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지노 게임 김장하’라는 다큐멘터리를 봤다.
다큐가 끝난 후에도 위태롭게 사부작사부작 걸어가는 선생의 뒷모습이 마음에 남는다.
그 뒷모습은 나는 많은 위로를 주었다.
다큐멘터리 초반에 그가 ‘이 풍진 세상’이라는 표현을 쓰는 것을 보고 조금 의아했다.
어마어마한 자산가이고 수많은 선행을 일삼은 그도 이 세상사는 것이 힘들었다는 것인가?
그 의문은 다큐멘터리를 보면서 조금 이해가 되었는데 예를 들면
국회의원의 지인이 학교 선생으로 임명된 것을 뒤늦게 알고 이를 불합격 처리를 하면서 카지노 게임 학교는 불시의 세무감사 등의 과정을 거쳐야 했고
전교조로 인해 학교 선생들을 다 해고하라는 정부의 압박에 굴하지 않는 과정도 쉽지 않았고
우리의 역사, 민주주의를 지지하는 행위가 누군가에게는 빨갱이 행위로 비난을 들어야 했다. (실제로 어떤 사람이 선생에게 전화를 해서 쌍욕을 하는 장면이 있었다)
이런 사건들은 아주 찰나의 내용으로 구성되어 있었지만 제삼자인 내가 봐도 분노가 치밀어 오르는 일들이었다.
왜냐면 그 모든 것들이 선생 자신의 이익이 아닌 사회의 이익을 위한 노력이었음에도 그의 행동은 오해받고 비난받았기 때문이다.
그럼에는 그는 이 풍진 세상을 자신의 신념대로 사부작사부작 걸어갔다.
베풀 때는 생색 내지도, 조건을 달지도, 실익을 따지지도 않고 후하게 나누어 주었다.
한 푼이라도 더 갖기 위해 악착같이 달려드는 환경에 푹 절여 있는 나에게 그의 모습은 신선한 충격이자 자유였다.
도움이 필요한 학생들이 찾아왔을 때 조건을 걸지도 않고 그 자리에서 돈을 세어 주었다던 그 카지노 게임은, 지금 나의 상황에서는 어떻게 했을까.
내게서 최대한 많은 돈을 받아내기 위해 노력하는 아랫집 주인과 세입자를 보며 나보다 나이도 한참 위인 사람들이 너무 하다고 생각했는데…
그들을 비난하기보단, 과연 나는 카지노 게임의 모습인지 생각하게 해주는 다큐멘터리였다.
여든의 나이에 한약방 문을 닫는 카지노 게임 모습은 자유로워 보였다.
이 풍진 세상에서 자신의 신념을 지키며 사회에 환원하는 삶을 살았던 카지노 게임 두 눈은 내내 반짝거렸다.
카지노 게임 선생은 이 사회는 평범한 사람들로 지탱된다고 하셨다.
나는 지금 비록 누수로 인해 소송을 앞두고 있고, 나의 이익과 손해 하나하나에 마음이 무너져버리는 소시민이지만
삶을 마치는 순간, 지나온 시간을 악착같은 움켜쥠으로 기억하고 싶지는 않다.
나이가 들 수록 노인이 아니라 카지노 게임으로 기억되고 싶다.
모르겠다. 다시 새로운 한 주가 시작되면 이런 생각 따위 깡그리 잊어버릴지도 모르지만 일단 지금의 마음은 그렇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