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 별 일들이 참 많은 건 알았지만, 소방관이 되어보니 생활밀착형 별 일들이 한 축을 이루었다. 이 다리에서 꼭 뛰어야만 하는 사람의 이별 사연도 듣게 되고, 어쩔 땐 학교 보일러실로 등교한 너구리 만나, 너구리의 꾸깃꾸깃한 몸을 한번 쭉 펴주고 집으로 돌려보내기도 한다. 고3 여고생의 가출, 우리가 치매 노인들도 턱턱 찾아내는데, 고3 여고생 찾기는 정말이지 S급 난이도였다. 역시 고3은 건드는 게 아니다.
가끔 학교나 공공기관에 강의를 위해서 갈 때 꼭 이런 질문들을 받는다. "겪었던 사건 중에 어떤 사건이 가장 기억에 남나요?" "별별 일들을 다 겪다 보면 특별히 인상 깊었던 현장이 있을까요?" 등 하나의 맥락으로 통하는 질문들이었다. 결국 그중에 최종보스를 꼽으라는 것인데, 질문은 좋았으나 사람을 잘못 골랐다. 제일 좋아하는 음식도 하나 못 정하는 결정장애를 가진 내겐 어려운 질문이었다. 매번 '허허허' 웃음으로 때웠다. 위기를 모면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가슴 먹먹한 사건이 하나 떠올랐다. 어디에도 말하지 못했던 이야기.
지리산 한 자락에 자리 잡은 인월이라는 동네는 여유와 낭만이 있는 곳이었다. 지리산 산악구조대로 지내는 동안 4계절이 지나가는 지리산을 마음껏 눈에 넣었다. 여름엔 뱀사골 계곡으로 피서를 오는 사람들의 안전을 핑계로 내 마음도 같이 피서를 떠났고, 가을엔 단풍구경을 하며 출근했다. 겨울철 등산객을 엎고 내려오는 게 쉽지 않았지만 그마저도 추억이 되는 곳이 이곳 지리산이었다. 지리산이 품은 사람들의 얼굴엔 여유가 묻어났다. 이토록 평화로운 동네였는데 하루는 어떤 이의 자살소동으로 인월센터가 분주했다.
"이쪽으로!! 이쪽으로 오셔요!"
구조차를 타고 가다가 더 이상 차로 갈 수가 없어 빠르게 걷고 무료 카지노 게임. 그런 우리에게 한 목사님이 발길을 재촉했다. 교회 이름이 쓰여있는 스타렉스가 구조대원들을 싣고 다시금 오르막길을 올랐다.
"목사님 저희가 자살 관련 출동으로 왔는데, 어떤 상황인가요?"
목사님의 이야기로는 그 집 딸이 우울증이 심했다고 했다. 이화여대를 나오고 서울에서 좋은 직장에서 생활하던 잘난 자식인데 마음에 병이 생겨 저리 되었다고 했다.
우울증을 앓고 있는 딸은 서울에서 이곳 지리산 끝자락 인월까지 이사를 왔다. 작은 카페를 운영하며 복잡한 서울의 삶 대신 지리산에서 소박하게 사는 삶을 선택하였다. 작고 소박하게 산다는 게 어떤 의미에선 외로움일 텐데 거기까지 생각하지 못했던 것 같다. 많은 걸 내려놓아야만 가능한 것을 엘리트의 삶을 살았던 사람에겐 쉽지 않았던 것이다. 서울의 빡빡한 공기와 생활을 저만치 밀쳐놓고 나의 삶을 찾겠다며 떠나왔지만, 사실 밀치고 떠난 것이 아니라 서울에 밀려서 떠나왔다.
받아들이기 힘든 삶이었을까 목사님께선 이런 일이 잦았다고 했다. 자신을 죽이겠다고 협박하는 딸과 그걸 만류하는 힘없는 무료 카지노 게임의 싸움이 말이다. 오늘 새벽에도 목사님은 이 집의 상황을 확인하러 다녀가셨다고 했다.
오르막길 끝엔 2층집이 무료 카지노 게임. 잘 정돈된 마당과 꽃들, 깔끔하고 부유해 보이는 벽돌 주택이었다. 'WELCOME'이라고 쓰인 바닥발판에 신발을 한 번씩 털고 집 내부로 들어갔다. 이층까지 시원하게 뚫린 천장, 거기에 달린 기하학적 모양의 조명이 집 분위기를 한층 더 고급스럽게 만들었다. 이전까지 내가 알고 보았던 자살 출동과는 사뭇 다른 느낌이었다. 바닥에 빈병들이나 알약 봉지가 굴러다니지도, 암막커튼이 햇볕을 가리고 있지도 않았다.
넓은 거실에 연결된 1층 방, 방문이 활짝 열려무료 카지노 게임.
"권사님!" 목사님은 방 앞에 망연자실하게 앉아 있는 한 노모 향해 한달음에 달려갔다. 백발의 노모는 우리의 기척에도 아랑곳 않고 오른쪽 한 곳을 응시하고 무료 카지노 게임. 그간 여러 현장을 접하며 생긴 촉 덕분인지 내 몸의 모든 센서들이 하나의 신호를 보내왔다.
'저곳에 무언가 있구나.'
