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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동진 Mar 14. 2025

벚꽃의 꽃말은 사실 카지노 게임였을지도(2)

주가가 하락했다고 대책을 묻거나 항의해 오는 모든 말들에 꺼낼 수 있는모든 답은 "카지노 게임의 가치를 높이기 위해 노력하겠다"라고얼버무리는 것이다. ("연말에 주당 300원 정도 배당 실시하는 걸 검토 중이다" 이런 식으로 콕 짚어 말하면 공정공시 제도 위반이어서, 어쩔 수 없이 원론적인 이야기를 해야 한다.)회사 가치를 높인다는 건 회사가 생각하는 기업 가치와 투자자 혹은 시장이 그렇다고 생각하는 기업 가치 사이의 간극을 가능한 회사가 원하는 방향으로 좁혀 나가는 일이다. 경영상 소식이 있을 때마다 보도자료도 열심히 배포하고 관련 미디어에서 인터뷰도 하고 배당과 같은 투자자 환원책도 적극 시행하고 그러다 보면 주식 가치는 '오를 수도 있고 안 오를 수도 있'다. 좋은 기업 이미지 또는 투자하고 싶은 기업의 자질을 갖춰 나가다 보면 언젠가 그에 걸맞은 보상은 따를 것이다.


회사가 주가를 올리고 싶다고 해서 정말로 주가가 거의 조정 없이 연일 상승하기만 하는 곳이 있다면? 그건 주가 조작을 의심해 봐야 할 일인지도 모른다. 게다가 그건 회사가 PR과 IR 활동을 잘해서가 아니라 그냥 운이 좋아서였을 수 있다. 주가가 오르거나 내리는 데에 수많은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하고 그중 어느 한 가지가 결정적이거나 절대적이라고 단정할 수 없다는 뜻이다. 그렇지만 사람들은 남이 주식투자로 큰돈을 벌었다는 이야기를 들어서 심술이 났거나 혹은 짧은 기간 안에 남들처럼 그렇게 벌고 싶고 자신이 매수한 종목도 대박이 날 거라는 어떤 환상에 사로잡힌 게 아닐까.


내 일 이야기로 돌아가면, 우리 카지노 게임는 과거에 임상시험 3상에서의 주평가지표 달성 실패로 주가가 크게 하락하고 나서 다시금 유상증자**를 통해 자금을 조달해야 하는 상황이 됐었다. 주주 입장에서는 임상 실패로 주가가 떨어져서 언짢은 상태인데 증자한답시고 주주들에게 손을 벌리고 있으니 회사가 곱지 않게 보였겠지. 사람들은 '소액주주연대'를 만들어 지분을 모아 회사에 실력을 행사하고자 했고, 임시카지노 게임를 소집 요구해 회사 경영진을 해임하고자 했다. 순식간에 회사는 소액주주의 등골을 뽑아먹는 악마 집단으로 낙인찍혀 포털 사이트에 회사명을 검색하면 자극적인 기사들로 넘쳐 났고, 그 카지노 게임는 오전 9시에 개회했지만 위임장을 수기로 집계하는 등 절차로 인해 정회를 거듭하고는 자정이 넘어서야 끝나기도 했다. 현장에서 극한의 흥미로운 상황들을 다수 겪다 보니 잡지식도 늘었다. 가령 기업이 등장하는 영화나 드라마에서 종종 이사회나 카지노 게임 장면이 나올 때가 있는데, 가끔 등장인물의 발언이나 의사 진행 과정을 보면서 이런 말이 절로 중얼거려지는 것이다. "어 저거 상법 363조 위반인데..."(여러분, 무슨 뜻인지 모르셔도 일상생활에 아무 지장 없습니다)


그때보다 지금은 이른바 '경영권 분쟁'을 겪고 있는 회사가 훨씬 더 많아졌다. 대부분 소액주주 집단이 상법에서 정하는 일정한 요건을 갖춰 카지노 게임에 특정 의안을 상정할 것을 청구하거나 임원을 대상으로 형사고발 등을 통해 회사가 자신들에게 더 신경 써 줄 것을 요구한다. 저마다 억울한 듯 화가 난 듯 열심히 목소리를 내고 있지만, 분쟁을 겪은 회사에서 대외 업무를 하다 보니 그들이 주장하는 것들의 실체에 큰 회의를 갖게 됐다. 몇 년 동안 업계 타사 IR/공시담당자들과 이 주제로 많은 이야기를 나눠본 바로는 업계에서도 거의 모두 공감하는 대목이었다. 땀 흘리지 않고 사익을 추구하려는 집단이 행동주의라든가 아니면 '소액주주'라는 단어가 주는 어감 뒤에 숨어서 무작정 배당을 요구하거나 (카지노 게임 유보금을 쌓아두지 않고 배당만 하면 장기적 전략 수립이나 위기 대비를 할 수 없다)자사주 취득/소각을 요구하거나 하는 똑같은 주장들을 어느 회사에나 막무가내로 쏟아내고 있는 요즘을 지켜보면 투자자 관계, 'IR'이 과연 어떤 가치를 갖는 직무인지에 대해 무력감이 들 때도 없지 않다. 회사는 어떻게든 경영을 지속해야 하는데 그런 주주들은 밀물처럼 들어와 그냥 적당히 차익을 보면 손 털고 나갈 썰물 같고, 그들이 관심을 갖고 있는 건 자신의 계좌이지 회사의 사업이 아니다. (여러분, 주식시장에서 주식을 매수한다고 그 돈이 회사로 들어오는 게 아니랍니다)


