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원에세이
긴 시간 눈이 내리네요. 신이 겨울을 만든 것은 사랑의 온기를 나누라는 뜻이랍니다. 따뜻한 하루 되세요. 온라인 카지노 게임! 배풍등 다섯 알, 빨강 열매 위로 흰 눈 소복한 사진이 글자 배경이다. 커피를 잘 섞으면 향기가 나고 친구를 잘 만나면 힘이 난다고 하네요. 꽁꽁 얼어붙은 매서운 날씨, 빙판길 운전 조심하시고 즐거운 날 되세요! 온라인 카지노 게임! 어제는 보랏빛 팬지꽃이 글자 배경이었다. 그래! 어때! 까짓거! 마음 따라 얼굴도 변하고 얼굴 따라 행동도 바뀌는 것! 모든 것은 생각의 차이! 오늘도 활짝 웃는 하루 되시기를 응원합니다. 온라인 카지노 게임! 오늘 아침에는 한 그루 노송 뒤로 일출이 웅장한 사진이 글자 배경이다.
매일 아침 7시 경이면 어김없이 온라인 카지노 게임 알람이 울린다. 65세 남자. 나는 그분을 만나 뵌 적이 없다. 통화를 한 적도 없다. 아는 것이라곤 교통사고로 한쪽 팔을 잃어 불편하고, 봄이면 봄꽃, 가을이면 국화뿐 아니라 백합 구근까지 나누는 분이라는 것이 전부다. SNS에 올라온 게시 글에 분양 신청한 것이 인연이었다. 지난가을에는 참나리꽃 구근을 받았다. 밤사이 눈이 내렸으니 조심하라는 글, 독감이 유행이니 따숩게 입으라는 글, 빨리 걸어도 천천히 걸어도 주어진 하루는 같으니 서두르지 말고 보내라는 글들. 당신이 가꿔 찍은 꽃 사진 배경 위에 안부 글이 합성된 이미지는 날마다 톡서랍으로 날아온다.
처음에는 일일이 답톡을 드렸다. 선생님도 즐거운 날 되세요, 라는 식으로 말이다. 그 이상의 대화로 발전하지는 않았다. 언제까지 이 서름한 온라인 카지노 게임을 주고받아야 하나, 나는 서서히 피로감을 느꼈다. 그렇다고 사생활을 보여줄 수 없는 노릇이잖은가. 망설이다가 용기를 냈다. 정중한 마음으로 적어 내려갔다. 이런 수고 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귀한 시간에 보내주시는데, 일상에 쫓겨 저는 답글을 보내지 못합니다. 죄송합니다, 라고. 늦은 오후에 답장이 왔다. 소장님! 답글 안 주셔도 괜찮습니다. 받아주기만 해도 좋습니다. 읽고 나니 좀 편안해졌다. 요즘은 하트 표시 하나 남기거나 무응답으로 응답한다.
보건진료소에서 하루 평균 스무 명 남짓 되는 환자를 만난다. 마을 출장 가는 경우에는 안내문에 긴급 연락처로 내 핸드폰 번호를 적는다. 의도하든 의도하지 않든 번호가 노출된다. 주민들과 카톡을 주고받는 것은 이제 일상이 되었다. 보건진료소에 가려는데 근무하시나요, 확인하는 메시지부터 ‘안부를 묻는다면 그것은 따뜻함이고, 누군가 관심을 둔다면 그것은 행복입니다. 사랑합니다, 우리 소장님!’ 부류의 노골적(?) 고백도 받는다. 문자 그대로 받아 읽고도 나는 어쩌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답을 보내야 한다는 부담과 불편이 짐스러웠는데 편하게 지내도 된다는 것을 아는 데에 긴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보건진료소에 오면 누군가는 질병으로 입원했던 경험을. 누군가는 죽음의 문턱까지 다녀온 경험을 나눠주신다. 중환자실에서 친구나 가족에게 받은 메시지로 힘을 얻은 기억, 건강할 때 서로 나누며 살고 싶다는 기억들이 글을 보내는 행위에 서려 있음을 알게 되었다. 세월호 참사, 이태원 참사, 제주항공 참사. 끊이지 않는 무참한 뉴스에서 유족들이 오열하는 장면을 본다. 사랑하는 딸 혹은 엄마에게 카톡을 보냈으나, 사라지지 않는 ‘1’이 클로즈업된다. 배는 가라앉았고 비행기는 사라졌다. 사람들이 돌아오지 않는다. 응답하라는 메시지 옆에 끝내 사라지지 않고 서 있는 숫자 1은 영원 속에서 모두를 비통하게 한다.
며칠 후 보건진료소에 요양보호사가 오셨다. 그분은 대상자에게 카톡 메시지가 즉시 사라지거나 혹은, 며칠 후에 사라지는 1을 보면, 아! 살아계시는구나. 읽어 보시는구나, 그것만으로 안부가 확인되어 안도한다고 하셨다. 그날 오후 어느 게시판에서는 ‘카톡에서 사라지지 않는 1을 3∼4일째 보고 있습니다. 저는 차단당한 것일까요? 의도적으로 저의 메시지를 안 읽고 있는 것 같습니다. 이 사람과 썸타는 관계는 아니고요, 사무적으로 아는 분입니다. 속상하네요.’라는 사연을 읽었다. 꼬리에 꼬리를 무는 답들이 이어져 있었다.
인상적인 글은 ‘안읽씹’이었다. 답장은커녕 상대가 메시지를 읽지도 않고 씹어버렸다며 속상해하는 사람도 있고, 무시를 넘어 ‘읽씹’보다 더한 모욕감을 느꼈다는 네티즌도 있었다. 그런가 하면 카톡 내용을 확인하고도 상대방 카톡에 1이 사라지지 않게 하는 비법이라든가, 메시지와 사진, 심지어 영상까지 버젓이 보고 나서도 상대방 카톡에 1이 사라지지 않게 하는 꿀팁이 공유되고 있었다. 저렇게까지 해야 하나라는 생각도 들었지만, 그래야만 하는 이유는 다양할 것이다. 이미지는 곧 삭제할 파일에 불과하다.
그것을 보내주는 ‘한 사람’의 영혼을 위한 간호를 어떻게 실천해야 할까. 간호사는 단순히 환자를 이해하는 선을 넘어야 한다. 사람은 삶과 이야기를 지닌 인격체로서 존재하는 개인임을 기억해야 한다. 환자 자신이 되어 상황을 파악하고 본질을 통찰해야 한다는 생각에까지 이르니, 간호가 이토록 어려운 도반이었나 싶다. 임무를 수행하는 간호 실천자로서의 길을 가는 동안 간호사 자신도 성장하기 때문이다. 사람에게 집중해야 하는 이유이다. 산그림자도 어쩌지 못하는 실존의 고독과 권태. 누군가는 메시지를 보내고, 누군가는 읽어주기만 해도 된다. 당신에게 멀어질까 불안하고 상실이 두려운 우리는 꽃샘추위 속 흰 무리 온라인 카지노 게임이 아닐는지. 샘골 모퉁이에 가봐야겠다.
.
.
월간가드닝 「정원에세이」 2025년 2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