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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위선임 Mar 25. 2025

카지노 게임 10번 바꾼 나, 또 사표 낸 이유

1편


30대 후반,

10번쯤 바꾼 카지노 게임.


이제는 안정될 법도 한 것 같은데

이런 내 안일함에 코웃음 치듯

생은 매운 귀싸대기를 날렸다.


삶이 진창에 빠졌다.


직감하는 요즘이다.

다시 새로운 길로 나아갈 때구나.


누군가 그랬다.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하나 막막할 때는

여태껏 어떻게 살아왔는지를 톺아보라고.


생의 큰 파도가 밀려올 때마다 멋대로 올라타온,

만취 상태의 우리네 아부지들 갈지자걸음 같은,

나의 중구난방 커리어 패스 및 인생 루트를

이김에 업데이트해 본다.



인문계 고등학교 재학 3년 - 의류학, 패션 전공 4년 - HRD(인적자원개발) 교육 회사 근무 5년 - 퇴사 후 세계여행 2년 - 호주 딸기 농장에서 워킹홀리데이 9개월 - 귀국 후 여행 작가 3년 - 동시에 강연&여행 인솔&행사 진행&그 외 등등등 오만가지 일들 1년 - 방송국에 스카우트되어 예능국 방송 작가 2년 - 슬럼프, 번아웃, 우울증 3단 콤보로 칩거 생활 1년 반 - 지인 소개로 카페&식료품 마켓에서 아르바이트 근무 1년 - 살아보겠다고 PT샵 등록해 운동 1년 - 바로 그 PT샵에 스카우트되어 퍼스널 트레이너로 근무 2년 반 - 임금체불로 인한 퇴사 - 믿었던 사람에게 뒤통수 맞고 형사, 민사 소송에 휘말리며 암흑기 반년 - 현재, 카지노 게임을 한 번 더 바꿀 시기임을 직감하며 꿈틀대는 중



이 물음표 뜨는 삶의 근원을 되짚어보니

어쩔 수 없이 성장기로 환원하게 된다.


중학생 사춘기 시절,

복잡다단했던 집안 환경 덕에

일찍이 애늙은이가 되었던 나는


언제고 홀로

사회에 내동댕이쳐질 수 있다는 불안감에

스스로 공부를 택했다.


그 덕에 호환마마보다 무섭다는

중2병에 걸려 시름하고 방황하던 친구들 사이에서

단연 두드러진 성적을 거둘 수 있었다.


당시 살았던 지역은 일산이었다.

그때 그곳은 수능처럼 연합고사를 치러

성적순으로 고등카지노 게임에 진학하던 시스템이었다.


시험 전날 교과서를 진지하게 들춰봤다는 카지노 게임로

3년 내내 나름 꾸준하게 1-2등을 유지했다.


그 덕에 지역 내

가장 성적이 높던 카지노 게임에 입학했다.


커트라인에 간신히 걸려

거의 꼴찌로 문 닫고 입학했지만

당시에는 나름의 뿌듯함이 있었다.


하지만 문을 닫고 들어간 그 카지노 게임에서 나는 결국

3년간 마음의 문을 닫게 되었다.


카지노 게임


다니던 카지노 게임의 독서실 풍경이다.

우측 하단, 축구선수 사진이 붙어있는 자리 옆 칸,

고개 숙인 형체가 바로 나다.


입학한 카지노 게임는 입시전쟁의 현주소였다.

새벽 6시부터 밤 12시까지 아이들의 웃음소리보다

문제집과 씨름하는 사각거리는 연필 소리가

더 크게 울렸다.


수능을 앞두고 각종 뉴스 기사에

독서실 사진이 올라가던 그 카지노 게임에서

3년간 가장 크게 배운 것이 있다면,

나는 공부와 크게 결이 맞지 않다는 거였다.


독서실에서 자리를 지켜야 할 때,

모든 친구들이 문제집을 풀 때,

읽어도 읽어도 끝이 없던

'태백산맥', '토지' 등의 대하소설을 잔뜩 쌓아놓고

읽으며 시간을 때우던 별종이 나였다.


뭐가 맞는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공부가 아니라는 것만은 확실했다.


아침에 일어나 교복을 입을 때면

맞지 않는 옷을 입는 것 같아 가슴이 옥죄여왔다.


등굣길 카지노 게임로 가는 버스를 타

'다음 정류장은 00 고등카지노 게임입니다.'라는

안내 방송을 들을 때면 구토감이 밀려왔다.


벗어나고 싶었다.

도망가고 싶었다.


하지만 검정고시라는 카드를

내내 가슴속에 품은 채로도

끝내 자퇴는 하지 않았다.


두려웠다.

모두가 서있는 길에서 이탈하기가.


벗어나서 튀는 것보다

엎드려서 숨는 것을 택했다.


카지노 게임


그렇게 3년을 꾸역꾸역 버텨 졸업한 후

대학 전공은 의류학을 택했다.


별 뜻은 없었다.

획일화된 입시 전쟁에서 된통 쓴맛을 본 후

더 이상 공부라는 걸 하고 싶지 않았을 뿐.


고등카지노 게임 재학 기간 내내

공부하던 친구들 사이에서 별종이었으니

'그럼 나는 공부 쪽이 아닌 예술 쪽인가?' 식의

거친 자의식도 올라온 결과였다.


나에 대한 이해가 턱없이 부족한 채로

무엇이든 진로를 선택해야만 했고

그때 마침 눈에 걸린 게 의류학이었을 뿐이었다.


'어? 나 옷 좋아하는데?' 얄팍한 합리화,

어쩐지 공부를 덜해도 될 것 같은 느낌,

문과에서도 지원할 수 있는 전공인데

예체능의 냄새는 다분히 끼얹어져 있어

허세 충족의 만족까지-


큰 고민 없는 선택이었다.

아니, 지쳐있던 때라 될 대로 되라는 식의

배팅에 가까웠달까.


카지노 게임


하지만 간과한 것이 있었으니,

나는 전형적인 주입식 교육의 표본이었다.


미술을 배워본 적도

그 어떤 창의적 교육도 받아본 적 없던 나는

손끝이 야무진 편인지라 옷을 똑같이 만들라면

기계처럼 복제해낼 수는 있어도


건축물의 사진을 슬라이드에 띄우며

영감을 받아 디자인을 해보라는 교수님 말씀에는

머리가 새하얘져 버렸다.


한때 공부를 잘한다고 생각했으나 영 젬병이었고

친구들과 달리 예술적이라 생각했으나 그도 아니었기에

대학에 가서도 나는 한동안 방황했다.


결국 결석을 밥 먹듯이 해

학사경고를 받기 이르렀다.


이번에도 역시,

카지노 게임를 그만둬야 하나 전공을 바꿔야 하나

이도 저도 다 탐탁지 않은 고민이 시작되었다.


하지만 그때 그곳에서

귀인을 만나게 되며 내 인생은

다른 국면으로 접어들게 되었다.


+2편으로 이어집니다.



완벽보다 완성,

오늘은 여기까지-

위선임 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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