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운 Apr 07. 2025

그 온라인 카지노 게임

낭만, 슬픔 그리고 사랑

“문패도 번지수도 없는 주막에~” 아버지 세대가 즐겨 부르던 사오십 년대 유행가를 왜 그때는 그렇게 열심히 불렀는지 모르겠다. 회사에서 퇴근할 때면 온라인 카지노 게임와 나는 회사 근처 생맥주집에서 500cc 생맥주 딱 한잔씩 들이켜고 걸어서 같이 퇴근을 하곤 했다. 집이 같은 동네였는데 회사에서 걸어가면 30분쯤 걸렸을 것이다. 가난한 우리는 생맥주 한잔으로 뱃속의 허기만 아니라 무엇인지 모를 마음속 허기를 채우고 약한 술에 힘을 얻어 호기롭게 퇴근을 했다. 우리는 팔짱을 끼기도 하고 어깨동무를 하기도 하면서 유행이 한참이나 지난 유행가를 목청껏 불렀다. 다행히 우리가 퇴근하는 길은 자동차만 쌩쌩 지나가는 큰 도로였으며 사람들이 걸어 다니는 일은 거의 없었다. 우리는 마음 놓고 소리를 지르며 노래 한 곡이 끝나면 또 한 곡을 불렀다. 우리는 언제나 ‘번지 없는 주막’으로 시작하여 ‘애수의 소야곡’, ‘유정 천리’로 이어졌다. 모두가 슬픔과 애환이 짙은 유행가였다.


온라인 카지노 게임와 나는 같은 직장 동기 입사자이다. 나는 전라도 광주에서 학교를 나와 부산으로 가서 취업을 했고 온라인 카지노 게임는 부산 토박이이다. 첫 출근 날 온라인 카지노 게임는 내가 생활해야 할 하숙집을 구해주기 위하여 처음 만나서 서먹서먹한 나를 몇 시간씩 데리고 다녔다. 결국 느지막한 저녁 무렵 그 온라인 카지노 게임네 동네에서 하숙집을 구할 수 있었다. 온라인 카지노 게임는 아직 20대 나이인데도 머리가 희끗희끗하였고 약간의 곱슬머리였다. 얼굴은 항상 싱글싱글 웃는 낯에 인상 좋고 친절하며 유머가 많은 사람이었다. 처음 보았을 때 그 온라인 카지노 게임가 연예인인가 생각될 정도로 잘생기고 멋쟁이였다. 때로는 바람둥이가 아닌가 하는 할 정도로 낙천적이며 사교적이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날수록 그의 진면목은 영 다른 사람이었다. 겸손하고 검소하며 진솔하였고 배려심이 세심한 사람이었다. 그 온라인 카지노 게임는 먼 타향에서 온 나를 배려하느라 항상 같이 퇴근을 하자고 했고 우리는 맥주와 유행가와 어깨동무로 급격하게 가까운 온라인 카지노 게임가 되었다.


우리가 생활하는 동네는 부산 괴정동이라는 곳이었다. 30년 전 그곳은 아파트가 거의 없는 오래된 변두리 지역이었는데 그중에서도 그 온라인 카지노 게임와 내가 사는 곳은 서민들이 모여 사는 달동네 같은 지역이었다. 그렇지만 나는 그곳이 내 고향같이 시골스런 인정이 남아있어서 마음이 한결 편안했다. 하숙집 아주머니는 같은 전라도 사람이어서 그런지 특별히 나에게 따뜻하게 대해 주었다. 낯선 곳에서 먹고 자는 생활은 안정을 찾았고 그 온라인 카지노 게임가 있어 마음이 든든하였다. 그러나 직장 생활은 영 적응하기가 어려웠다. 그 온라인 카지노 게임도 마찬가지였다. 우리가 하는 일은 민원인을 만나고 조사를 하고 세금을 부과하는 일이었다. 민원인은 어떻게든 세금을 적게 내려하고 우리는 그것을 막아야 했다. 민원인과 우리 사이에는 팽팽한 긴장과 눈치싸움이 계속되고 밀고 당기는 줄다리기 끝에 세금을 부과하면 항의와 원망이 쏟아졌다. 상급자는 상급자대로 일 처리가 잘못되었다는 둥 질책이 쏟아지기도 하였고, 우리는 비리를 오히려 능력으로 여기며 얻어진 뇌물을 상급자에게 상납하여야 했다.


온라인 카지노 게임와 나는 퇴근하면서 생맥주를 앞에 놓고 하루의 비애를 안주삼아 허탈함을 잊으려 했다. 우리는 생맥주 한 잔을 마시며 일어난다. 두 사람은 모두 술이 약했고 무엇보다 가난했다. 가난한 술 한 잔은 우리가 해야 할 넋두리에는 터무니없이 부족했다. 그래서 우리는 또 어깨동무를 했고 흘러간 노래를 불러야 했다. 온라인 카지노 게임는 다른 사람들을 괴롭게 하거나 아프게 하는 일은 못하는 사람이었다. 그의 능글능글하고 낙천적인 모습 뒤에는 연약하고 언뜻 염세적인 모습이 어른거린다. 어쩌면 그는 말할 수 없는 깊은 슬픔과 아픔을 간직하고 있었는지 모른다. 그 온라인 카지노 게임는 자신의 가족이나 집에 대해서는 나에게 한 번도 이야기를 꺼내본 적이 없었다. 그 온라인 카지노 게임와 퇴근하다가 헤어질 때 그는 자기 집으로 먼저 떠나면서도 자기가 사는 집을 알려주지 않았다. 단지 그가 사는 곳은 비탈진 산등성이 달동네 마을에 작은 집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는 가난한 동네였다. 그 온라인 카지노 게임의 밝은 모습이 때로는 슬픔으로 비추어 보이는 이유를 조금씩 알 것 같았다.


