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소기 돌아가는 소리가 바쁘고 시끄럽다. 나는 방바닥에 굴러다니는 검은색 비닐봉지 하나를 발견한다. 그건 지난밤에 내가 아들 머리맡에 놓아둔 거였다. 난 아들이 뒤척이는 소리에 잠에서 깼고, 아들이 이불을 걷어 올라차고 침을 한번 꼴깍 삼키는 것을 봤다. 마치 뭔가 나오려는 것을 억지로 누르는 것처럼. 난 그 상황을 알 것 같았다. 낯설지가 않다. 며칠 전에도 아들은 딱 이렇게 뒤척이고 침을 몇 번 삼키고는 토를 했다. 내가 어떻게 손써볼 겨를도 없이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었다. 간 밤에 난 혹시라도 일어날지 모를 그 일을 대비하여 비닐봉지를 가져다 놓았던 것이다.
“얘는 잠귀가 너무 어두워. 청소기를 머리맡에서 돌려도 모르고 잔다니까.”
푸념 섞인 엄마의 목소리가 잔소리같이 들린다. 한때는 나도 잠이 들면 뭣도 모르고 자는 애였다. 그랬던 내가 그 청소기를 돌리는 엄마가 되고 나니 자면서도 아이의 작은 미동 하나 예민하게 알아채곤 잠에서 깬다. 자다가 곧잘 깨는 건엄마들한테만 주어지는 특별한 능력인 걸까.
며칠 전 아들은 자다가 앉더니만, 갑자기 그 자리에서 바로 토악질하기 시작했다. 깜짝 놀라 일어난 나는 아들을 데리고 화장실로 갔다. “괜찮니? 다 한 거야? 더 나올 것 같아?" 아들은 더 나올 것 같다고 했다. 나는 변기에 코를 박고 토악질하는 아들의 등을 쳤다. "엄마, 이젠 안 나와." 아들의 눈물과 콧물을 씻겼다. 작고 통통한 손도 거품을 내어 닦아줬다. 컵에 물을 따라줬다. 아들은 컵을 들고 몇 번이나 입 안을 헹궈냈다.
“엄마, 미안해”
이제 7살 아들은 오히려 나보다 더 의젓했다.
“괜찮아, 엄마는 너만 괜찮으면 돼.”
이제 남은 건 아들이 토한, 안 괜찮은 이불이었다. 토는 아들과 나의 배게 사이에 있다. 보통 피자 한 판 정도의 크기나 된다. 일단 아들을 아빠 침대에 눕히고 난 그것을 치운다. '어쩜, 동그랗고 예쁘게 잘도 만들었네.' 엄마는 생각한다. 그 안에 모든 게 다 들어 있는 것같았다. 아들은 전부 다 게워냈다. 안 괜찮은 이부자리는 걷어치우고 새 베개와 요를 깐 뒤 아들을 다시 자리에 눕혔다. 새로 꺼낸 이불도 덮어 주었다.
'난데없이 이게 다 무슨 일일까, 아들은 전 날 분명히 어디 아픈 기색 하나 없이 잠자리에 들었었는데.' 난 지난 시간을 되돌아본다. 우리는 저녁에 초밥을 먹었다. 남편이 오랜만에 초밥을 먹고 싶다 했고 아이들이 조금 걸리긴 했지만 나 역시, 저녁 차리는 것도 귀찮고 초밥은 나의 최애 메뉴이기에 선선히 그러자고 했다. 12살 첫째는 의외로 초밥이 입에 잘 맞는 것 같다. 입맛이 까다로운 아이가 하얀 밥 위에 올려있는 회가 뭔지 물어가면서 잘도 집어 먹었다. 좋아! 이만하면 메뉴 선택을 잘했지 싶다. 그런데 복병은 따로 있었다. 문제는 둘째 아들이었다. 날 때부터 식탐이 많아 늘 먹는 것을 손에 쥐고 다녔던 아들 입엔 어쩐지 초밥은 잘 맞지 않는 것 같다. 7살 아들에게 초밥은 아직 이른 걸까.
