 핸드폰 소리에도 내 가슴은 갑자기 뜨거워졌고 그녀가 던진 쓰레기 같은 말들이 계속 맴돌았다.
그렇게 일상생활을 하면서도 서먹서먹한 상태로 말한마디 하지 않은 상태로 두 달이 넘어가고 있었다. 난 입을 닫아 버렸다. 우울온라인 카지노 게임.
그래서 처음으로 정신과를 찾아갔다. 자리에 앉자마자 그녀가 한 말들을.... 그녀 때문에 주말도 없다는 사실을 털어놓으며 울었다. 어떻게 보면 그녀가 욕한 건 아니지만 욕보다 더 잔인한 말들이었다. 적어도 나에게는...
하지만 의사는 참 간단하게 얘기온라인 카지노 게임.
" 그럼 남편만 보내요. 남편만 가면 되잖아요. "
난 속으로 전혀 공감을 하지 않는구나 싶었고 내가 잘못 찾아왔구나 생각온라인 카지노 게임.
" 또 힘들면 오세요."
하지만 난 다시는 가지 않았다. 어떤 것도 나에겐 위로도 되지 않는다는 사실만 깨닫게 되었다.
그렇게 3개월이 되어 갔다.
우리는 3개월 만에 이야기를 온라인 카지노 게임.
" 엄마가 나도 왜 저렇게 변했는지 모르겠지만 고치기는 힘들 거 같아. 나이 들수록 고치기 힘든거 알잖아...
그럼 방법이 없어.... 우리 이혼하자..."
난 신랑이 우는 모습을 처음 봤다. 방법이 이것밖에 없다니..... 너도 불쌍하지만 내가 더 불쌍한 거 같다. 그런데 그때 신랑이 한마디 했다.
" 그런데 둘째는 데려가도 첫째는 내가 꼭 데려갈 거야 소송을 해서라도 "
첫애한테 정이 많았던 신랑이 첫째는 자기가 데려가겠다는 말을 던졌다. 난 상상을 해봤다. 엄마 없는 아이로 저 이상한 할머니 밑에서 주눅 들어서 살아갈 모습을.... 도저히 그건 용납이 안될 거 같았다. 그날은 그렇게 이야기를 하고 끝냈다.
난 다음날 회사에 출근을 했지만 아무것도 손에 잡히지 않았다. 내 아이를 지켜 내야 한다는 생각이 가득했다. 난 이혼이라는 큰 산에서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결국 오빠한테 전화해서 만나자고 했다. 그리고 부장님께 집안일이라 가봐야겠다며 나와버렸다.
그리고 회사 근처에서 오빠를 만나 상황을 설명온라인 카지노 게임.
" 참 신랑이 병약하구먼..."
그 말을 들으니 그도 불쌍하다는 생각이 불현듯 들었다. 오빠는 어쨌든 신랑이 중간에서 많이 힘들 거 같으니 내가 잘 토닥여 줘라는 이야기로 마무리온라인 카지노 게임.
난 집으로 와서 곰곰히 생각했다. 그녀한테 아이를 절대 맡길 수 없었고 내 가정은 지켜야겠다고... 결국 난 그녀의 잔소리를 한 귀로 흘려버리며 신경 쓰지 않겠다는 마음으로 그녀를 3개월 만에 통화하기로 했다.
그냥 너는 떠들어라 하고 넘어갈 생각으로...
아이를 위해서는 그때는 그렇게가 최선이라 생각온라인 카지노 게임. 그녀에게 전화를 거는데 가슴이 미친 듯이 뛰어댔다.
오랜만에 듣는 목소리에는 그래 이제서야 전화 하는구나 라는 느낌이었다. 마치 그녀가 이겼다는 듯...
그렇게 또 그녀와 화해 아닌 화해로 만남이 시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