앗, 차가워! 맞다. 오늘 따뜻한 물이 나오지 않는다고 했다. 며칠 전 공고문을 봤던 기억이 난다. 아파트 배관 공사 작업 때문에 온수가 중단된다는 내용이었다. 그걸 깜박 잊고, 늘 하던 대로 세면기 수전을 온수 방향으로 돌려 물을 틀었다. 순간 얼음장같이 차가운 물에 화들짝 놀란다. '이봐요, 따뜻한 물은 뭐, 아무 때나 나오는 줄 알아요?' 누군가 내게 물어 오는 것 같다. 생각지도 않던 냉수 세안에 아침부터 정신이 번쩍 든다. 매일 아무렇지도 않게 썼던 따뜻한 물이 저절로 나는 게 아님을 새삼 감각한다.
내가 어렸을 땐 지금처럼 수전의 방향을 돌린다고 해서 온수가 나오는 게 아니었다. 직접 차가운 물과 뜨거운 물을 섞어적당히 따뜻한 물을 쓸 수가 있었다. 때때마다 그런 수고를 했다. 난 시골에 있는 할머니 집에서 자랐다. 내가 말을 하기도 전에 부모님은 이혼하셨고, 가장이 된 엄마는 돈을 벌러 일을 가야 했으므로 난 엄마 없이 할머니 손에 맡겨졌다. 난 추운 겨울이면 안방에서 세수를 했다. 할머니가 손수 내 얼굴을 닦아주셨는데 무료 카지노 게임 손이 거칠고 차가워서 인상을 잔뜩 찌푸렸다. 그래도 세숫물은 따뜻해서 좋았다. 할머니는 수건으로 얼굴에 물기를 쓱쓱 닦으셨다. 할머니가 크림을 발라주셨는지는 잘 모르겠다.
7살이 된 나는 유치원이라는 곳을 다니기 시작했다. 그 시절엔 시골에서 유치원 다니는 게 흔한 일이 아니었다. 유치원은 대부분 시내에 있어 너무 멀었고 교육비도 만만치 않았다. 엄마는 힘들게 번 돈으로 나를 유치원에 보내길 원했다. 내가 너무 말이 없고 숫기가 없어 유치원에 다니면 좋아질 거라고 믿었던 모양이다. 할머니는 손녀딸을 유치원에 보내기 위해 아침마다 마당 한가운데 있는 물뽐뿌(물 긷는 펌프)로 물을 기러 올리셨다. 부엌 아궁이에 불을 피우고 솥에 그 물을 데웠다. 눈이 오나 비가 오나, 할머니는 물을 기르셨다. 손녀는 뜨끈한 안방 아랫목에서 게으름을 피우느라 밖에 있는 무료 카지노 게임를 본 적이 없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무료 카지노 게임를 바로앞에서 본것처럼눈에 선하다.
솥에 데우는 물은 온도를 조절할 수 없다. 아주 뜨겁게 데워진 물에 차가운 물을 부어 가며 손으로 직접 온도를 맞춰야 한다. 할머니는 대야 두 개를 준비하신다. 하나는 씻는 물, 다른 하나는 헹구는 물을 담는다. 할머니는 두 손으로 대야를 들고 신발을 벗고 마루로 올라와, 안방 문을 열어 먼저 대야를 들이신다. 대야를 따라 들어온 차가운 바깥공기는 어린 손녀를 이불속으로 더 꼭꼭 숨긴다. 할머니는 얼른 안방 문을 닫고 손녀를 깨우신다. 이불을 들춰 손녀를 꺼내 대야 앞에 앉힌 뒤, 손녀 얼굴 밑에수건을 데 주면 세수시킬 준비가 끝난다. 꽤 힘들고 번거로운 과정이었을 텐데. 할머니는 얼굴 한번 붉히지 않고 모든 수고를 하신다. 할머니의 이런 노고를 어린 손녀가 알 리 없다.
그것도 모르고, 어린 마음에난 다른 아이들처럼 엄마 아빠와 살지 않고 무료 카지노 게임와 사는것이 싫었다.학교에서소풍을 가거나 운동회를 하면 엄마가 아니라 무료 카지노 게임가 오시는 게친구들 보기에창피했다. 커서는 내가 엄마 아빠와 살지 않아 사랑을 받지 못하고 자랐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내 성격이 이 모양 이 꼴이라고 나를꾸짖었다. 매사 자신감이 없고 부끄러움을 많이 타는 성격이 마음에 들지않았기때문이다. 더 커서는 결혼하고 아이를 낳아 엄마가 됐다. '엄마'라는 존재가 아이에게 어떠할지, 그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아이에게엄마가 그저 숨 쉬는 공기처럼 당연한 존재이기를 바랐다.아니, 할 수만 있다면 내가 더없이 좋은 엄마가 되어 주고 싶었다. 아이 곁에서 내가 엄마로서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하고자 마음먹었다. 그렇다면 아이는 분명 나와는 다르게 클 거라고굳게믿었다.