“누나가 잘 먹는 거 보면 이건 정말 맛있는 거야. 아들아 너도 한 번 먹어봐.”
아들은 한입 먹어 보더니, “웩! 내 입맛이 아니야.” 하고 뱉어냈다. 혹시 몰라 소고기가 올려진 초밥도 주문해 뒀다. “그럼 아들은 소고기 올린 초밥 먹어.” 아들은 몇 개 집어 먹곤 식사를 마치려고 했다. 엄마는 뭔가 부족하다.
“아들아, 엄마가 미역국 데워서 밥 말아 줄 테니까 더 먹어.” 아들은살짝꺼리는 내색을 비췄으나 엄마가 준 미역국 한 그릇을 뚝딱 비워냈다.
엄마는 그제야 마음이 놓인다. ‘오늘도 아이들을 잘 먹였구나.’안도한다. 이상하게도 난 ‘왜, 내 배도 아니고 아이 배를 두둑이 채워야 마음이 편안한 걸까’를잠깐 생각한다. 저녁을 먹었으니 이제 간식을 먹을 차례다. 고소하고 달달한 냄새가 포장을 열지도 않았는데 온 집안에 진동한다. 동네 맛집 꽈배기다. 식탁에 꽈배기를 한 아름 펼쳐놓자, 난 ‘이 늦은 저녁 시간에 설탕에 기름진 꽈배기가 웬 말인가? 또, 왜 이렇게 많이도 사 왔을까.’ 하는 후회를 한다. 꽈배기를 먹기 좋게 자른 후 아이들을 부른다. 저녁을 다 먹은 아이들은 간식을 먹을 수 있는 자격이 부여된다. 입이 짧아 딱 먹을 만큼만 먹는 딸은 꽈배기 몇 개 집어먹고는 자리를 뜬다. 이 시간을 위해 미역국까지 다 먹은 아들은 자리를 잡고 색종이를 접으며 꽈배기를 양껏 즐겼다.
역시나 양이 너무 많았다. 반 이상이 남았다. 나와 남편은 저녁에 아이들이 남긴 소고기 초밥까지 다 먹은 터라 더는 먹을 수가 없었다. 남은 꽈배기들이 누군가 먹어주길 기다린다는 듯이 식탁에 한 자리 차지하고 있었고, 아들이 왔다 갔다 하면서 그 꽈배기들을 마저 먹어 치웠다. 내일 먹을 수도 없는 것이라 난 그나마 다행이다 싶었다. 누가 먹어도 맛있는 저녁 메뉴였건만, 어째 내 마음은 한껏 부풀어오는 내배만큼이나 만족스럽지가 않다. 배가 부르니 그 맛집 꽈배기가 맛있는 줄도 모르겠고, 아이들이 잘 먹지도 않는 소고기 초밥은 왜 더 사 왔는지도, 또 아들은 억지로 미역국을 먹었나 싶고, 모든 게 양은 지나쳤고, 그만큼 쓸데없이지출도많았다.
아들은 자는가 싶더니 다시 토를 시작했다. 서둘러 아들을 데리고 화장실에 간다. 이번에는 아빠가 간다. 난 아들이 남긴 것을 닦고 요와 이불을 걷고, 베개를 치우고, 새 요와 이불을 꺼낸다. 설상가상으로 아이 이마가 뜨겁다. 열이 난다. 39도가 넘는다. 술렁이는 내 마음 다잡고 아들에게 해열제를 준다. 아들은 해열제를 먹고 다시 눕는다. 잠을 청하는 아들을 가만히 보고 있자니 눈시울이 뜨겁게 달아오르는 것을 느낀다. 다 내 잘못인 것 같다. 아들이 다 나 때문에 아픈 것만 같다. 아들이 또 꼴깍꼴깍 침을 삼킨다. 신호다. 아들을 얼른 데리고 화장실로 간다. 방금 먹었던 약물이 그대로 나온다. 이걸 어쩌지. 열을 내리려면 아들이 다시 해열제를 먹어야 할 텐데 그러다 또 토하는 건 아닐까.
