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디카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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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벼리영 May 04. 2025

십자가 너머 beyond the cross

벼리영 디카시집

디카시집을 출간했습니다. 서평을 두 번 나눠서 게시합니다.

도움주신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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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NS 날개를 타고 빛보다 빠른 속도로 전달되는 디지털 별의 향연“

-벼리영 디카시집 『십자가 너머 Beyond the cross)』작품세계

정유지(경남정보대 디지털문예창작과 교수)


”디카시는 과학의 산물이다. 세 가지 변신을 통해 과학 3종 세트를 생성시킨다. 첫 번째, 디지털사진작가의 변신을 통해 영상 미학을 수놓는 자연과학이 관통하고, 두 번째, 스토리텔러(Storyteller)의 변신을 통해 5행 이하의 시적 문장을 완성하는 인문과학이 관통하고, 세 번째, 한 줄짜리 카피를 만들어내는 카피라이터(Copywriter)의 변신을 통해 제목이 눈에 확 띄게 클로즈업시키는 사회과학이 관통한다. 즉 세 번의 '발상의 전환'이 요구된다.”

디카시는 변신의 대명사다. 디카시는 디지털 제목, 디지털 영상(사진), 디지털 글쓰기의 삼위일체로 연동되어야 한다. 한 몸으로 이루어진 멀티언어다.

1. 존재론적 자각을 통해 인간의 정체성을 회복하다.

“자식에게 부모는 우주다. 부모에게 자식은 신이다. 아무것도 못하는 무능한 신. 부모는 그런 자식을 극진히 섬긴다.”

인용된 것은 영화 <대가족에서 큰스님으로 출연한 이순재 배우의 대사다. 자식인 ‘나’는 무능하고 무능했고, ‘아버지’는 무능한 ‘나’라를 ‘신’을 최선을 다해 섬겼다. 온 우주가 사라진 후에야 스스로가 얼마나 무능했는지 오랜 시간에 걸쳐 깨달아 가고 있다. 우주를 잃게 되면 내가 자식들의 우주가 되어야 한다. 이러한 존재적 자각을 벼리영 시인의 디카시집 『십자가 너머(Beyond the cross)』를 통해 감상할 수 있다.

“그림을 그리듯 구도를 잡고 셔터를 누릅니다.
입체파를 흉내 내기도 하고 클림트의 화풍을 풍경 속온라인 카지노 게임 포착하기도 합니다.
사조(思潮)를 넘나드는 디카시와의 만남,
오랜 전통온라인 카지노 게임 하이퍼미디어까지
시대를 초월하며 다가온 디카시가 가슴을 두드립니다.
감동 있는 그림처럼 섬세하게 다른 이의 가슴을 두드리는 작가가 되고 싶습니다.”

인용된 것은 <작가의 말에 나오는 내용이다. 디카시인이 디카시를 창작하려면 간절함이 있어야 함을 엿보게 한다. 인간의 간절함은 시대의 위기를 주도하고, 언제나 가소성(可塑性)을 존재하게 했다. 간절함은 태양보다 뜨겁고, 달보다도 차가운 상상력을 탄생시킨다. 자신이 처한 환경이나 상황에 따라 극한 상황이나 파국의 위험도 따른다. 주기적 고비를 관통하는 절실함의 확장은 결국엔 노력의 결실과 열매를 얻는다. 폴 발레리는 1920년 발표한 시 「해변의 묘지」를 통해 삶이란 결국 바람으로 설정하고 있는 가운데, ‘바람이 분다. 살아야겠다’는 심연 위에서 태양을 발견한다. 영원한 원인을 갈구하는 구도자의 간절함을 설파하면서, ‘시간은 반짝이고 꿈은 지식’임을 역설한다. 폴 발레리의 절실함이 아름다운 시편을 생산하는 발원지가 되었다. 벼리영 시인에게 있어 절박함은 ‘십자가 너머의 세계’로부터 비롯된 감성의 시적 장치다. 그 시적 장치가 『십자가 너머(Beyond the cross)』를 견인하는 근원이 되었다. 벼리영 시인은 순간 포착의 셔터로 생성시킨 절절한 감성의 메타포를 통해 자신만이 그려낸 독특한 빛깔의 디카시를 생산하고 있다.
벼리영 시인은 노인 문제에 대해 누구보다 깊은 사유의 세계를 구가한다. 「노인 유치원」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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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로를 종횡했던 젊은 날을 회상하며
할 말이 많아 입을 못 다문다
-「노인 유치원」전문