하지만 아이를 키워보니, 내가 생각하는 좋은 엄마가 되기란 여간 쉬운 일이 아니었다. 내가 노력하여 좋은 엄마가 된다 해도, 그 엄마가 과연 내 아이에게도 진정 좋은 엄마일지 확신이 들지 않았다. 더구나 아이의 타고난 기질을 바꿀 정도의 영향력도없었다. 나의 바람과는 달리, 나와 비슷한 기질의 딸을 보며 알게 되었다. 딸이 타고난 기질은 나의 노력으로 쉬이 변하지 않았다. 변할 수 없는 것도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걸 인정하고, 나의 기대와 욕심 없이, 딸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니 사랑해 마지않는 나의 딸이 보였다. 그러자 내가 보였다. 마음에 들지 않던 나의 성격은어릴 때 부모님없이 자라서가 아니라, 그건 그저 타고난 나의 기질 때문이었다는 것을 스스로 자각하게 된 것이다. 그제야 불행하게 여겼던 나의 유년 시절에서 나는 해방될 수 있었다. 오랫동안 지겹도록 나를 따라다닌 피해의식에서 말이다. 또한 나 역시 우리 할머니의 사랑해 마지않는 손녀였다는 걸 상기했다.
손녀가 유치원 가는 길은 곤혹이었다. 유치원에 가려면 꼬박 한 시간은 걸어야 한다. 게다가 가는 길엔 가파른 고갯길과 공동묘지가 연달아 있다. 고갯길 꼭대기엔 옷을 홀딱 벗은 변태가 서 있다는 소문이 돌았다. 공동묘지를 지날 때면 귀신들이 쫓아와 나를 잡아갈지도 모른다며 공포에 떨었다. 유치원에는 친한 친구도 없었다. 신나게 뛰어노는 친구들을 물끄러미 바라봤다. 삼삼오오 모여 노는 친구들과 어울리고 싶었지만, 끼질 못했다. 유치원에 가면 어떻게든 시간을 보내고 왔다. 어려운 사정에도 불구하고 유치원 다니는 호사를 누린다는 걸 눈치껏 알았다. 그런 나를 유치원에 보내기 위해 아침마다 깨워서 세수시키고 밥을 먹이고 옷을 갈아입혀 준 사람이 바로 우리 할머니였다. 할머니가 유치원에 가라고 나를 내보내면, 나는 가지 않고 뒤뜰로 숨어들어 할머니가 오시기를 기다렸다. 그러면 할머니가 나를 찾아와 유치원까지 바래다주셨다. 할머니가 나 대신 유치원 가방을 메고, 난 할머니 뒤를 따랐다. 그 모습을 본 동네 사람들은 애가 유치원을 다니는 게 아니라 할머니가 유치원을 다닌다고놀려대며웃었다. 또 나이 많은 무료 카지노 게임를 고생시킨다고 나를 나무랐던 기억도난다.
어느새 할머니가 돌아가신 지 10년이 더 지났다. 난 아직도 실감이 잘 안 난다. 꼭 내가 자란 그곳에 할머니가 계실 것 같다. 나는 문득 유년 시절로 돌아가는 상상을 한다. 나의 희망 사항들도 가득 태운다. 유치원이 끝나면 나는 제일 먼저 신발을 갈아 신고 선생님과 친구들에게 씩씩하게 인사도 하고 나온다. 공동묘지를 유유히 지나, 고갯길 꼭대기에 변태는 여전한지를 한번 쳐다본다. 조금 더 걸어가면 내가 사는 동네에 다다른다. 안도의 숨을 쉰다. 할머니 집에 거의 다 왔다. 내가 “할머니, 잘 다녀왔습니다.” 인사를 하면, 은회색에 곱게 쪽 찐 머리를 한 할머니가 나를 반겨주실 것 같다. 내 이름을 불러 주실 것만 같다. 할머니가 내 안에 살아계심을 선연히 느낀다.
아파트 배관 작업이 끝났다. 수도를 틀자, 흙탕물이 콸콸 쏟아졌고 이내 뜨거운 물이 흘러나왔다. 수전을 다시 돌려 적당히 따뜻한 물로 조절한다. 할머니 생각이 난다. 따뜻한 물을 맞추려고 몇 번이고 수고하셨을 할머니가떠오른다. 나는 소매를 걷어 올려 옷이 젖지 않게 한다. 손을 먼저 깨끗이 씻고 얼굴을 닦는다. 이제 다 큰 어른은 알아서 크림도 잘 바른다. 나는 거울을 보며 가장 예쁜 미소를 지어 보인다. 마치 할머니가 어딘가에서 나를 지켜보고 있다는 듯이.
비로소나를 사랑하게 되었다는 듯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