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지노 게임 사이트의 단상 Fragments d'un discours amoureux
(원문과 나의 해석)
puisque l'autre souffre sans moi, pourquoi souffrir à sa place?
(카지노 게임 사이트하는) 상대방은 나 없이 고통받는데, 왜 (내가) 그의 입장에 서서 고통받아야 한단 말인가?
Son malheur l'emporte loin de moi, je ne puis que m'esouffler à courir aprés lui, sans pouvoir espérer jamais le rattraper, entrer en coïncidence avec lui.
그의 불행은 그를 나로부터 멀리 데려가버리고, 그를 따라잡거나 그와 일치되리라고 희망할 수도 없으면서, 나는 그 뒤를 좇아가느라 숨만 찰뿐이다.
Détachons-nous donc un peu, faison l'apprentissage d'une certaine distance.
그러니 우리 좀 떨어져서, 얼마만큼의 카지노 게임 사이트를 두는 연습을 하자.
Que surgisse le mot refoulé qui monte aux lévres de tout sujet, dès lors qu'il survit à la mort d'autrui : Vivons!
타자의 죽음으로부터 살아남은 그때부터, 온전한 주체의 입술 위로 떠올라오는, 억압받은 말들이 솟구치나니 : 살아라!
Je souffrirai donc avec l'autre, maissans appuyer, sans me perdre.
그럼에도 나는 그와 함께 고통당할 카지노 게임 사이트다. 하지만 억누르지 않고또 나를 잃어버리지 않고서!
Cette conduite, à la fois très affective et très surveillée, très amoureuse et très policée, on peut lui donner un nom : c'est la délicatesse: elle est comme la forme «saine» (civilisée, artistique) de la compassion.
이러한 처신(conduite)은 매우 다정하지만 동시에 감시하며 지켜보는 카지노 게임 사이트고 또 애정이 넘치지만 동시에 전략적인 것으로서, 일종의 세심함(délicatesse)이라 부를 수 있을 카지노 게임 사이트다. 그런 카지노 게임 사이트야말로 연민의 강건한(문명화되고 예술적인) 형상 같은 카지노 게임 사이트 아닐까.
(단어와 문법)
* autre 상대방 / autrui 타자, 타인
* souffrir, esouffler
-souf- 는 입으로 숨을 내뿜는 형상이다. (souffler 숨을 내쉬다) 고통을 겪을 때(souffrir) 숨을 크게 내쉬어야만 그 고통을 감당할 수 있을 것이다, (나보다 훨씬 빨라서 결코) 잡히지 않는 뭔가를 쫓아가야 할 때, 숨은 가빠지고(essffler) 숨이 차면, 결국 나는 정체될(essffler)수밖에 없다.
* Détacher (묶였던 것을) 끄르다, (붙어있던 것을) 떼다, (가깝다가) 멀리하다... 처음부터 멀었던 카지노 게임 사이트 아니라, 노력과 고통 등이 따르는 떨어짐의 의미가 함축되어 있다.
* faire l'apprentissage de~ 문장 속에서는 좀 더 자연스럽게 '카지노 게임 사이트하다'로 써봤지만, apprentissage의 본 뜻은 도제수업 혹은 입문 수업이다. 카지노 게임 사이트 연습이란, 아직 아무것도 모르고 못하는 상태에서 모든 것을 새로 배우며 시작하는 공부이고, 그것을 실전에 사용하려면 몸에 밸 일정한 '기간'이 필요한, 일종의 수련과 같은 것이라고 롤랑 바르트는 말하는 것인가.
(단상에 대한 단상)
우울 속에 파묻혀 이것저것 뒤적카지노 게임 사이트다가 문득 발견한 "갱년기 우울증". 바로 딱 지금의 내 상태다. 안 그래도, 하루에도 열두 번씩 더웠다가 추웠다가 그러길래 갱년기구나 싶기는 했다. 그러나 그건 그냥 신체적 상태라고만 생각했고, 누구나 다 지나가는 그런 거라고 별로 괘념치 않았다. 그런데도 이상스레 무리한 일도 없는데 너무 피곤해서 자꾸 눕고만 싶어지고, 그렇게 눕는다고 잠드는 것도 아니고, 그저 이 생각 저 상념으로 계속 우울 속으로 들어가기만 하는 나날들이 이어지고 있었다. 롤랑 바르트에 따르면 아마도, 나는 '우울하다고 느끼는 나'와의 카지노 게임 사이트 두기에 실패했던 것이다.
나 아닌 다른 누군가를 카지노 게임 사이트할 때는, 카지노 게임 사이트하는 그 사람이 우울해한다고 해서 나마저 우울에 빠지지는 못한다. (바르트의 말처럼 실제 그 사람을 구하는 건 불가능하지만 그래도) 카지노 게임 사이트하는 그 사람을 구해내야 하니깐! 그런데 나처럼, 이제 (노쇠해서 ㅠㅠ) 누군가를 열정적으로 카지노 게임 사이트하지도 못하고 (또한 이 우울로부터 나를 구해주겠다고 열정적으로 나설 이도 없을 것이라며 ㅠㅠ) 자기 연민에 휩싸일 뿐인 나 같은 사람의 우울은, 좀 심각해질 수 있다. 그러니 롤랑 바르트가 말하는 거리 두기는 오히려 나 같은 이들에게 필요한 덕목이 아닐까.
자아와 자기 사이에 거리두기, 자아에 대한 연민에 빠져서 자기를 잃지 않기. 그렇다고 자아에 대한 연민을 억누르지도 않기. 갱년기 이전의 나,와 갱년기 속의 나,와 갱년기를 빠져나온 내,가 서로서로를 세심하게 - 다정하게 감시하고 카지노 게임 사이트스럽게 전략적으로- 지켜보면서 함께 수련해 가야만 한다. 갱년기에 롤랑 바르트를, 그것도 원문으로, 읽고 있어서 다행이고나.
** 아참! 롤랑 바르트를 원문으로 혼자 읽는 건 아니고 (혼자 읽어낼 만한 실력도 없고) '대안연구공동체'에서 https://cafe.naver.com/paideia21/17977번역가 선생님의 강좌를 매주 들으며, 복습을 위해 글을 써 나가고 있는 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