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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운 Apr 13. 2025

그래 카지노 게임처럼 살자

토요일, 늦은 아침밥을 먹다가 베란다로 고개를 돌렸다. 밥을 먹을 때면 베란다 넘어 공원 숲을 바라보기 위한 의례 하는 습관이다. 그때 베란다 한쪽 귀퉁이에 핀 선인장 꽃이 눈에 들어왔다. 거실로 쏟아져 들어오는 햇살에 반사된 선인장 꽃은 마치 화사한 화장을 한 여인처럼 아름다운 자태를 뽐내고 있었다. 더 이상 붉을 수 없이 붉디붉은 선인장 꽃은 장미의 색깔보다 더 화려하고, 선명한 루비보다 더 붉었다.


나는 중얼거리듯 말했다. “카지노 게임 꽃이 피었네” 먼저 식사를 마친 아내가 나를 빤히 내려다보며 나무라듯 말했다. “당신도 참, 카지노 게임 꽃이 핀 지 언제인데 이제 보았어요?” 평소에도 집안일에 무관심한 나에게 핀잔을 잘 주는 아내이기에 나는 말없이 웃기만 했다. 나는 짐짓 모른 체하며 다시 말했다. “카지노 게임 꽃이 참 예쁜데, 저렇게 예뻤어?” “그래요. 두 달에 한번씩 물 몇 방울 주는데 저렇게 예쁜 꽃을 피우다니 참 대단하지 않나요.” 아내는 신이 나서 카지노 게임을 칭찬하기에 바빴다. 나는 들릴 듯 말 듯 한 소리로 혼자 중얼거렸다. “두 달에 한번씩... 물 몇 방울... 카지노 게임...” 한 상 가득 반찬을 앞에 두고서 입맛이 없다며 게으른 숟갈질을 하고 있던 나는 밥을 먹는 내내 아내의 말이 귓가에서 맴돌았다. 내 앞에 차려진 밥상을 보면서 혼자 되뇌었다. “두 달에 물 몇 방울 먹는다고...”


아침밥을 다 먹고 선인장에게로 갔다. 키는 겨우 한 뼘 남짓, 몸통은 원통형에 온몸을 가시로 중무장을 하고서 베란다 한쪽 끝을 묵묵히 지키고 있었다. 몸통에는 무려 4백여 개의 볼록볼록한 융기들이 일정하게 솟아 있는데 그 융기마다 바늘 같은 날카로운 가시들이 각각 8개씩 질서 정연하게 꽂혀 있었다. 선인장은 몸통 한가운데에 꽃 한 송이를 피우고 있었는데 오로지 한 송이 꽃을 피우기 위하여 자신의 몸이 가시투성이가 되도록 절차탁마(切磋琢磨)하는 선비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누가 쳐다보지 않아도, 누가 관심을 주지 않아도, 그저 내 할 일은 일 년에 한 번 꽃 한 송이 피워내는 일이라며 의연하게 자기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설사 제 때에 물을 주지 않아도, 목이 말라도 불평하지 않고, 누구를 탓하지도 않고 그저 내 할 일은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꽃을 피워 내는 일이라고 말없이 연마장양(鍊磨養長)하고 있었다.


조그맣고 볼품없는 몸통을 가진 카지노 게임이 어떻게 이런 아름다운 꽃을 피워낼 수 있을까. 나는 신비로움에 사로잡혀 카지노 게임을 만져보고 싶은 충동을 느꼈지만 날카로운 가시는 온몸에 빈틈을 허락하지 않았다. 누구의 손길도 외면한 듯 냉정하고 당당한 모습은 범접할 수 없는 위엄과 용맹함마저 느껴졌다. 세상의 어떤 유혹과 시류에도 휘둘리지 않고 결핍과 고독의 삶을 사는 수도자처럼 고결함마저 있었다.


