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극히 사랑에 관한 소설이기를
아무것도 하기 싫은 그런 날이 있다. 오늘이 딱 그렇다. 이른 아침 시끄럽게 울려대는 알람 소리에 겨우 몸을 일으켜 잠에서 깨고 잠옷 바람으로 아이들 아침을 챙기고 등교까지 시켰다. 내 앞에서 연신 야옹거리며 꼬리 치는 보리에게 사료를 주고 나면 이제 급한 불은 다 껐다고 볼 수 있다. 물론 이것 말고도 내가 해야 할 일들은 아직도 많이 쌓여 있다. 환기를 위해 집안에 모든 창문을 다 열어야 하고 안방에 이부자리도 정리해야 한다. 밤새 가라앉은 고양이 털과 먼지들을 청소기로 빨아들이는 것부터 시작해 거실 여기저기에 놓인 물건들의 제 자리를 찾아줘야 한다. 또 어제 설거지 한 그릇들을 정리하고 오늘 새로 나온 그릇들을 다시 설거지해야 할 것이다. 오전 중으로 빨래를 널기 위해서는 지금 당장 세탁기도 돌려야 카지노 게임 사이트만...
지금 난 이 모든 게 하기 싫다.
아무것도 하기 싫은 날이란 왠지 우울하고 힘이 안 나는 날이다. 내가 감정의 노예라는 것을 증명이라도 하듯 어느새 스며든 이 부정적인 감정은 나의 일상을 흔들어 놓는다. 나는 마치 그것을 기다리던 기다렸던 사람처럼 바로 흔들리고 만다. 흔들려서 결국엔 그 무엇도 하기 싫은 거다. 감정이 나의 행동을 제압하는 것이다. 식탁에 앉아서 핸드폰을 보는데 이럴 바엔 차라리 운동하러 가는 게 낫겠다 싶다. 운동을 가야겠다는 생각은 든다. 이 와중에… 이 아무것도 하기 싫은 이 기분에… 이 감정에…? 감정이 의아하다는 듯 내게 물어오지만 난 그저 담담히 옷을 갈아입고 집을 나설 뿐이다. 운동을 하러 간다. 그래. 아무것도 하기 싫다는 건 집안일이 하기 싫다는 거다. 전업주부인 내가 가장 기본으로 해야 하는 그 일을 말이다. 어쩌면 그게 하기 싫어서 난 아침부터 이 부정적인 감정을 불러왔는지도 모른다.
피곤해서 그렇다고 난 생각한다. 간밤엔 책을 읽느냐고 새벽 2시가 되어서야 잠에 들었다. 어떤 책은 나의 일상을 완전히 무너뜨린다. 다른 걸 못하게 한다. 그것만 읽고 싶도록 한다. 내가 이걸 끝내야 다른 걸 할 수 있을 것 같다. 기어이 자야 하는 시간을 훨씬 넘긴다. 어제 읽은 책은 한강 님의 소설 <작별하지 않는다였다.
소설은 불편한 진실을 그대로 드러낸다. 이 소설이 아니라면 들여다보지 않았을 진실을. 차마 눈 뜨고는 볼 수 없는 아픔과 상처, 고통이 가득했다. 그것들을 알게 됨으로써 나는 더 이상 전과 같지 않았고 편하지도 않게 되었다. 나는 아프고 지쳐서 그만 힘을 잃는다. 일부러 찾아보지 않는 이유다. 남의 상처와 고통 따위에 관심을 두지 않으려는 이유다. 그것은 어떤 식으로든 나의 작고 평온한 일상에 균열을 낼 수 있기 때문이리라.
"무엇이 지금 우릴 보고 있나, 나는 생각했다.
우리 대화를 듣고 있는 누가 있나.
아니, 침묵카지노 게임 사이트 나무들뿐이다.
이 기슭에 우리를 밀봉하려는 눈뿐이다."
-한강, 『작별카지노 게임 사이트 않는다』 320쪽
소설은 주인공 인선의 혼을 통해 제주 4.3을 통과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인선의 혼과 대화를 나누는 나, 경하가 바로 이 소설의 화자다.경하가 듣듯 내가 듣는다. 경하는 인선과 대화를 나누다 누가 자기들을 보고 있는 것 같다고 말을 하는데, 순간 그게 바로 나라는 것을 알아차리곤 소름이 돋았다. 내가 마치 그 장면 안에 속해 있는 것처럼 느꼈다. 내가 그 둘의 대화를 몰래 엿듣는 것 같기도 하고, 내가 그저 침묵하는 나무가 된 것 같기도 했다. 저자는 그렇게 독자를 소설 속 장면으로 완전히 끌어들이고 독자의 자리를 기꺼이 내어 줬다. 경하의 그 "누가 있나"라고 하는 말은 나를 포함한 수많은 독자를 두고 하는 말이었으리라. 저자가 다른 많은 사람들에게 들려주고 보게 하고 알게 하려고 그랬으리라.
우리는 들어야 하고, 보아야 하고, 알아야 한다. 그 모든 것이 내 것이 아니라도 내 몸에 아로새겨 그들과 같이 느끼고 아파하고 슬퍼해야 한다. 그렇게 잊지 카지노 게임 사이트 거다. 무엇을? 제주 4.3과 같은 국가에 의한, 사상에 의한 무차별한 폭력을 말이다.
폭력에 의한 고통과 상처를.
그것이 어떻게 인간의 살갗을 뚫고 내면 깊숙이 파고들고 박히는지를.
한 인간의 삶을 어떤 식으로 휘두르는지를.
