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레어 키건의 《맡겨진 카지노 게임 사이트》를 읽고,
《맡겨진 소녀》 이 소설은 작년 여름에 처음으로 읽었다. 클레어 키건의 《이처럼 사소한 것들》을 읽고 난 후였다. 이제껏 에세이를 즐겨 읽었고 에세이만 주로 써오던 난, 클레어 키건의 소설 《맡겨진 소녀》 마저 읽고 '나도 언젠가 소설을 써 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내가 소설을 쓴다면 클레어 키건, 그녀처럼 써 보고 싶다고 전에 미에게도 말한 적이 있다. 내가 클레어 키건처럼 쓰고 싶다는 건 그녀가 구성하는 스토리 방식이나 표현이나 묘사하는 글솜씨 때문만은 아니다. 물론 그 부분에 있어서도 너무나 훌륭한 작가라는 걸 안다. 그러나 내가 '그녀처럼 쓰고 싶다'는, 클레어 키건에게 본받고 싶은 부분은, 여백과 여지가 많은 글을 쓴다는 데 있다. 정확하게 쓰지만 정확히 설명하지는 않는다. 함축적인 표현이나 암시로써 그저 분위기나 감정을 전달만 할 뿐이다. 그것을 받아들이고 어떻게 해석할지는 오로지 독자에게 남겨둔다. 바로, 난 그 부분에 매료됐다. 내가 쓰고 싶은 글의 지향점이기도 하다. 난작년에 《월요일의 작가들》이라는 동아리 문집을 공저하면서, 작가로서 나를 이렇게 소개했다.
야망 있는 여자
내가 쓰는 글이 다른 사람에게 읽히기를 원한다.
내 글이 나를 떠나 그의 글이 되기를 바란다.
그것이 나의 야망이다.
그것이 얼마나 어렵고 힘든 일인지 알기에 난 감히'야망'이라는 표현을 썼다. 앞으로 내 글을 어떻게 써야 할지 구체적인 방향성을 제시한 그녀의 또 다른 소설 《맡겨진 소녀》를 읽는다는 건 어쩌면 당연한 수순이었다. 《맡겨진 소녀》는 《 The Quiet Girl 》이라는 제목으로 2022년 아일랜드에서 영화로 제작되기도 했다. 영화의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이 소설은 '아무 말도 하지 않는 것의 중요성'을 다룬다. 주인공 '말이 없는 소녀'는 "입 다물기 딱 좋은 기회", "절대로 말하지 않겠다"라고 생각하는 등, 그 주제를 부각하기도 한다. 하지만, 내 개인적인 소견으로 이 소설의 정수는 따로 있다고 본다. 그건나의 이런 물음들로부터 비롯된다.
"마침내, 소설의 마지막 페이지를 덮고 나서 나는 왜 그토록 참을 수 없는 울음을 터뜨렸을까?
어떻게 이 짧은 이야기가 이토록 긴 여운을 남기는가?
나는 왜 이 책을 내 가슴에 꼭 껴안았나?"
이야기는 주인공 소녀가 어머니의 출산을 앞두고 얼굴도 모르는 먼 친척 집에 맡겨지면서 시작된다. 이 맡겨진 소녀인 '나', '내'가 바로 소설의 화자인데, '나'는 우리 모두의 내면에 있는 어린아이와 같다. 우리는 모두 자신이 선택할 수 없는 가정에서 태어났고, 그 환경에 따라 저마다 다른 결핍을 안고 자라난다. 그 결핍은 우리가 어른이 되어도 우리 내면에 있는 어린아이와 같이 존재하는데,
이 소설의 진가는 바로 여기서 드러난다.
"아주머니의 손은 엄마 손 같은데 거기엔 또 다른 것, 내가 한 번도 느껴본 적이 없어서 뭐라고 불러야 할지 모르겠는 것도 있다. 나는 정말 적당한 말을 찾을 수가 없지만 여기는 새로운 곳이라서 새로운 말이 필요하다."
(클레어 키건, 《맡겨진 카지노 게임 사이트》, 25쪽)
소녀가 말했듯 우리가 지닌 결핍은 전에 겪어 본 적이 없어, 우리가 전혀 알지 못하거나 또는 무엇인지 정의할 수가 없어 아예 새로운 말일지도 모른다. 그렇기에 우리 내면에 존재하는 그 어린아이는 좀처럼 말하지 못한 채 스스로 침잠해 있다.
그걸 알고 있기라도 한 듯,저자는 카지노 게임 사이트의 마음속에 들어가 카지노 게임 사이트의 시선을 따라, 섬세한 묘사와 아름다운 문체로써 카지노 게임 사이트의 목소리가 되어 독자 내면에 존재하는 그 어린아이를 깨운다. 소녀의 그 목소리는 너무도 맑고 순수하여 소녀와 독자 사이의 거리를 불분명하게 하고 결국 독자로 하여금 자연스레 소녀에게 동화되도록 한다. 게다가 주인공 카지노 게임 사이트의 이름이 한 번도 불리지 않는 것으로 독자는 더욱더 이 카지노 게임 사이트를 '나'로 느낄 수 있다.
아주머니가 머리빗을 꺼내어 내 머리카락을 빗고, 숨죽여 백까지 세는 소리가 들리더니, 이윽고 빗질을 멈추고는 느슨하게 땋아준다. 그날 밤 나는 금방 잠들고, 잠에서 깼을 때 예전에 겪은 기분이 들지 않는다. 그날 아침 킨셀라 아주머니가 침대를 정리하면서 기쁜 표정으로 나를 본다.
"벌써 피부가 좋아졌네, 봤지?" 아주머니가 말한다.
"조금만 신경 쓰면 된다니까."
(클레어 키건, 《맡겨진 카지노 게임 사이트》, 44쪽)
카지노 게임 사이트는 맡겨진 곳에서 처음엔 두렵기도 하지만 곧 전에받아보지 못한 애정 어린 관심과 따뜻한 보살핌으로 '사랑'을 느끼고, '사랑'을 배우며 한껏 성장하게 된다. 책의 띠지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다
그 찬란한 여름을 보낸 카지노 게임 사이트는 더 이상 예전의 그 카지노 게임 사이트는 아니다.
카지노 게임 사이트는 충분히 배웠고, 충분히 자랐다.(클레어 키건, 《맡겨진 카지노 게임 사이트》, 96쪽)
카지노 게임 사이트가 지닌 결핍은 결코 너로 인한 것이 아님을,
그저 네가 태어난 환경에 따른 것임을,
어떤 경우에라도 너는 소중하고 사랑받을 만한 존재임을, 카지노 게임 사이트는 이제 알게 됐다.
내가 이 소설에서 느끼는 영광은 소녀의 그 찬란한 여름이 내게도 고스란히 전해졌다는 데 있다. 소설은 소녀와 함께 나의 어린 소녀를 어루만져 줬다. 따뜻한 물에 씻겨주고 헝클어진 머리를 곱게 빗어주고 땋아줬다.
책을 다 읽고 나서 내가 가슴속 깊이 꼭 껴안았던 건,
다름 아닌, 내 안의 어린 '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