아내가 옆으로 다가오며 말했다. “여보 카지노 게임에게 함부로 물을 주면 안 돼요.” “그래 알았어요. 그런데 분갈이는 언제 해? 분갈이하는 걸 본 적이 없는데” “카지노 게임은 분갈이도 3년에 한 번만 하면 되는 거예요.” “그럼 거름은 안 줘요?” “굳이 거름을 주지 않아도 돼요.” 나는 계속 질문을 하고 아내는 친절하게 가르쳐 주었다. 그러고 보니 카지노 게임과 나는 꽤 오랫동안 한 집에서 함께 살아왔었다. 오랫동안 내 눈 밖에 있었던 카지노 게임이 비로소 내 눈으로 들어왔고 갑자기 호기심이 생겨났다. 나는 또 혼자 중얼거렸다. “도대체 이 녀석은 뭘 먹고살지?”


카지노 게임은 사막과 같은 건조하고 더운 기후에서 잘 자라는 식물이다. 그래서 집안에서 기를 때에는 습도가 높지 않은 것이 좋다. 카지노 게임은 수분의 손실을 최소화하기 위해 잎의 광합성 기능을 줄기로 옮기는 한편, 잎을 가시로 만들어 방어 무기로 만들었고, 줄기는 물을 저장하는 저수조로 사용하여 사막에서도 살아갈 수 있는 그들만의 생존전략을 가지고 있다. 물이 부족하고 토양이 메마른 악조건 속에서도 적은 수분과 영양분만으로 생존하면서도 아름다운 꽃을 피워낸다.


나는 베란다 한쪽 모퉁이에 외롭게 놓여있는 선인장이 못내 마음에 걸려서 화분들이 모여 있는 가운데쯤으로 옮기자고 하였다. 그러자 아내가 말하기를, 선인장은 바람이 잘 통하는 곳을 좋아하고 고고(孤高)한 식물이라서 여러 가지 꽃 속에 있는 것보다는 홀로 떨어져 있는 것이 더 좋다고 한다. “아, 그렇구나 어쩐지 혼자서 고고한 척하고 있더라니!” 나는 점점 선인장의 매력에 빠져 들고 있었다.


토요일 오전 한가로운 시간을 카지노 게임과 함께 보내면서 카지노 게임과 나는 닮은 점이 많다는 것을 느꼈다. 조용하고 혼자 있는 것을 좋아하는 것도 그렇고, 왠지 쓸쓸해 보이는 것도 그렇고, 못생긴 모습도 그렇고, 그렇지만 내면에는 어떤 열정을 숨기고 있는 것도 그렇다. 그러나 나는 척박한 환경에서도 찬란한 꽃을 피워내는 카지노 게임의 인내와 끈기를 닮지 못했다. 풍족함 속에서도 항상 알 수 없는 결핍을 느끼고 마음은 가난했다. 가치관과 정체성을 바로 세우지도 못했고, 삶의 목표는 흔들렸다. 세상을 기웃거리고, 맛있는 것을 찾아다니고, 잘 난 척 나대였지만 나는 세상에 꽃 한 송이 제대로 피워 내지 못했다.


자연이 주는 바람과 햇볕, 그리고 물 몇 방울만으로도 절제와 겸손으로 피어낸 카지노 게임의 꽃이야 말로 세상의 어떤 꽃보다 아름다운 꽃으로 보였다. 한 송이 꽃을 피우기 위해 일 년 내내 자신의 모든 것을 다 쏟아내어 마침내 누군가에게 기쁨과 감동을 선사하고서는 당연한 것처럼 다시 고행으로 돌아간다. 좌고우면 하지 않고 오로지 한 곳만을 바라보며 시련과 결핍까지도 아름다움으로 승화시키는 경이로움에 나는 한참 동안이나 카지노 게임 곁에 서 있었다.


나는 카지노 게임을 보면서 또다시 중얼거렸다.

“그래 카지노 게임처럼 살자! 그래 카지노 게임처럼 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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