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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게을리 Aug 08. 2020

사랑무료 카지노 게임 우울

나의 우울에게 아주 늦게 보내는 편지

우울에게,


나를 아는 많은 사람들을 만나 기억할 수 없는 얘기들을 실수로 쏟아버리듯 내뱉고 오는 날이면

버스에 타고 집에 오는 동안 니가 자연스레 옆에 타는 것 같아.

뻑적지근한 소음과 알 수 없는 마음들, 그리고 그 마음들과 어느정도는 상관이 있을 다양한 표정들이 눈앞에서 또 귀에서 멀어지면 딱 그만큼의 공백이 마음에도 생겨. 희한하지?


그건 뭔가 너무나 선명하지만 내가 채워넣을 수는 없을 것 같은 공간이야. 마음이 비는 느낌이지만 이상하게 마음이 무거워져. 니가 옆에 있다는 걸 너무 잘 알아. 그러면 나는 크림이 잔뜩 들어간 베이비슈를 사서 집에 와. 조용한 집에서 내가 원하는 방송을 보며 입에 꽉 차게 베이비슈를 넣는 것 만으로, 니가 니 역할을 다했다고 생각하는지, 그 빈공간이 채워질 때도 있어. 희한하게 집에 가족들이 있어서 추가의 사회적 상호작용을 해야 할 때면 너는 좀 더 긴 시간 내 옆을 따라다니지.


아마도 체력처럼 사람에게는 저마다 쓸 수 있는 사회력이 있나봐. '온전한 자신'력 으로 부를까? 한 사람의 반응에 집중하고, 나의 얘기를 하는 만큼 그 사람에게 마음을 여는 단순한 나에게 여러 사람과의 소통은, 말하자면 말야, 크림치즈를 빵에 얇게 바르듯 나를 조금조금씩 떠서 어딘가에 발라버리는 느낌이야. 금방 바닥이 보이는 크림치즈 통 같나봐, 내 마음이. ㅎㅎ


매일 학교나 회사를 다니던 내 옆에 니가 항상 같이 있던 건 그래서였는지도 몰라. 항상 사람들이 많은 곳에서 내가 할 수 있는 것 이상으로 사람들을 만나왔으니까. 학교가 끝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의 공허했던 감정을 기억해. 텅 빈 나뭇가지, 전선줄 위에 걸려있는 노을, 또 그 노을을 담은 아스팔트 위의 웅덩이들. 그런것들이 나에게 위로이면서 또 공감이었어. 그 시간들은 슬픈 시간은 아니었던 것 같아. 내가 어떻게 할 수 없는 삶의 부분들, 내가 잡을 수 없는 시간과 공간의 속성 같은 것들이 생각하거나 말하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몸으로 다가오는 시간들이었지.


삶을 집어삼킬듯이 다가오는 슬픔도 있었어. 그건 내가 알던 우울과는 좀 달라서, 내가 안고 갈 수 있는 공허함이 아니라 머리 위로 차오르는 흙탕물이었지. 숨을 쉬는 게 힘들었기 때문에 도와주러 다가오는 사람이든 날 그냥 치고 가는 사람이든 다 무섭게 보이고, 날 해하려는 사람으로 보이는 그런거? 하고싶은게 너무나 많던 내가 먹고싶은 아이스크림조차 고를 수 없어졌을 때 심각함을 느꼈어. ㅎㅎ 난 원래 먹고싶은 아이스크림이 너무 많아서 40분씩 고민하던 사람이었으니까. ㅎㅎ 학창시절 내 하교길을 함께하던 너와, 내 인생에서 가장 힘들던 시절 나를 급류처럼 휩쓸던 그 압도적인 감정은 다른 감정이 아닌가 싶어. 같은 이름을 붙이는 건 너조차 긍정할 수 없게 해버리는 것 같기도 하고, 그 재앙같던 시간을 남들이 가볍게 볼 수 있는 이유가 되는 것 같기도 하거든.


하여튼.


회사를 그만두고 나서 내가 필요한 만큼 사람들과 이야기 나누고, 그들에게 사랑받고 또 사랑을 줄 수 있어서 난 한동안 널 보지 못했던 것 같아. 너는 외로움과는 다른 감정이거든. 너는 사람들을 보지 못할때가 아니라, 내가 내 삶을 컨트롤 할 수 없다는 아주 당연한 사실을 무의식중에 깨달을 때 옆에 슥 와서 앉아있잖아. 수업시간에 가고, 원무료 카지노 게임 만큼 말하고, 열일곱 열여덟살의 외국인들이 나한테 말을 걸든 말든 크게 상관하지 않았던 캐나다에서의 시간동안 ... 너는 어디서 뭐했니? ㅎㅎ 생각해보면 꽤나 오랫동안 보지 못한 것 같네.