인용된 디카시는 젊은 시절의 삶과 경험을 회상하며, 그로 인해 생긴 생각들을 표현하고 있다. 시적 문장을 통해, 주로 노인이 된 시인의 시각에서 젊은 시절의 삶을 돌아보며, 그때의 꿈과 열정, 그리고 지금의 현실을 비교하고 반성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첫 행에서‘도로를 종횡했던 젊은 날을 회상하며’의 시적 문장에서, 노인들의 젊었을 때 자유롭고 열정적인 삶을 떠올리는 있다. 즉, 젊은 시절에 삶을 자유롭게 누리며, 여러 곳을 떠돌고 경험을 쌓았던 순간들을 의미한다. 이는 지금의 '폐타이어=노인'이 된 자신과는 다른, 활력 넘치는 시절을 회상하는 메타포로 볼 수 있다. ‘할 말이 많아 입을 못 다문다’에서, 젊은 시절의 경험이 너무 많아서 말로 다 표현할 수 없다는 의미다. 젊은 시절의 경험들이 시인의 삶에 얼마나 많은 영향을 미쳤는지를 보여주고 있다. 동시에 그것들이 시간이 지나면서 점점 더 중요해지고, 그만큼 그때의 삶이 그리워진다는 감정을 그려낸다. 이 디카시는 폐타이어를 노인으로 비유할 수 있는 전생을 그려낸다. 아울러 젊은 그 시절에 느꼈던 감정과 꿈, 그리고 지금의 현실을 회상하는 형태로 전개되었다. 시인은 젊은 날의 자유로움과 그때의 희망찬 마음을 떠올리면서, 세월이 흐르고 나이가 든 현재 자신이 놓친 것들, 혹은 변한 것들을 아쉬워하는 마음도 담겨있다. 단순히 과거를 회상하는 것을 넘어서, 그때의 열정과 꿈을 여전히 간직하고 싶은 마음을 드러내며, 삶에 대한 성찰과 아쉬움을 동시에 표현하고 있다. 결국 「노인 유치원」은 시간을 지나며 변해가는 자신을 돌아보고, 그 안에서 여전히 살아있는 젊은 시절의 꿈과 열정을 놓지 않으려는 시인의 마음을 담고 있는 수작이다. 시인은 노인문제에 대해 항상 성찰을 거듭한다. 「요양원」에서 이를 확인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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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벼락에 기대어 볕을 쬐고 있는 저 백발 노인들
그 누구도 그립다 말 못 하고

먼 하늘만 보고 또 보고
-「요양원」 전문

인용된 디카시는 노년의 고독과 외로움을 주제로 한 작품이다. 늙어가는 과정에서 느끼는 무력감과 고독을 담담하고도 강렬하게 어필하고 있다. 디카시는 디지털 영상의 담벼락을 ‘요양원’으로 설정하고, 담벼락 앞에 있는 갈대들을 ‘노인’으로 바라보고 있다. 이 디카시는 노인들의 심리 상태와 그들이 겪고 있는 감정의 내면을 드러내고 있다. ‘담벼락에 기대어 볕을 쬐고 있는 저 백발노인들’에서 시인은 요양원에서 시간을 보내고 있는 노인들의 모습을 연상시킨다. 이들은 햇볕을 쬐며 시간을 보내지만, 그들의 모습에서 느껴지는 것은 단순한 평온함이 아니라, 삶의 끝자락에서 맞이하는 일상적인 무기력함과 고독이다. '백발'이라는 표현은 그들의 나이를 상징적으로 나타내며, 시간의 흐름과 결국 찾아오는 노화의 현실을 암시한다. ‘그 누구도 그립다 말 못 하고’라는 시적 문장에서, 노인들이 내면에서 느끼는 외로움과 아쉬움을 담고 있다. 노인들은 아마도 과거의 삶이나 떠나간 사람들을 그리워하고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 누구도 ‘그립다’는 감정을 밖으로 표현하지 못하고, 서로의 고독을 공유할 수도 없는 상황에 놓여 있다는 점이 부각된다. 사람들이 노화와 고독 속에서 자신의 감정을 드러내지 못하고, 서로에게 다가가지 못하는 상황을 보여준다. ‘먼 하늘만 보고 또 보고’는 노인들이 하늘을 바라보며 시간을 보내는 모습을 그린 시적 언술이다. 하늘은 끝없이 넓고 먼, 변화하는 대상이지만 그들은 하늘을 바라보며 아무 말 없이 시간을 보내는 모습을 통해, 노인들이 가진 삶의 한계를 나타낸다. 그들의 시선은 이제 사람들에게 닿지 않고, 그저 멀고 먼 하늘을 응시하며 시간을 보내는 것이다. 노인들이 느끼는 고립감을 더욱 부각시키며, 이들이 현실과의 연결을 잃어버린 채 고독을 받아들이고 있다는 메시지를 전달하고 있다. 전체적으로, 「요양원」은 노년의 외로움, 고독, 그리고 삶의 끝자락에서 느끼는 무력감이 생성된다. 시인은 요양원의 공간을 통해 시간이 흐른 후의 사람들의 감정을 담백하게 드러내며 인간 존재의 연약함과 그로 인한 고독을 깊이 느끼게 만든다. 노인들의 고독이 상징적으로 담긴 이 디카시는, 시간이 지나면 누구나 겪을 수밖에 없는 노화와 죽음에 대한 진지한 성찰을 유도한다. 시인은 가족의 의미를 재탄생시킨다. 「가족관계증명서」에서 이를 확인할 수 있다.