엄마는 빠른 선택을 해야 한다. 난 해열제를 먹이지 않기로 한다. 약을 먹으면 아들은 또 토할 테고. 토한다면 약 먹는 게 다 무슨 소용이람. 아무 소용없다. 아들은 "엄마, 자고 싶어. 근데 자꾸 토가 나와." 하며 눈물을 쏟아낸다. 아들이 이제야 아이답게 참을 수 없는 울음을 터뜨린다. 자고 싶은데 잘 수가 없다며 힘들어한다. 내 가슴이 아려온다. 그럴 수만 있다면 내가 대신 아파주고 싶다. 잠이 오질 않는다. 엄마는 본능적으로 잘 수가 없다. 제발, 아들이 잠이 들 수 있기를. 그냥 평소처럼 잘 수 있기만을 바란다. 난 자는 아들 옆에 누워 잘 수 있는 그런 평범한 날들이 얼마나 소중하고 행복한지 새삼 깨닫는다. 아들은 그 후로 3차례나 조금씩 더 토하다가, 마지막에 노란 위액까지 쏟아내곤 새벽 6시나 돼서야 온전하게 잠이 든다.
그날 아침, 아들은 아주 씩씩하게 일어났다. 열도 싹 내렸고 밤새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개운해 보였다.
“엄마, 굿모닝!”
카지노 가입 쿠폰 큰소리로 외치며 나에게 안긴다. 밤새 쌓였던 긴장이 눈 내리듯 사르르 녹아내린다. 미리 끓여 놓은 맑은 미음을 아들에게 준다. 이 순간이 너무나 감사하다.
"엄마, 근데 왜 그냥 흰 죽이야? 나 지금 엄청나게 배고픈데."
"네가 어제 속이 안 좋았잖아. 속을 편하게 하려면 일단 이 죽부터 먹어야 해. 그리고 괜찮으면 엄마가 맛있는 거 해줄게." 아들은 오므라이스가 먹고 싶다고 한다. 엄마는 기꺼이 오므라이스를 해주고 싶다.
“아들아, 어제저녁에 네가 초밥을 먹기 싫어했는데, 엄마 아빠가 너무 강요했던 것 같아. 그래서 어젯밤 네가 열이 나고 토를 했을지도 몰라. 억지로 먹는 건 안 먹는 것보다도 못한데. 앞으로는 안 그럴게. 미안해."
난 아들에게 솔직하게 사과한다. 아들은 "응, 괜찮아" 한다. “그리고 엄마 생각엔, 아들이 배불리 먹은 상태에서 허리를 숙이고 종이 접기만 한 것도 소화엔 좋지 않았을 것 같아. 밥을 먹고 나면 스트레칭 한번 하면서 배속에 소화를 도와주자.” 아들은 흔쾌히 그러자고 한다.
고마운 아들. 그날 밤 아들이 왜 탈이 났는지 명확한 이유는 알 수 없다. 다만 내 욕심으로 아이 배를 채워서는 안 된다는 것을 알았다. 물론 저녁에 먹은 초밥이나 꽈배기 때문이 아닐 수도 있다. 아이를 키우다 보면 얼마든지 일어날 수 있는 일이란 것쯤은나도 이젠 잘 안다. 그러면서도 난 또‘오늘은 뭘 맛있게 해 줘야 아이가 밥을 다 먹을 수 있을까’를 기대하며 저녁을 준비할 게 뻔하다는 것도 안다.
청소기를 잠시 멈추고 널브러진 검정 봉지를 고이 접어 안방 서랍 안에 넣어 둔다. 언제 또 필요할지 모를 일이다. 아니. 필요치 않기를. 있는지 없는지도 모르게 있기를. 그저 매일매일아무 탈 없이 아이가 잠이 들기를. 그 옆에 내가 나란하게 누워 잠을 청할 수 있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