어느 날 온라인 카지노 게임가 맥주를 한 잔만 더 하자고 했다. 그러고는 어렵게 입을 열었다. 여자 온라인 카지노 게임가 있는데 여자 온라인 카지노 게임가 다른 남자와 결혼을 할 거라고 했다. 그때가 크리스마스 삼사 일 전이었을 것이다. 크리스마스 전 날 결혼을 하기로 했다며 결혼날 일주일 전에 여자 온라인 카지노 게임가 통보를 했다는 것이다. 여자 온라인 카지노 게임가 고민 고민 하다가 어렵게 말을 하면서 온라인 카지노 게임에게 행복하게 잘 살라는 말을 했고, 그러나 지금이라도 자기와 결혼을 하겠다고 하면 파혼을 하겠다고 했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어떻게 해야 할지 나에게 물었다. 내가 온라인 카지노 게임에게 물었다.

“왜 그동안 여자 온라인 카지노 게임에게 결혼하자는 얘기를 하지 않았어?”

온라인 카지노 게임는 또 어렵게 말을 이었다.

“그녀를 너무 좋아하기 때문에 결혼하자고 할 수가 없었어.”

내가 그 이유를 물었다. 그러자 그는 고개를 푹 떨구고는 한참 동안 입을 떼지 못하였다.

“나는 결혼할 준비가 전혀 안 되어 있어. 결혼하면 같이 살 집도 방도 없단 말이야. 그리고 여자 온라인 카지노 게임에게 나의 비참한 모습을 보일 자신이 없어.”


그 온라인 카지노 게임는 비좁은 방 두 칸에서 부모를 모시고 살고 있었다. 신부를 그 비좁고 초라한 집으로 데려올 수가 없다고 했다. 사랑하지만 사랑하기 때문에 떠나보내야 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나라면 어떻게 하겠냐고 물었다. 나는 잠시 망설였지만 두 사람이 그렇게 사랑하는데 이해할 것이라고 말했다. 지금 당장 마음을 털어놓아야 한다고 했다. 온라인 카지노 게임는 도저히 그렇게 할 수는 없다고 했다. 이미 모든 결혼 준비는 끝나 있는데 어떻게 그렇게 할 수가 있느냐고 했다. 나는 온라인 카지노 게임 대신 내 억장이 무너지는 듯했다. 온라인 카지노 게임는 자신의 가난을 신부가 감당하게 할 수가 없었던 것이다. 가난은 죄가 아닐 텐데 가난 때문에 사랑 앞에서 죄인처럼 숨어야 하는 비애를 앞에 놓고 우리는 그날 처음 많은 맥주잔을 비어야 했다. 온라인 카지노 게임는 아무리 생각해도 자신의 양심으로는 파혼이라는 크나큰 짐을 그녀에게 지울 수가 없었다.


떠나보냄으로써 그녀가 행복할 수 있고 떠남으로써 자신이 불행해진다 해도 자신이 감당해야 한다는 온라인 카지노 게임는 슬픈 미소를 지으며 집으로 돌아갔다. 어떤 슬픔에도 웃음을 잃지 않는 그 온라인 카지노 게임가 더욱 내 마음을 아프게 했다. 그 온라인 카지노 게임의 상징 같은 미소는 어쩌면 슬픔을 억누르기 위한 자기 비애의 다른 표현이었을지 모른다. 언제나 밝은 모습이며 남들에게 친절하고 섬세한 배려를 왜 자신에게는 인색한 것이었을까. 그것은 자신의 아픔을 너무 잘 알고 있었기에 타인의 아픔을 보는 것은 더 큰 아픔이 될 수 있음을 이미 체득한 사람이었던 것 같다.


그날 이후로 며칠 동안 그는 회사에 나오지 않았다. 크리스마스가 지난 뒤 온라인 카지노 게임는 언제나처럼 싱글싱글 웃으며 나타났다. 마치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내가 물었다.

“여자 온라인 카지노 게임는 어떻게 했어?”

“결혼했지, 그 남자와.”

그러고는 허공에 웃음을 날렸다. 시니컬한 웃음이 하늘에 가득 퍼졌다. 우리는 다시 생맥주 집으로 갔다. 500cc 한 잔을 마셨다. 그리고 어깨동무를 하고 노래를 불렀다. “문패도 번지수도 없는 주막에 ~” 오랜만에 불러본 노래가 왠지 더욱 구슬펐다. 우리는 서로의 슬픔을 감추기라도 하려는 듯 소리를 크게 질렀다. ‘문패도 번지수도 없는’ 가사는 어쩌면 그 온라인 카지노 게임가 자신의 집을 노래한 것이라고 알기까지 나는 이렇게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