아버지는 노랗게
어머니는 점점 노랗게
아직 파릇파릇한 나,
그렇게 익어가는
닮은 꼴, 우리 가족
-「가족관계증명서」 전문

세 개가 나란히 이어진 연잎의 영상기호를 보고, 하나의 가족관계증명서로 바라본 시각이 참으로 놀랍다. 가족 간의 유사성과 세월의 흐름을 중심으로, 가족 구성원들의 관계를 성찰하는 디카시이다. 이 작품은 간결한 언어로 가족의 내밀한 변화를 담아내며, ‘닮은 꼴’이라는 표현을 통해 세대 간의 유사성, 그리고 시간에 따른 변화를 드러낸다. ‘아버지는 노랗게 / 어머니는 점점 노랗게’의 시적 문장에서, 시인은 아버지와 어머니의 노화 과정을 묘사한다. '노랗게'라는 표현은 아버지와 어머니가 나이가 들어가면서 겪는 자연스러운 변화를 상징적으로 나타낸다. 이 변화는 자연스러운 노화의 과정이지만, 그 안에는 어쩔 수 없는 삶의 무상함이 느껴진다. ‘아직 파릇파릇한 나’에서, 시인은 '파릇파릇한 나'라는 표현을 통해, 자신이 아직 젊고 생기 넘치는 상태임을 강조한다. 영상기호에서도 파릇파릇한 이미지가 이를 뒷받침해 준다. '파릇파릇'은 신선하고 생명력 넘치는 이미지를 상징하며, 이것은 자신이 아버지와 어머니와는 다른 세대에 속해 있음을 나타낸다. 아버지와 어머니가 '노랗게' 변해가는 동안, 자신은 아직 젊음과 생동감을 지닌 존재로, 그들보다 시간이 뒤에 있다는 사실을 은근히 드러낸다. ‘그렇게 익어가는 / 닮은 꼴, 우리 가족’에서, 마지막 부분은 ‘익어간다'는 시적 언술을 통해, 시간에 따라 점차 변화하는 가족 구성원들의 모습을 그려낸다. 익어간다'는 것은 물리적, 감정적 변화 모두를 포함하는 표현으로, 사람들은 나이를 먹으며 점차 ‘익어간다’고 볼 수 있다. 이때 가족 구성원들이 서로 닮아간다는 점에 주목할 수 있다. 시간이 흐르며 부모의 모습이 자식에게서 보이고, 자식은 부모의 모습을 조금씩 닮아간다는 점에서, ‘닮은 꼴’은 생물학적 유사성뿐만 아니라 감정적 유대와 세월의 흐름을 뜻한다. 이 디카시는 가족이라는 울타리 안에서 일어나는 세대 간의 변화를 그린 작품이다. 아버지와 어머니의 노화 과정, 그리고 그들로부터 물려받은 자식의 생명력 넘치는 모습이 시간 속에서 자연스럽게 맞물려 있다. 시인은 ‘닮은 꼴’이라는 주제로, 시간이 지나면서 가족 구성원들이 서로 닮아간다는 사실을 나타내며, 이는 단순한 외적 유사성뿐만 아니라, 가족 간의 인연과 세대 간의 흐름을 성찰하는 지점을 제공한다. 시인은 고독에 대한 의미를 숙고한다. 「독거」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






