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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옫아 Mar 26. 2025

정한아 <3월의 마치, 연기(演技)의 연기(煙氣)

<달의 바다와 <친밀한 이방인그리고 <3월의 마치의 '거짓'

*볼드처리한 부분은 책 속 구절입니다.

*정한아 작가님 대신 정한아 작가로 표기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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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한아 작가를 처음 알게 된 것은 <달의 바다를 통해서였다.

<달의 바다는 고등학교 3학년이던 내게 묘한 위로가 되어준 책인데,

어쩌면 위로를 넘어서 정서적인 공명을 만났던 것 같다.

현실과 환상을 오가는 이 책은 힘든 현실을 견디게 하는 상상력은 위로가 될 수 있음을 알려주었고,

감정에 대한 공감과 함께 정답이 없는 세계의 아름다움을 오롯이 보여주었다.

특히 기대하던 세계, 모두가 바라던 세계에 진입하지 않더라도 충분히 괜찮다는 위안을 받을 수 있었다.


꿈꿔왔던 것에 가까이 가본 적 있어요? 그건 사실 끔찍하리만치 실망스러운 일이에요.

희미하게 반짝거렸던 것들이 주름과 악취로 번들거리면서 또렷하게 다가온다면 누군들 절망하지 않겠어요. 세상은 언제나 내가 그린 그림보다 멋이 떨어지죠. 현실이 기대하는 것과 다르다는 것을 일찍 인정하지 않으면 사는 것은 상처의 연속일 거에요. 나중에 꿈꿨던 일조차 머쓱해지고 말걸요. /<달의 바다


그 때부터 진짜 이야기는 시작되는 거죠.

진짜 이야기는 긍정으로부터 시작된다고, 언제나 엄마가 말씀해주셨잖아요? / <달의 바다


이 책으로 인해 나는 큰 힘을 받을 수 있었고, 운명처럼 정한아 작가의 모교이자 같은 학과에 입학했다.


정한아 작가의 수업을 직접 들을 수 있는 기회가 충분히 있었지만,

팬심은 팬심으로 잘 남겨두고 싶어서-실은 소설 쓰기에 재능이 없음을 충분히 알았기에-책에 사인 받는 것으로 충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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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뒤로도 작가의 책들을 줄줄이 구입해서 읽곤 했는데, 특히 <친밀한 이방인이 드라마 <안나로 새로운 옷을 입고 많은 이들에게 사랑 받을 땐 내가 다 우쭐해지곤 했다, 그럴 줄 알았어! 하며.

또 최근엔 아기를 낳고 키우면서 읽은 <술과 바닐라를 읽으면서 섬뜩하면서도 쌉싸름한 -갓 엄마가 된 사람들만이 공감할 수 있는- 감정을 공유 받기도 했다.


그렇게 3월이 되었고, 따끈따끈한 정한아 작가의 신작 <3월의 카지노 쿠폰를 구입했다.

<3월의 카지노 쿠폰 내용은 이러하다. 유명한 연예인의 삶을 살았던 60살 이카지노 쿠폰는 알츠하이머 전 단계를 의심 받고, 추천 받은 병원을 다니기 시작한다. 그러면서 그녀 앞에 이상한 일들이 일어난다. 그녀가 새롭게 살게 된 아파트 '라파트멍'에서 '노아'라는 청년을 만나며 각 층마다가 과거의 자신(예를 들어 43층엔 43살의 이카지노 쿠폰가 산다)들을 마주하며, 기억 저 너머에 숨겨진 아픔들을 직면하며 잃어버렸던 기억들을 찾아간다.

그렇게 그녀는 자신이 걸어온 지난 시간들을 제대로 마주하게 되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그동안 정한아 작가의 책들을 읽으면서 개인적으로 느낀 바가 하나 있다.

그것은 그녀가 쓴 이야기들을 관통하는 주제이자 그녀가 구축한 문학 세계관 속 키워드는 '거짓'이라는 점이다.

그리고 <달의 바다는 가벼운 느낌의 거짓이라면, <친밀한 이방인은 조금 더 깊은 농도의 거짓이었다.


그 시절에 나는 거짓말이 너무 쉬워서 세상이 이렇게 내 맘대로 움직여도 되는 건가 심각하게 고민하곤 했다. / <달의 바다


즐거움을 위해서. 만약에 우리가 원치 않는 인생을 살아갈 수밖에 없는 거라면, 그런 작은 위안도 누리지 못할 이유는 없잖니. / <달의 바다


우리가 질서를 연기하는 한,진짜 삶은 아무도 눈치채지 못한다.그렇다면 진짜 삶은 어디 있는가?그것은 인생의 마지막에서야 밝혀질 대목이다.모든 걸 다 잃어버린 후,페허가 된 길목에서. / <친밀한 이방인


카지노 쿠폰 막간에 무대 뒤에서 대기하는 배우들처럼 우리도 잠시 서로의 역할에서 벗어날 수 있었죠.어마어마한 양의 대본과 지시문에서 벗어난 느낌이었어요.그곳에서는 거짓말이 필요없었어요. / <친밀한 이방인


삶에 대한 긍정을 위한 아주 작고 사소한 거짓말, 그것은 충분히 면죄부임을 그려냈던 <달의 바다와 달리 <친밀한 이방인은 그 거짓말이 얼마나 쉽게 일상이 되고, 그 일상이 얼마나 조용히 인간을 타인으로 만들어가는지를 차갑게 응시한다.

