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시 선 Apr 09. 2025

와일드 카지노 게임 사이트!

꼭 카지노 게임 사이트 되야만 했을까

영화 <와일드 로봇을 봤다. 딸의 강력한 추천으로 보게 됐는데 알고 보니 애니상에서 무려 9개 부문이나 트로피를 휩쓸세계적으로 주목을 받으며 여러 대단한 성과를 이뤄낸 영화였다. 나는 그 모든 것을 차치하고 딱 한 부분에서 아주 깊은 감동을 받았다.


이 영화의 주인공은 AI 로봇으로 이름은 로즈다. 그의 성격을 mbti로 분석한다면 아마도 분명히 대문자 ESTJ 일거다. AI 로봇답게 그는 자못 대문자 T 같은 대사만 읊조린다. 그런 그가 아기 기러기 브라이트빌의 보호자가 되고, 보호자로서 브라이트빌에게 느끼는 감정, 바로 엄마의 가슴을 갖게 되는 부분에서 난 참을 수 없는 눈물을 쏟아냈다. 엄마라면 누구나 공감할 수밖에 없는눈물 포인트인 것이다.


나를 '엄마'라고부르는

가진 건 쥐뿔도 없으면서 쥐뿔이라도 내어주는

네가 싫다고 떠밀어도 내가 좋다고 엉겨 붙는

내 모든 것을 따라 하고 점점 나를 닮아가는

내가 곧 너의 세상 전부인

그 천진난만하고 선량한 어린 생명체여


나라는 작은 존재가 너에게 그토록 절대적인 존재가 되어

너의 큰 사랑에 가슴이이토록 절로 벅차올라

너를 위해서라면내 심장도 기꺼이 내어줄 수 있으니

그 모든 것을 기쁨으로 받아들여


마침내, 나는 너의 엄마가 된다.


그렇게 로즈는 엄마가 되어 로봇의 부품이 아닌 엄마의 가슴으로 살아가게 되는 이야기다.




영화를 보는 내내 나는 우리나라 영화 <마당을 나온 암탉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다. 그만큼 두 영화는 유사한 점이 꽤 많다. 우선 주인공들이 야생이라는 낯선 공간에 노출되고 우연한 계기로 '막 알을 깨고 나오는 새끼'의 엄마가 되어 그 새끼를 사랑과 정성으로 키우며 위험을 무릅쓰고 헤쳐나간다는 전체적인 줄거리가 대략 비슷하다. 게다가 그 새끼들이 크는 과정에서 자기 종을 만나고 자기를 키운 엄마에 대해 의구심을 품으며 엄마와의 갈등을 낳고, 자기의 정체성을 찾아 헤매는 새끼들의 혼란스러운 모습을 그리는 설정 또한 같다. 두 영화 모두 주인공이 진짜 엄마는 아니지만 새끼를 키우면서 진짜 엄마가 되고 새끼가 자기를 떠나 자립하기까지 그 여정을 주인공 엄마의 시선을 담아 그려내고 있다는 것이다.


다른 점이 있다면,<마당을 나온 암탉의 주인공 잎싹은 여린 몸 하나로 청둥오리 새끼를 키워내는데 <와일드 로봇의 로즈는 단연 그 이상이었다는 거다. AI 로봇으로서 그 무한한 능력이 있다는 게 달랐다. 로즈는 선천적으로 잘 날 수 없는 기러기 새끼 브라이트빌이 자신이 로봇이라서 할 수 있는 능력을 최대한 발휘해 그가 스스로 잘 날 수 있도록 끝까지 돕는다. <마당을 나온 암탉에서 청둥오리는 자기의 정체성을 찾고 갖은 노력을 다하여 자기의 힘으로 그 무리의 리더가 되고,<와일드 로봇에서 기러기도 결국엔 그 무리의 리더가 되는데 여기서는 그 과정이 거의 생략주순이다. 사실 기러기 브라이트빌은 리더는 고사하고, 오직 타고나길 잘 날 수 없는 날개를극복하여 기러기 무리와 함께 겨울이 오기 전 남쪽으로 떠나는 것, 그것만이 그의 꿈이자 목표였다.


그것이면 충분했다. 그런데 갑자기 브라이트빌은 얼떨결에 더가 된다. 기러기무리의 비행과정에서 로즈와 같은 AI로봇으로부터 공격을 받는데 브라이트빌이 그 로봇을 전혀 두려워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무리의 원래 리더 할아버지가 그에게 자기 자리를 넘겨주고 자신은 희생을 하는 것이다. 꼭 그래야 했나? 여기서 난 '굳이 브라이트빌이 더로 성장할 필요까진 없는데'하는 반감이 들면서 이 부분이 억지스럽게 느껴졌다. 마치 무리의 리더가 되야만이 진정한 자립인 것처럼, 성공인 것처럼 말이다.


왜 꼭리더로 만들어야 했을까?

관객들이 원해서인가?

우리가 그토록 리더에 열광하는가?

혹시 우리는누구나 카지노 게임 사이트 되기를 바라는 건 아닐?


솔직히 나 같은(내향형) 사람도 아니라고 장담할 순 없다. 나는 아니더라도 나의 아이들만큼은 어디서나 주목받는 리더가 되기를 바라기도 한다. 한 번쯤은 반장이나 학교 회장과 같은 리더가 되기를 원하는 것이다. 그런 아이의 엄마들이 부러운 것도 사실이다. 그건 내 안에 숨겨진 어떤 욕망의 반증이 아닐까.


다만 나의 자아가 애써 누르고 있는- '아니야, 내겐 맞지 않아. 나는 있는 듯 없는 듯 있는 게 아. 그게 편해. 어떻게 이 세상에 리더만 있겠어. 그 리더를 따르는 사람들이 있어야지. 꼭 리더일 필요는 없어. 리더가 리더역할을 잘할 수 있도록 이끌어주고 믿어주는 나 같은 역할도 필요해. 더 중요해.' 하며 내 안의 욕구를 스스로 잠재울지도 모른다.


어쩌면 이 영화는 그런 사람들의 내밀한 욕구를 충족시키고자 선천적으로 열등한 기러기새끼를 리더로 만든 것일 수도 있다. 와일드 로봇이 엄마였다는 그 특수성, 그것에 의해 자신의 한계를 극복하고, 무리의 리더가 되는 것으로 증명해 보이는 것일 테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모두가 다 리더가 될 수는 없다는 것이다. 리더는 극 소수다. 우리 대부분은 단지 리더를 따르는 보통사람들인 거다. 우리 사회는 그 보통사람들의 참된 가치를 스스로 미처 깨닫기도 전에 지나치게 리더만을 주목한다.


바라건대, 브라이트빌이 그저 기러기 무리와 함께 그들만의 비행을 무사히 마치는 것으로 보통사람들의 진정한 가치를 전해주면 어땠을까?


카지노 게임 사이트


꼭 카지노 게임 사이트 아니라도 자기의 소명을 다 하는 삶이라면그것으로 이미 충분하지 않을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