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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됐거든 Apr 14. 2025

무료 카지노 게임 토요일 저녁 #1

기억의 무료 카지노 게임 - 나의 파괴자이자 구원자


격주로 나가는 글쓰기 모임이 있는데 거기서 쓴 글을 간혹 업로드해볼까 합니다.예전에 썼었거나 최근에 쓴 글 중 제 마음에 드는 걸 골라서 브런치에 남겨볼 예정이에요.글 주제는 랜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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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의 무료 카지노 게임

- 나의 파괴자이자 구원자


지나간 나쁜 일을 끊임없이 계속 생각하는 것, 반추, 되새김질, rumination은 나의 단점이다.


가장 긴 시간 무료 카지노 게임을 했던 일은 고등학교 자퇴였다. 나중에 글로 풀어볼 기회 있겠지만, 나는 경쟁을 이기지 못해 중학교를 자퇴하고 검정고시를 쳤고 한 해 일찍 고등학교를 입학했다. 내가 들어간 학교는 과학고였는데 경쟁을 버거워하는 애가 경쟁이 더 치열한 곳으로 들어간 것이다. 중학교 검정고시에, 나이는 어려, 게다가 쟁쟁한 실력자들까지 나는 점점 위축되어 갔고 스트레스를 견디지 못해 결국 고등학교도 나오게 되었다. 그게 꽤 상처가 되었다. 내가 비겁하게 도망쳤다는 느낌이 너무 컸다. 어른이 되고서 돌이켜보니 그저 내게 맞지 않는 자리를 박차고 나온 것일 뿐이었고오히려 지금은 더 빨리 거길 벗어나야 했다고 생각하는데 그때는 그냥 그게 엄청난 흠결 같았고 왜 나는 다른 아이들처럼 버텨내지 못했을까, 왜 그런 결정을 했을까 끊임없이 스스로에게 되물었다. 고등학교 그게 뭐라고 내가 나에게 낙인을 찍었고 그게 10대 후반을 지나 20대까지 이어졌다.


30대에 나의 무료 카지노 게임 버튼을 누른 것은 예의 없는 이별이었다. 관계를 종료할 때 가장 잔인한 것은 날카로운 말보다 무응답이더라. 소위 ‘잠수 이별’이라는, 갑자기 사라져 버리는 방식으로 헤어짐을 당하는 것은 정말 괴로운 일이었다. 일단 상황을 이해하기까지 시간이 걸렸고, 헤어짐의 이유를 그에게 물을 수는 없으니 나에게서 찾아보려고 지나간 매 순간을 계속 떠올렸는데 그렇게 거의 일 년을 보냈다. 극강의 무료 카지노 게임이었다.


무료 카지노 게임을 하면서 지하실까지 가라앉을 때마다 내 성격을 탓했다. 후회 많고 미련 많은 내 성격, 쿨하지 못한 나를 탓했다. 나는 이렇게 생겨 먹었으며 이건 고칠 수 없다고 생각하면서 힘들어했다.지나간 일을 끊임없이 반추하면서 나를 필요 이상으로 과도하게 힘들게 하는 것. 이것은 분명 나의 단점이다.


하지만 그 ‘과도함’이 결국에는 나를 일으키는 계기가 되곤 했다. 힘들어 할 수 있는 만큼 힘들어해버리고 나면 어느새 거기 얽혀있던 감정이 다 사라지고 새 출발을 할 수 있게 되었다. 연속적인 두 번의 자퇴로 한때는 무슨 염세주의자처럼 ‘내가 사회부적응자인가’까지 갔었지만, 그 감정을 평생 안고 살아가면 내가 너무 초라할 것 같아 다시 입시를 준비했고, 돌고 돌아 결국 내 꿈을 이루었다. 그때 충분히 괴로웠기 때문에 그 감정에 더 이상 갇혀있기가 싫었다. 만약 적당히 힘들어했다면 거기서 벗어나려고 그렇게까지 발버둥 치지는 않았을지도 모른다.


10대부터 20대까지 나를 지배했던 그 낙인이 이제는 좋은 소재가 된다. 다소 다이내믹했던 나의 사춘기 시절을 요즘 글로 풀어보고 있다. 20년도 더 지난 나의 그 시절이 아직도 선명하게 떠올라 몇 편의 글을 써낼 수 있다는 것은, 어쩌면 내가 그때 끊임없이 무료 카지노 게임을 했기 때문인지도 모를 일이다. 그때의 무료 카지노 게임이 나에게 또 한 권의 책을 선물해 줄 것이다.


이별의 기억도 마찬가지다. 내 잘못이 아닌 일에 너무 긴 시간 나를 탓했지만 그때 충분히 힘들어했던 덕분에 나는 더 이상 그에게 미련이 없다. 그가 다시 연락을 해왔을 때 조금의 흔들림도 없이 돌아설 수 있었던 것, 결과적으로 두 번째에는 나를 지켜줄 수 있었던 것은 그동안 내가 넘칠 만큼 괴로워해 두었기에 가능했다. 나의 되새김질은 이렇게 나를 구원해 준다.


지나간 일을 아쉬워하는 것은 분명 나의 단점이다. 요즘은 이 되새김질을 줄이려고 이래저래 노력을 많이 하고 있다. 증상이 심할 땐 병원의 도움을 받기도 하고, 좋아하는 일을 해서 의식을 분산시키거나, 행복한 기억으로 감정을 채워보려고 애쓴다. 그러나 되새김질을 영원히 피해 다닐 수는 없고, 한편으론 이 반추하는 습관이 지금의 나를 만들어준 부분도 분명히 있다. 그러므로 혹시 다음번에 내가 또 어떤 순간을 반추하게 된다면, 되새김질을 끊어내려고 애쓰는 한편 지금까지 늘 그러했듯이 최선을 다해 힘들어하겠다.그 뒤에 있을 새로운 나를 묵묵하게 기다리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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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버이미지: 레드와인 ⓒartisteer via Getty Images

출처 : 허프포스트코리아(https://www.huffingtonpost.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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