그러니까<달의 바다 가 삶을 지탱하기 위한 작고 순한 거짓말에 따뜻한 눈길을 보낸다면, <친밀한 이방인은 그 거짓이 만들어낸 균열과 소외를 차갑게 응시한다. 그렇다면 <3월의 마치는?


하지만 무엇보다 좋은 것은 연기였다.

다른 사람이 되는 것,

자기 자신에게서 벗어나는 것,

사람들의 눈을 속이는 것. / <3월의 카지노 쿠폰


책의거짓은 '연기(演技)'의 옷을 입고 그려진다.진실을 감추기 위한 연기가 아니라, 진실을 감당할 수 없을 때 우리가 선택하는 방식으로서의 연기. 결국 <3월의 마치는 그 연기를 벗어내고, 있는 그대로의 자기 자신을 마주하는 순간의 고요한 용기를 이야기한다.


그러나 연기(演技)는 연기(煙氣)가 된다. 붙잡으려 할수록 멀어지는 안개처럼, 마치, 그녀가 몸에 입었던 역할은 사라지고, 남겨진 건 실체 없는 공간, 그리고 지워질 수 없는 감정의 잔상이다. 라파트멍이 실은 신기루였듯, 자신을 보호하기 위한 모든 연기는 결국 스스로를 숨기게 만든 허상이었음을, 그는 비로소 깨닫게 된다. 그렇게 <3월의 마치는 거짓과 연기의 허상을 통과해, 진실의 자리로 조용히 걸어가는 이야기로 그려진다.


자신이 누군지를 잊어버리는 쪽과 자신이 누군지를 아는 쪽.

어느 쪽이나 지옥이라면, 누구나 익숙한 지옥을 선택했다. / <3월의 카지노 쿠폰


카지노 쿠폰, 그녀는 너무도 오래 연기해왔다. 이때의 연기는演技이자延期이다.진짜 감정의 출현을 미루고, 마주해야 할 진실을 유예한 채 살아온 시간들. 그녀가 입은 표정과 말투, 행동 하나하나는 살아남기 위해 택한 역할이었지만, 동시에 삶의 진심을 끊임없이 뒤로 미룬 선택이었다.

결국 <3월의 마치는 그 오랜 연기의 끝에서,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지금 여기’의 나를 마주하는 순간을 섬세하게 포착해낸다. 그녀의 나이는 어느새 눈을 뜨고 보니,70세. 어쩌면이미 너무 늦었지만 제때 잘 도착한 것일지도.


그렇게 정한아의 작품 속 인물들(<친밀한 이방인, <달의 바다, <3월의 마치)은 거짓과 연기 그 사이를 오간다. 어쩌면 거짓과 연기는 한 몸일지도 모르니까.

삶을 견디기 위해, 상처를 숨기기 위해, 진실을 조금 더 미루기 위해—그들은 거짓을 입고 연기를 선택하며 살아간다. 그리고 그 연기의 시간은 곧 자신의 진짜 목소리를 유예하는 시간이 된다.

하지만 정한아는 말한다. 그 유예의 시간조차 삶의 일부였으며, 결국엔 그 시간을 지나야만 비로소 ‘나’로 돌아올 수 있다고. 아니, 어쩌면 그 연기조차 너였고, 그 거짓조차 진실이었다고.


마지막으로 '카지노 쿠폰'에 대한 이야기를 조금 더 하고 싶다. <3월의 카지노 쿠폰의 '카지노 쿠폰'는 꽤 많은 뜻을 품고 있다.

3월에 태어나서 '마치'인 줄 알았던 그녀의 이름 뜻조차 거짓이었다.

12월생인 그녀였지만, 3월까지 끝끝내 잘 살아남았기에 '카지노 쿠폰'라는 이름이 그녀에게 갔다.

3월은 꽃샘추위와 함께 매화가 만발하는 시기이다.그렇게 3월은 계절이 겨울과 봄이 공존하는, 그러나 이윽고 겨울에서 봄으로 바뀌는 경계의 시기이라는 점이 소설 속 해피엔딩을 암시하는 것 같다.


그리고 개인적인 생각을 더 하나 꺼내놓자면 우리말에서 부사 '마치'는 '거의 비슷하게'라는 뜻을 갖고 있다. 이는 연기(演技)의 속성과도 맞닿아있다.

진짜는 아니지만 진짜처럼 보이게 하는 것, 완벽한 진실은 아니지만 진실처럼 느껴지게 하는 것—그게 바로 연기의 본질이자, ‘마치’라는 부사가 지닌 언어적 속임수다. 결국 그녀의 삶도 그러했다. 진실을 흉내 낸 시간들, 진심에 가까워지려는 연기들로 이루어진 나날들.

그리고 그 모든 ‘카지노 쿠폰’들의 끝에서 카지노 쿠폰, 그녀는 더 이상 흉내 내지 않아도 되는 삶, 진짜 자신으로 존재할 수 있는 봄을 맞이하게 된다.

그렇게마치에겐거짓은때로 삶을 지키기 위한 장치였고, 연기는 그 삶을 버텨내기 위한 방식이었다.

그래서 <3월의 카지노 쿠폰는진짜와 닮은 모든 ‘카지노 쿠폰’의 시간 끝에서 비로소 진짜 자신에게 닿아가는 여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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