이건 지난 몇 년 사이에 일어난 어떤 '현상'이다. 우리나라 증시에서 시가총액이 가장 높은 삼성전자를 예로 들면, 2019년 말까지 삼성전자의 전체 주주 수는 56만 명 정도였다. 이것이 2020년 말 215만 명, 2021년 말 506만 명, 2022년 말 581만 명까지 급증했다. 카카오도 2019년 말 주주 수 12만 명에서 2023년 말에는 185만 명까지 증가했다. 그만큼 주식투자의 장벽이 낮아졌다는 의미도 있지만 그것보다 중요하게 느껴지는 건 근로소득이 아닌 것들로 '빨리', '쉽게' 돈을 벌 수 있다는 환상이 자리 잡기 시작한 게 아닐까 하는 점이다. 실제로 주식시장에서 개인 투자자의 순 매수액이 역대 최대치를 기록한 것이 2020년이었다. 코로나19가 기폭제가 되었을지 예적금 금리만으로는 목돈을 마련할 수 없다는 일종의 열패감이 만연한 덕분인지 '개인'들의 사정은 알 수 없겠지만 그 투자의 물결들이 모여서 결국에는 투기를 만들어냈다. 가상자산(코인)도 마찬가지다. 그건 이렇게 단기간에 쉽게 누구나 큰 이익을 낼 수 있는데 무얼 하러 그렇게 열심히 일해? 라며 그것을 하지 않는 사람을 마치 시대 흐름에 뒤처진 바보인 양 몰아가는 기류처럼 느껴진다.


다시 말해서 회사에 내가 산 가격보다 주가를 올리라고 '요구'하는 건 투자자의 당연한 '권리'인 게 아니라 내 주식 계좌에서 파란색이 아니라 빨간색을 볼 수 있게 해 달라는 떼쓰기나 다름없는 셈이다. 적어도 현업에서 나는 그렇게 느낀다는 뜻이다. 과연 그렇게 주가가 오르면 투자자들이 회사에 "주가를 올려주셔서 감사하다"라고 할까? 그런 사례는 어디서도 들어본 적이 없다. 주가가 오르면 그건 자기가 '투자'를 잘했거나 '종목'을 잘 고른 덕분이다. 하지만 주가가 떨어지면? 그건 물론 회사가 '주가관리'를 잘 못해서 그렇다고 한다. 요즘 사람들은 증권사 애널리스트의 보고서를 읽는 대신 '이 종목 곧 오를 거다'라고 짚어주는 유튜버 말을 믿는다. PDF로 300페이지가 넘는 사업보고서 공시를 올려도 공시를 볼 줄 모르는 사람들이 태반이다. 공시를 제대로 살필 능력이 없으면서 '왜 빨리 공시 안 올리냐'라고 특정 공시의 마감날에 전화를 거는 경우도 많다. 주식투자자가 스스로 정보를 찾아 능동적인 투자판단을 하려 하지 않는다면 그건 투자자가 아니라 투기꾼에 지나지 않는다.


투자자를 초청해 진행하는 기업설명회 행사를 진행하느라 한여름에 정장을 입고 두 시간이 넘게 마이크 앞에 서 있거나 출력물을 들고 뛰어다녔던 날이 있다. 몇 시에 끝날지 알 수 없는 주주총회를 위해 아침부터 밤늦게까지 김밥으로 식사를 때웠던 날도 있다. 입사 초기에는 회사로 걸려오는 모든 전화를 놓치지 않으려고 애썼고 한 사람과 50분 넘게 (약간 언성을 높여가며)회사의 사업 현황이나 그 주주가 원하는 회사 정보 등에 대해 입씨름을 했던 적도 있다. 그렇게 하다 보면 회사와 투자자 간에 좋은 관계가 만들어지고 결국은 주주들에게 친화적인 좋은 기업이라는 이미지를 내가 만들거나 거기에 기여할 수 있지 않을까 하고. 그렇지만 요즘은 가능한 퉁명스럽게, 방어적으로, 공시준비나 보도자료 작성 등 타 업무에 지장이 가지 않을 선에서만 선택적으로 투자자 응대를 한다. 이럴 때일수록 열심히 투자자 응대를 해야, 마음을 다해 그들의 목소리를 들어줘야 맞는 걸까? 남의 말만 듣고 뭐 하는 회사인지도 모른 채 선뜻 큰돈을 들여 직접 매수해 놓고 회사가 주식 가치를 방치한다며 힐난하는 목소리 앞에서는 회사에 자신의 자산 일부를 위임하고 동업하듯 건전한 태도로 기업 가치의 성장을 바라는 투자 관점을 느낄 수 없다. 내가 아는 한 대부분의 상장회사들은 "히히 주식 가치 떨어뜨려야지" 하는 태도를 갖고 있지 않다. 다들 열심히 저마다의 사업을 하고 있고 회사가 좋은 가치로 평가받기를 바라며 그건 임원이나 직원이나 마찬가지다. 안타깝게도, 계좌에 찍힌 숫자에만 골몰해 있는 사람들에게는 그 뒤에 있는 누군가의 땀과 노고 같은 건 안중에도 없는 것이다. 그들은 과정이 아니라 결과만 생각하기 때문이다.


**유상증자(Paid-in Capital Increase): 주식을 추가로 발행해 자본금을 확충하는 것으로, 기존 주주에게 일정 비율만큼 청약할 수 있도록 하거나 주주가 아닌 제3자에게 청약을 하도록 해 회사가 신주발행대금을 받는 대가로 그 청약자에게 신주를 발행해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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