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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부자 Apr 23. 2025

‘카지노 게임’이라는 단어에 대해
난 그런 생각을 했다.

오전 내내 내리는 비로 인해 무겁게 내려앉은 공기속에서 운동을 시작했다. 실내 자전거의 가장 큰 매력을 느끼는 순간이다. 그 어떤 환경에도 불구하고 내 용기만 있으면 땀을 흘릴 수 있다는 것.


2시간 9분짜리 영상의 후반 오늘도 어제에 이어 쇼펜하우어의 문장으로 속에서 찾은 한 단어로 사유의 순간으로 들어가 보려고 한다.

“누군가는 왕의 카지노 게임을 맡고또 누군가는 장군이나 신하의 카지노 게임을 맡는다.
겉으로 보기에 이들은 서로 크게다른 존재처럼 보이겠지만
조금만 들여다보면 그 차이는단지 겉모습에 불과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배우들이 맡은 카지노 게임은 다양하지만결국 그들 모두가 배우라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왕이든 신하든 모든 인간은무대에서 내려오면
고통과 결핍에서자유롭지 않은 삶을 살아가는 배우일 뿐이다.

삶의 무대위에서는 카지노 게임의 차이가 있을지 언정
누구나 비슷한 어려움과 한계를 겪는다는 점에서모두가 같다는 것이다.

당신도 마찬가지다.지위, 재산,
이것들은 사람마다맡은 카지노 게임의 차이를 만들 수는 있겠지만
그것이 내적인 행복이나진정한 즐거움을 결정 짓지는 못한다.”

하와이 대저택 제공 쇼펜하우어의 말중에서


오늘 나는 이 문장 속에서 ‘카지노 게임’이라는 단어에 좀 더 깊게 생각을 해보기로 했다.


쇼펜하우어가 말하는 ‘카지노 게임’은 삶 속에서 우리가 일시적으로 수행하게 되는 사회적 배역, 혹은 자아의 겉모습이다. 그는 우리가 맡은 카지노 게임이 아무리 다르더라도 삶의 본질 즉, 고통, 불완전함, 결핍 앞에서는 모두가 동등하다고 말한다.


무대 위의 배역이 바뀔 수는 있어도 인간이라는 존재의 본질은 같다는 것이다.


그러나 나는 오늘 이 문장을 읽으며 이 ‘카지노 게임’이라는 개념을 다른 의미로 생각해 보기로 했다. 과연 카지노 게임은 그렇게 공평하게 주어지는 것일까?


현실은 쇼펜하우어의 철학처럼 이상적이지 않다. 우리는 태어나는 순간부터 어떤 카지노 게임에 밀어넣어진다. 어느 가정, 어떤 계급, 어떤 지역, 어떤 문화 속에서 태어났는가는 내가 어떤 배역을 맡게 될지를 어느 정도 미리 결정짓는다.


카지노 게임은 결코 평등하게 나누어지지 않는다. 누군가는 태어나는 순간부터 주연의 옷을 입고, 누군가는 평생 조연의 그림자 안에서 자신의 목소리를 찾아야 한다. 가끔은 그런 생각을 한다.


나는 빈 살만의 아들이고 싶고, 이재용 회장의 아들로 태어나고 싶지만, 그 카지노 게임은 내가 선택할 수 없다. 결국 인생이라는 무대에서 가장 결정적인 카지노 게임마저도 우리 손에 쥐어지지 않는 경우가 많다.


그렇다고 내가 이런 카지노 게임을 가지고 태어났으니 체념하고 포기하자는 뜻은 아니다. 나는 오히려 그 반대다. 삶이라는 무대 위에서 처음 주어진 카지노 게임은 불공평할 수 있지만, 그 배역과 카지노 게임 바꾸는 일은 여전히 우리 손에 달려 있다고 믿는다.


그렇다면 어떻게 우리는 우리만의 카지노 게임을 다시 찾을 수 있을까? 나는 그 방법이 바로 ‘내가 서 있는 무대를 바꾸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사실, 우리가 태어난 순간의 무대는 나의 무대가 아니다. 그건 부모님의 세계이며, 누군가의 삶에서 파생된 무대일 뿐이다. 내가 만든 무대가 아니기 때문에 그 무대속의 카지노 게임은 내가 결정할 수가 없는 것이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고, 내가 성장하고, 나의 욕망과 감정을 이해하기 시작하면서 나는 나만의 무대를 바꿀 수 있다. 무대를 바꾼다는 것은 단지 장소를 바꾸는 것이 아니라, 시선을 바꾸고, 관계를 새롭게 맺고, 나에게 맞는 리듬으로 살아가는 방식을 찾는 것이다.


그리고 그 무대 위에서 나는 왕일 필요도, 주인공일 필요도 없다. 내가 만든 무대에서, 내가 원하는 공연을 펼친다면, 조연의 카지노 게임로도 충분히 행복할 수 있다.


왜냐하면 이 공연은 내가 쓰고 연출한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누군가에게 박수를 받지 않아도 무대 조명이 화려하지 않아도 나는 이 무대의 중심에 서 있는 나 자신을 느낄 수 있다.


바로 그 순간 무대에서 진정 내가 원하는 카지노 게임로 삶은 살아가는 것이다. 결국 삶은 태어날 때 주어진 카지노 게임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살아가면서 자신의 무대를 만들고, 자신의 카지노 게임을 찾아가는 과정 그리고 공연을 잘 마치는 그 과정 자체가 행복이라는 것.


어쩌면, 그렇게 본다면 지위나 배역을 넘어서 인간의 본질을 말하고자 했던 쇼펜하우어의 철학과도 내 생각이 맞닿아 있는지도 모르겠다.


나는 오늘 ‘카지노 게임’이라는 단어에 대해, 이런 생각을 했다.

삶은 완벽한 카지노 게임보다. 진심을 담은 리허설(과정)이 더 아름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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