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 눈치 보지 말고 오로지 카지노 게임, 피아노를 칠 때에도 인생을 살 때에도
즉흥 환상곡을 마치고 이후에 선택한 곡인 쇼팽의 '녹턴 13번' 연습 및 레슨은 현재 진행형이다. 음악 빠르기 Lento(느리게)로 시작하는 이 곡은 정신없이 몰아치는 즉흥 환상곡과는 또 다른 매력인 느림에서 오는 약간의 웅장함, 그리고 음 하나하나마다 느껴지는 무게감 및 여운을 보여준다.
그런데 바로 이 지점에서 다시 난관에 부딪쳐버렸다. 나는 왜 선생님 옆에만 앉으면 음악에 카지노 게임하고 표현해 가는 과정을 보이는 게 그리도 부끄러워지는 것일까? 도대체 문제가 뭘까? 어렸을 땐 안 그랬던 것 같은데 말이다. 여러 요인이 있겠지만 그중 하나는 아마도 '타인에게 비치는 내 모습을 너무 의식하게 되어버려서'가 아닐까 생각한다.(또 가벼운 재치 및 재미만을 좀 더 추구하고 '진지함, 진중함'이라는 요소가 부담스럽게 비치기 쉬운 요즘 문화에서 눈치를 보게 된 영향도 있는 듯하다)
조금씩 나아지고 있긴 하지만 여전히 본격 레슨 시작 전 선생님 앞에서 첫 연주를 선보이는 과정은 어색하고 부끄럽다. 음악 그 자체에만 집중해도 모자랄 판에 내 표정, 몸의 움직임, 모션 하나하나가 의식되어 혼자 연주할 땐 들어본 적 없는 실망스러운 연주가 나오고 말 때가 많다.
"전 여러 번 말했지만, 항상 (연주가) 너무 빠른 게 불만이에요." 첫 연주를 듣자마자 선생님은 이렇게 이야기하셨다.
"엇, 정말요? 느리게 한다고 한 것 같은데..!"
"한 음씩 음을 좀 더 느끼고 싶은데 너무 후루룩 지나가 버려서..."
"앗..! 사실 지난번에도 말씀드린 적 있지만 선생님 옆에서 연주할 때, 느린 부분에서 그 공백을 (느끼면서) 견디는 게 너무 어려운 것 같아요! ㅠ 그 순간을 못 참겠어요! 오로지 빨리 (연주를) 끝내버리고 싶다는 생각만 들어서 그냥 빨리 지나가게 돼요"
"그쵸. 저도 뭔지는 알아요. 혼자 연주할 땐 막 카지노 게임해서 하는데 누구 옆에서 하려고 하면 괜히 뻘쭘하고... 그렇지만!"
카지노 게임을 깔아야 돼요!
앗, '카지노 게임'이라니, 보다 날 것의 표현의 등장에 웃음이 나왔다. 그런데 선생님의 저 한 문장이 내 머리에 제대로 꽂혔다. '아, 원래 그렇게 해야 하는 거구나. 카지노 게임을 깔고 해야 제대로 된 연주를 할 수 있는 거였구나!'
저 한마디를 통해 해답을 얻은 것처럼 마음이 편해지는 것 또한 느꼈다. '그래, 이제 내가 생각할 건 한 가지야. 바로 '카지노 게임 깔기', 이 컨셉에 집중하며 나아가보는 거야.'
예술이라는 과정을 통해 인생을 바라보며 배우게 되는 것이 많다. 현대 사회를 사는 우리들은 진정한 카지노 게임을 잊어버리고 말았다. 쉽게 얻을 수 있는 자극, 싸구려 도파민, 그와 함께 너무나도 쉽게 보여지는 남들의 삶에 대한 노출, 그리고 너무나도 잘 느껴지는 남들의 시선들로 인해서 말이다.
그런데 사실 진짜 멋있는 거, 진짜 아름다운 거, 진짜 예술은 오로지 그 모든 억압에서 벗어나 진정한 카지노 게임을 할 때 비로소 생겨난다. 내가 요즘하고 있는 녹턴 연주에서도 그렇고, 인생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카지노 게임 깔고, 진정한 무아지경에 빠질 수 있는 시간을 최대한 늘리는 것, 그게 올해의 컨셉으로 잡은 내 방향성이다.
https://youtu.be/aViEAlzrIig?si=TRNKcehax4cF6oo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