두려운 건 어둠이 아니라네

어둠보다 더 지독한 외로움이라네
-「독거」 전문


「독거」는 외로움과 고독에 대한 심오한 성찰을 담고 있는 디카시이다. 배수구 입구에서 자라는 식물을 디지털 영상으로 순간 포착하고, 이를 ‘독’거라는 한 줄짜리 카피로 유통시키고 있다. 이 작품은 단순히 어두운 환경을 묘사하는 데 그치지 않고, 그 어둠을 넘어서는 인간 내면의 고독을 강조한다. 특히, ‘두려운 건 어둠이 아니라네, 어둠보다 더 지독한 외로움이라네’라는 시적 문장은 어두운 환경 속에서도 더 큰 공포는 외로움이라는 사실을 상기시켜 준다. 이 작품은 인간 존재의 본질에 대해 묻고 있다. 어둠은 단순히 외적 환경을 의미할 뿐, 진정한 고통은 그 어둠 속에서 느끼는 외로움과 고립감에서 비롯된다는 메시지를 전달한다. 사람들은 때로 외로움이 신체적 고통보다 더 심각한 영향을 미친다고 느끼기도 합니다. 그러한 고독은 마음속에서 서서히 쌓여가며, 결국 그 어떤 어둠보다 더 깊고 절망적인 상태에 이르게 된다. 시인은 이와 같은 감정을 사실적으로 묘사하면서, 독자에게 공감과 성찰을 이끌어낸다. 외로움이라는 감정은 시대적, 사회적 맥락에서도 중요한 의미를 지니는데, 현대 사회에서 개인주의와 빠르게 변하는 환경 속에서 사람들은 종종 소외감을 느끼고, 이는 고독으로 이어지곤 한다. 「독거」는 이러한 사회적 현실에 대한 깊은 통찰을 보여주며, 고독과 외로움에 대한 예민한 감수성을 자극한다. 결국 이 작품은 고독을 넘어서 자신과의 진지한 대화를 촉구하고, 더 나아가 타인과의 소통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다시금 일깨워준다. 시인은 고독을 넘어서, 둘만이 존재하는 「무인도」를 향한다.






아무도 없는 곳온라인 카지노 게임 단둘이 살고 싶었지

꿈을 이뤘는데
왜 이리도 한숨만 나오는 걸까
-「무인도」 전문

「무인도」는 물 위 바위에 앉아 있는 두 마리 새를 디지털 영상으로 순간 포착하여, 이를 ‘무인도’로 연동시켜 진술하고 있다. 인간은 소우주에 비유할 수 있다. 공허함이 내재된 소우주이다. 군중 속에서도 고독을 느낄 수 있는 존재가 인간이다. 인간의 내면 깊숙한 곳에서 느끼는 외로움과 자아 탐색에 관한 디카시이다. 인용된 작품은 현대인의 고독과 그로 인한 갈등을 진지하게 탐구하고 있다. ‘아무도 없는 곳온라인 카지노 게임 단둘이 살고 싶었지’라는 첫 문장은, 외부 세계의 압박이나 복잡함을 피하고자 하는 욕망을 드러낸다. 우리는 종종 세상의 소음과 기대에서 벗어나고 싶어 하며, 그리하여 ‘무인도’ 같은 고립된 공간에서의 평화를 상상하기도 한다. 하지만 ‘꿈을 이뤘는데 왜 이리도 한숨만 나오는 걸까’라는 시적 문장은 그러한 고립이 결코 이상적이지 않음을 깨닫게 한다. 시적 화자는 꿈을 이룬 것처럼 보이지만, 그 꿈이 주었던 기대와는 달리 그 안에서 느끼는 공허함과 불안감이 커지기만 함을 피력한다. 이는 우리가 때때로 소망하는 자유와 고독이 실제로는 심리적 부담이나 불안으로 바뀔 수 있다는 중요한 메시지를 전한다. 이 작품은 물리적인 고립이 아닌, 정신적 고립의 문제를 다루고 있다. 독자에게 우리가 진정으로 추구해야 할 것은 단순한 외적 고독이 아니라, 자신과의 깊은 소통과 평화라는 것을 일깨운다. 고독 속에서 얻은 자유가 결국 자기 자신과 마주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지만, 그로 인해 발생하는 내면의 혼란과 갈등도 피할 수 없다는 점을 그려낸다. 작품은 끝내 고독을 완전히 긍정적인 것으로 그려내지 않고, 그 속에서 마주하는 현실의 씁쓸함과 괴로움을 정직하게 진술한다. 외로움과 고독, 그리고 그것을 향한 욕망이 결국은 우리가 스스로 직면해야 할 감정임을 보여주며, 우리의 내면과 삶을 다시 한번 돌아보게 만든다.
(전반부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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