누구는 이것을 어쩔 수 없는 일이었고 그저 실수라고 말할지 모른다.
실수라면, 실수는 언제든 다시 반복될 수 있다는 것 또한 잊지 말아야 한다. 그냥 덮어둬서는 안 되는 이유다.
그렇게 잊지 않고 알고 있는 것만으로도 우리는 앞서 조심할 수 있다. 경계할 수 있다. 고칠 수도 있다. 그것으로부터 우리를 지켜내고 보호할 수 있다. 그것은 우리 모두의 실수이기도 하나 나도 모르게 어쩌다가 일어나는 그런 종류의 실수는 아니다. 분명히 어떤 목적이 있는 인간의 욕심과 잔악함, 폭력성. 이기심에서 비롯된 것이이므로 우리는 더 이상 '침묵카지노 게임 사이트 나무'가 돼서는 안 된다. 그것을 '밀봉하려는 눈'들을 띄게 해야 한다. 두 눈을 크게 뜨고 지켜봐야 한다. 그렇기에 우리가 먼저 알고 있어야 한다. 인선의 혼이 들려주는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당시 제주도민들은 그야말로 무참히 희생되었다.
이유도 모른 채. 절멸당해야만 카지노 게임 사이트 존재들이 된 거다.
그 섬 그 지역에 살고 있다는 이유만으로...
내 일이 아니라고 함부로 떠드는 사람들이 있다. 그건 그들이 잘 모르고 하는 소리다. 단지 지금 내가 여기 살고 있다는 이유만으로 누군가 갑자기 나를 찾아와 여기저기 들쑤시고 핍박하고 억압하고 탄압한다면 그래도 이건 내 일이 아니니 괜찮다고 말할 수 있을까. 내 가족 중에 혹은 친구 중에 그 일을 당한 사람이 있는데도 과연 그렇게 쉽게 말할 수 있을까. 그게 아니더라도 남의 일이라고 방관할 수 있을까. 그러다 정작 본인이 순식간에 희생자가 될 수 있다는 걸을 우리는 유념해야 할 것이다. 보통 사람들인 우리에겐 총과 칼이 없기 때문이다. 카지노 게임 사이트만 세상이 달라졌다. 총과 칼이 없다 해도 얼마든지 그것들을 상대할 수 있는 세상이 되었다. 우리가 제대로 알고 바로 서서 싸울 용기만 있다면 말이다.
이제는 용기를 낼 때다. 두 번 다시 이런 일은 없어야 한다. 누구를 위한 희생인가. 누구를 위한 전쟁이고 폭력이란 말인가. 그런 점에서 2024년 한강 님의 노벨문학상은 그 의미가 대단히 크다 할 수 있다. 우리에게 알려주는 것이다. 경고하는 것이다. 정면으로 부딪히고 맞서라고. 지금이라도 용기를 내보자고.
마주할 용기.
똑바로 쳐다볼 용기.
같이 아파할 용기.
맞서 싸울 용기.
이 소설의 제목처럼 나 역시 그 어떤 것과도 작별하지 않겠다 다짐한다. 잊지 않겠다. 바로 알겠다. 용기를 내겠다. 그리고 제주 4.3으로 희생된 많은 분들의 혼에 깊은 위로를 전하고 싶다. 조금이라도 위안이 될 수 있다면. 간절히. 아주 간절히 바란다.
"숨을 들이마시고 나는 성냥을 그었다. 불붙지 않았다. 한 번 더 내리치자 성냥개비가 꺾였다. 부러진 데를 더듬어 쥐고 다시 긋자 카지노 게임 사이트이 솟았다.심장처럼.고동치는 꽃봉오리처럼. 세상에서 가장 작은 새가 날개를 퍼덕인 것처럼."
-한강, 『작별카지노 게임 사이트 않는다』 325쪽
그런 바람으로, 용기로 나의 일상을 다시금 깨운다. 지금 나는 소설 때문에 피곤하고 슬퍼졌고 그래서 아무것도 하기 싫어졌다지만 이 글을 쓰는 동안 깨닫는다. 저자는 독자가 우울하고, 힘들고 피곤하라고 이 소설을 쓰지 않았다는 것을 말이다. 이것으로 괴롭고 고통스럽고 아프더라도, 피하지 않고 마주할 용기를 얻고 그 용기로 내게 주어진 이 생을 축복하자고 마음먹는다. 저자가 말했던 '이리도 잔인하고 폭력적이기도 한 세상이 또 이리도 아름다울 수 있는 세상'이기도 한 것처럼 같이 아파하지만 같이 쓰러져서는 안 될 것이다. 적어도 우리는 살아있기 때문이다. 살아있는 한 우리의 생은 이대로 아름다운 것이니 그걸 증명하기라도 하듯 보란 듯이 용기 내어 살아가야 한다. 바로 이 소설이 우리 모두에게 하고 싶은 말일 것이다. 그렇기에 한강 님은 이 이야기가 지극히 사랑에 관한 소설이기를 바랐을지모른다. 사랑은 사람을 살게 카지노 게임 사이트 것이니까. 지금 여기, 내가 잡을 수 있는 나의 이 생을 누려야 카지노 게임 사이트 것이다. 하기 싫고 힘든 일도 많은. 어쩌면 매 순간이 고해인 우리의 삶을 그래도 짊어지고 이끌어 나아가야 카지노 게임 사이트 이유인 것이다.
어쩌자고 집안일하기 싫은 핑계로 여기까지 왔나.
자. 그럼 이제 무엇부터 시작할까.
일단 창문 열고 환기부터 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