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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푸른청년 Apr 06. 2025

자본주의를 넘어서는 위대한 카지노 게임 개선은 가능할까?

카지노 게임문제의 경제학 - 헨리 조지

현대 자본주의 카지노 게임의 가장 큰 문제는 뭘까?

많은 사람들이 양극화 문제를 이야기한다.

가난한 사람은 더 가난해지고

부자는 더 부자가 된다.

한쪽에서는 굶어 죽는 사람이 많아도,

한쪽에서는 낭비와 사치가 도를 넘는다.


이게 왜 문제일까? 당연한 것이 아닌가?라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을 것 같다.

양극화는 카지노 게임불안을 야기하고 중산층이 사라져 카지노 게임경제가 무너진다.

그렇게 되면 그 기반인 민주주의와 카지노 게임도 함께 망할 수 있다.


이런 카지노 게임 문제를 극복하고자 공산주의가 나왔지만 실패했다.

공산주의가 실패하자 수정카지노 게임나 사회민주주의가 나와서 복지국가를 표방했지만 국가 재정이 어려워 보이자 오히려 신자유주의가 득세했다.

신자유주의가 득세하며 자본이 전 세계를 넘나들자 트럼프가 신보호주의를 내세우며 당선됐다.

그렇다면 더 이상 대안은 없을까?


미국의 정치경제학자인 헨리 조지가 이미 1800년대에 그 해법을 제시했다.

너무 오래전이라 놀랬는가? 하지만 지금 읽어도 아무 어색함이 없다.


그는 모든 카지노 게임 문제의 원인이 공기와 같이 모든 사람이 자유롭게 사용해야 할 토지의 독점에서 온다고 본다.우리는 이를 보통 토지공개념이라고 말한다.

쉽게 말하면 ‘조물주 위에 건물주’라는 말은 괜히 나온 얘기가 아니다.


그렇다고 그가 사유재산을 부정하는 게 아니다.

오히려 적극 권장한다. 자선을 베풀 필요도 없다고 말할 정도다.

이 점이 공산주의와 다른 점이다.


다만 “생산하는 사람이 소유해야 하고 저축하는 사람이 누려야 한다”는 것이 그의 단 하나의 원칙이다.

이것에 동의하지 않는 사람은 더 이상 그의 주장을 읽을 필요가 없다.

어쩌면 당연하다고 해야 할 이 사실이 더 이상 사실이 아니라는 진실을 (이 책을 읽으면서) 모두가 애써 외면하고 있는 것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재산 보유액이 수백만 달러에 달하는 사람들을 보면 독점적 요소, 즉 다른 사람이 생산한 부를 전유하는 행위가 개입되지 않은 경우를 발견하기 어렵다”


독점이나 약탈이 부의 불평등한 분배를 만드는 가장 큰 원인이라는 것이다.


“부의 분배가 불평등해지는 이유는

인간 본성이 불평등하기 때문이라고…”


“모종의 폭력적 수단을 동원하여

부를 평등하게 나눈다면

해로운 결과밖에 얻을 수 없을 것이다”


그의 비판은 좌우를 가리지 않는다.


“열심히 일하는 사람들은 너무도 적게 벌고

거의 아무 일도 하지 않는 사람은 그리도 많이 버는 이유”는 바로 독점과 강탈에 기인한다.

그러므로 올바른 카지노 게임라면 독점과 강탈을 못하게 해야 한다는 것이다.


자본은 선한 것이다.

그리고 독점가가 아닌 자본가는 돕는 사람이다


독점이나 강탈이 아니라면 자본가는 오히려 선한 사람이라고 주장한다.

독점가와 자본가를 분리한다.

하지만 독점하지 않고서 자본가가 될 수 있을까 의심이 들긴 한다.


“노동이 부를 생산하기 위해서는 이미 존재하는 재료와 자연력에 접근할 수 있어야만 한다.

자연의 재료와 기회가 공기처럼 모든 사람에게 공짜로 주어지는 세상

이런 세상이 헨리 조지가 꿈꾸는 세상이다.


원래 노동에 돌아가야 할 생산성 상승의 이득 중에서 실제로 노동이 차지하는 부분은 미미하다.

그 일부는 다양한 형태의 독점체들이 차지하고, 나머지 대부분은 땅을 독점하는 자들이 차지한다.

그 과정에서 지대와 지가가 상승하는 것은 물론이다.”


“노동에 대한 보수는 최저 수준 이상으로 올라가지 않는다. 노동자가 절약을 더 하는 경우에도, 그것이 일반화되면 노동에 대한 보수를 상승시키기는커녕 오히려 하락시킨다.”


지금의 현실도 그렇다.

2023년 기준 최저임금도 받지 못하는 근로자 비율이 300만 명으로 13.7%다.


노예 제도의 본질은 노동을 강탈하는 데 있다.

즉 사람들에게 일을 강요하고는 노동생산물 중에서 간신히 생계를 유지하는 데

필요한 만큼을 뺀 나머지를 모조 빼앗는 것이 노예제도의 본질이다.”


우리는 노예제도가 끝났다고 생각하지만 그 본질을 보면 아직도 끝나지 않았다.

이런 노예 생활에서 벗어나는 방법은 독점과 강탈을 막아야 하는 방법뿐이고,

독점과 강탈을 막는 방법은 토지를 공동소유로 해야 하고, 토지가치세를 물려야 한다고 주장한다.


“개인의 노력에 의해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카지노 게임가 존재하고 성장하기 때문에 생기는 토지가치를 카지노 게임가 징수해서

카지노 게임의 필요를 충족시키는 데 쓰자”


그의 주장을 읽다 보면 너무 합리적이라 도저히 반박할 수 없다. 나는 그랬다.

그런데 왜 그의 주장은 받아들여지지 않았을까?

역사 이래로 너무나 강한 토지에 대한 소유욕 때문일까? 나부터도 일단 이미 가진 것을 내놓으라고 할 때의 반발은 상상을 초월할 만큼 강할 거 같긴 하다.


그렇다면 이 주장을 어떻게 현실화시킬 수 있을까?

불가능해 보이지만 그는 희망을 버리지 않는다.

어쩌면 너무 이상적이다.


“위대한 카지노 게임 개선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이기심이 아니라 동정심에,

자기 발전의 욕구가 아니라 의무감에 호소해야 한다고 나는 확신한다.”


나는 반대로 위대한 카지노 게임 개선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이기심과 자기 발전의 욕구에 호소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나만 잘 사는 것은 곧 내가 망하는 지름길이요.

남도 잘 사는 것이 내가 잘 사는 길이라고,

남도 발전해야 나도 발전할 수 있다고 호소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인간이 타인의 행복을 추구하지 않고서는 행복해질 수 없는 존재로 만들어진 것처럼..."


인간은 누구나 자기의 행복을 추구한다.

그런데 그 행복의 비밀이 내가 아니라 남과의 관계에 달려 있다는 것이 헨리조지가 말하는 통찰의 비밀이 아닐까 생각한다.

우리는 이기심을 넘어 과연 위대한 카지노 게임 개선을 할 수 있을까?

꼭 한 번 읽어보시기를 강추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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