한국에 오고 나서 여러 사람들의 얼굴을 보고 그들의 의도가 궁금해지는 입장에 놓이게 되면서 반갑게도 너를 다시 만날 수 있었어. 처음에는 코로나 때문에 살이 쪄서 그런가, 비타민 D가 부족한가, 체력이 좀 떨어지기도 했고, 뭐 여러 이유를 찾았는데, 그 이유들도 당연히 있겠지만서도, 니가 오는 시간을 가만히 생각해보니 이제 니가 언제 나를 필요로 무료 카지노 게임지 (?) 알게 되었지 뭐야. 아마도 너도 무서운 모양인가봐. 내가 무리하려고 하면 얼른얼른 나를 찾아오는게 왠지 그런 것 같아.


영화를 볼까 TV랑 넷플릭스를 뒤적거리다 책장에 꽂힌 여행기를 집어서 읽었어. 파리에서 외로웠는데, 어느순간 위로받았다는 글이었어. 불현듯 내가 왜 영화 목록을 뒤적거리고 있었는지 알겠더라고. 내가 선택해서, 내가 원하는 사람들의 면면을, 내가 원하는만큼 본다는게 참 나한테 큰 위로였나봐. 중고등학교 때 내가 영화를 진짜 좋아했거든. 오늘 니가 그때처럼 어느새 소리소문도 없이 내 아주 가까이에 왔다는 걸 느꼈고, 너한테 할 얘기가 있다는걸 깨닫게 되었지.


나, 니가 싫지 않아.

너를 어떻게든 뿌리치려고 친구들에게 별 의미없는 말을 걸 때가 있었어. 술을 마시지 않은 지가 한참이지만, 대학교 시절엔 전화하고 싶은 만큼 전화해서 내가 듣고싶은 말들을 듣기 위해 술을 마셨던 것도 같아. 누군가 나를 소중하게 생각한다는 이야길 듣다 잠이 들면 니가 좀 멀어지는 기분이 들었거든. 너도 뭔가 안심하고 자러 간 것이겠지만. 니가 옆에 있으면 내가 안아야 하는 그 무거운 마음이 싫었어.


그런데 지금은, 비처럼 오는 니가 반가워. 너는 내 유년시절의 기억이기도 하고, 내가 아주 예민하고 민감하게 받아들인 텅 빈 오후의 적막과 붉은 노을, 그리고 삶의 존재감이야. 무게라는 말을 썼다 지웠어. 너는 언제나 무겁진 않거든. 예를 들면 니가 창밖의 빗소리를, 집 안에 있는 내게 데려올 때가 있잖아? 니가 없으면 그냥 시원하고 말 여름밤 비가, 니가 있으면 내 존재를 두드려. 전선주와 노을이 정말로 나를 위로해. 언젠가 이름 모를 이가 파리에서 느꼈을 그 외로움이, 나의 얘기가 되고 평소에는 닿지 못하는 마음 구석까지 다가와. 니가 내 옆에 있으면 그게 된다? 정말 희한한 일이야.


형광등을 끄고 노란 백열등을 켜는 것처럼, 너는 내가 보지 못했던 삶의 온도, 색깔, 명암을 보여줘. 삶은 절대로 객관적이지 않은데, 넌 한번씩 그걸 알려주려 내게 오는 모양이야. 나의 이 주관적인 삶에서 너는 하나의 관점이고 또 의미란다. 그러니까 니가 싫지 않아. 물론 백열등 아래서 과제하고 숙제하고 시험보는건 쫌 힘드니까 밤이 가면 또 불을 환하게 켜야 하겠지만, 그건 니가 만들어준 나라는 존재와 내 세상을 부정무료 카지노 게임게 아니란다. 그냥 다 같이 있는 거지.


이 불완전한 존재를, 이 알 수 없는 세상을, 명확한 끝이 올 때 까지 함께 하자.

나는 그 날까지 너를 포함해서 내게 가만히 다가오는 나의 모든 감정을 부정하지 않을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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