노모의 시선을 따라 방안 오른쪽을 살피니 방문이 하나 더 무료 카지노 게임. 손잡이 옆에 전등 스위치를 켜고 방문을 여니 큰방에 딸린 화장실이었다. 화장실 바닥엔 한 여인이 식칼을 두 손으로 꼭 쥐고 무료 카지노 게임. 그리고 그칼은 그녀의 배를 깊게 뚫고 들어가 무료 카지노 게임. 낭자한 피 위에 하얗고 새파란 여인이 누워무료 카지노 게임. 옆에 서있던 선임구조대원은 잽싸게 노모의 눈을 손으로 가렸다.
"구급대원 불러와!"
선임구조대원의 부름에 나와 대원들은 집 밖으로 나가 구급차를 인도하였다. 집주소가 명확하지 않고 길이 가팔라서 구급차가 헤매다 겨우 모습을 드러냈다. 구급대원 주임님께 상황을 대략 설명하고 사건 현장으로 동행하였다.
거실을 통해 방안으로 무전을 하는 소방관, 전화하는 목사님, 노모를 부축하는 대원, 응급처치를 하는 구급대원들이 보였다. 그리고 망연자실하게 앉아있는 노모의 모습이 보였다. 모두들 정신없이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는 상황에서 노모의 시간은 다르게 흐르고 있음이 느껴졌다.
인간에겐 타임랩스 기능이 있다고 들었다. 삶이 돌이킬 수 없는 영역에 다다르면 지금껏 살아온 인생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져, 행복했던 시간, 슬펐던 시간들을 되돌아보게 만든다고 말이다. 신이 인간을 만들때 인생을 다시금 추억해보라고 탑재해 둔 기능일지도 모르겠다. 무료 카지노 게임는 이 찰나의 순간에 딸아이와 함께한 기억속을 여행하고 있는 듯 보였다.
딸은 다행히 생명에는 지장이 없었다. 구급대 차량에 싣고 병원으로 가려는데 대뜸 구급대 주임님께서 내게 물었다.
"그런데 칼은 왜 뽑아놓은 거야?"
"예?! 아 그래요? 저흰 잘 모르겠는데요."
"일단 알았어."
그말을 뒤로하고 구급차는 병원으로 향했다.
그러고 보니 분명 칼이 배에 꽂혀있었는데, 구급대가 도착했을 때엔 배에서 빠져무료 카지노 게임. 난 응급처치를 위해서 누군가 빼놓았겠지라며 무심코 지나쳤다. 구급대원은 그걸 놓치고 있지 않았던 것이었다. 왜냐하면 물체가 신체에 박혀있을 때엔 그걸 뽑지 않아야 한다. 과다출혈을 피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보통은 꼽혀있는 채로 병원으로 이송하게 된다. 센터로 돌아오는 길에 누가 이런 행동을 했을까 기억을 되짚어 보았다. 각 대원들의 기억을 퍼즐처럼 맞추다 보니 한 사람으로 추려졌다.
어머니(무료 카지노 게임)
구조대원들이 잠시 구급차를 인도하기 위해 밖으로 나갔을 때였다. 무료 카지노 게임의 옆을 지키던 목사님은 어딘가 바쁘게 전화통화를 하고 있었고, 선임구조대원은 우리들이 오지 않자 잠시 방에서 나와 밖을 살폈다고 했다. 그 사이에 무료 카지노 게임는 늙은 몸을 일으켜 자신의 딸이 누워있는 화장실로 갔다. 덜덜 떨리는 손을 서로 부여잡고 한발 한발 화장실 타일을 밟으며 딸의 곁으로 다가가 칼을 배에서 뽑았다. ‘챙그랑’ 식칼을 바닥에 던져두고 자리로 돌아온 것이었다.
건강과 행복을 바라며 서울로 보낸 자식인데 흰머리가 희끗한 채 다시 품으로 돌아왔다. 오랜 갈등 끝에 딸은 보란 듯이 어머니의 화장실에서 죽음으로 시위를 하였다. 결국 죽음에는 실패를 하였지만 꽤나 성공적인 시위였다. 그런 미운 자식임에도 무료 카지노 게임하는 딸을 위해 무엇이든 해야 한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딸아이 삶의 마지막이 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속에서, 무엇이 ‘옳은 일’인지, 무엇이 ‘도움이 되는 일’인지 모르는 채, 본능적으로 칼을 뽑아 든 것이 아닐까.
그날 이후로 무료 카지노 게임와 딸의 소식은 듣지 못했다. 식당 이모님을 통해 알고자 했다면 알았을테지만, 굳이 그러고 싶지 않았다. 내겐 작은 호기심이지만 누군가에겐 평생을 치유하며 살아갈 깊은 상처일 수도 있기에 말이다.
난 여전히 소방관으로서 수많은 자살 사건들을 겪는다. 사건의 주인공들은 구조가 된 후에도 살아야 할 이유를 찾지 못하거나, 아픔을 짊어진 채 살아간다.
확실한 건, 무료 카지노 게임이었다. 무료 카지노 게임의 부재나 어긋난 무료 카지노 게임이 그들 스스로를 죽음으로 몰고 갔다. 주위를 조금만 둘러봐도 그들을 향한 무료 카지노 게임이 보였을텐데, 이들은 하나 같이 조급하고 성급했다.
그래서 난 이 노모의 이야기가 기억되길 바랐다. 자신에게로 향한 칼을 뽑아주는 사람이 늘 곁에 있다는 걸 알리고 싶었다. 그리고 무료 카지노 게임이 언제나 이긴다는 것, 그것만큼은 변하지 않는다는 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