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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꿈꾸는 유목민 Apr 15. 2025

뉴질랜드 남섬, 엄마와 아이 둘이 떠나는 온라인 카지노 게임 여행

뒤죽박죽 세계여행기


자신이 처한 상황을 묘사할 때 쓰는 언어에 따라 실제로 우리가 그 상황을 보고, 경험하고, 참여하는 방식이 달라진다.언어는 삶의 크고 작은 문제를 직면하는 방식에 이루 말할 수 없이 큰 영향을 미친다. (시작의 기술/게리비숍/p18)



'아악~!'

캠핑카 여행 첫날 새벽 마음속으로 소리를 지르고야 말았다. 분명히 날짜를 확인한 것 같은데...나는 캠핑카를 금요일 4월 11일 오전 8시 30분에 픽업했어야 했다. 그런데 오늘은 토요일 4월 12일이다. 4월 11일이 토요일인줄 알았다. 시계를 보니 새벽 6시 30분이다. Jucy Camping 회사는 오전 8시 30분에 문을 열고, 캠핑카 픽업을 위해 아드리넷님이 캠핑카 회사로 9시에 데려다 주기로 했다.

캠핑카 회사 입장에서는 내가 노쇼한건데, 딱히 이메일도, 전화도 없었다. 보증금만 은행에서 빼가면 다 인건가.. 싶었다. 기다리지 못하고 오전 7시 쯤 캠핑카 회사에 전화를 했더니 다행히 오늘 픽업을 오면된다고 한다. 아드리넷님이 빨리 와 주셔서 오전 8시 50분에 캠핑카 회사에 도착할 수 있었다. 앞에 대기하는 인원이 있었는데 캠핑카 직원인듯한 할아버지가 오시더니 아이에게 그림 그리기를 좋아하냐고 물었다. 잠시 아이를 데리고 가더니 유치원생에게 필요할 것 같은 그림도구를 챙겨주셨다. 그래도 감사한 일이었다. 회사에 구비된 커피를 마시면서 아이에게도 따뜻한 우유를 뽑아주었다. 그림 도구를 받아 서로 감사한 미소를 짓자마자 아이가 우유를 실수로 바닥에 쏟아버렸다.'투 스트라이크!'마음속으로 불안감이 스믈스믈 올라왔다.


사용하지도 않은 하루치 캠핑 비용을 내고, 캠핑카 사용법을 배웠다. 봉고를 운전해본적은 없지만 Jucy Chaser는 어렵지 않게 운전할 수 있을 듯 했다. 지금까지 뒷좌석에만 타던 아이를 앞자리 조수석에 타라고 했더니 좋아했다. 시동을 걸고 도로에 나가는 순간 깨달았다. '아... 괜히 캠핑카를 빌렸나' 비행기가 바로 옆에서 날아가는 듯 한 엄청난 소음이었다.


짐을 싸는 일은 시뮬레이션을 필요로 한다. 눈앞에는 머릿속처럼 복잡한 짐들이 놓여있었다. 집으로 캠핑카를 가져와서 짐을 캠핑카에 넣기 시작했다. 마지막까지 머릿속으로 넣고 빼고를 실제로 넣고 빼고를 반복하다 전기밥솥이 남았다. 2-3인용 밥솥이지만 가져가면 왠지 오버일 것 같은 생각에 13일간 먹을 음식을 머릿속에서 스캔했다. 햇반이 6개 있으니 전기밥솥은 가져가지 않기로 했다. 캠핑카안에 후라이팬과 냄비가 있었지만 집에 있는 식기와 요리기구들을 마지막 쇼핑백에 우겨넣었다.

드디어 출발이다. 집에 있는 주차장에서 출발해 좌회전하는 순간 일렬로 놓여져있는 쓰레기통 하나가 캠핑카와 벽 사이에 끼어 따라왔다. 차에서 내려 간신히 쓰레기통을 빼고 차를 보니 약간의 스크레치가 있지만 눈의 띄일 정도는 아니다. '쓰리 스트라이크!', '나 괜찮겠지?'라고 마음의 소리가 들려왔지만 아이에게는 내색하지 않았다. 다행히 잔뜩 받아놓은 오디오북을 틀 수 있게 블루투스가 연결되는 캠핑카였다. 엔진소리가 미친듯이 크긴했지만 볼륨을 높이니 들어줄 정도는 되어서 다행이었다. 긴 시간동안 아이와 지루하지 않게 갈 수 있다.


아이는 왠지 기운이 없어보였다. 알레르기성 비염이 계속 되어서 밤에 코가 막혀 거의 잠을 이루지 못했고 아침부터 콧물이 주루룩 흘러내렸기 때문일까. 아침을 사과로 때워서 일까? 좋아하는 과자를 한 봉지 뜯으라고해서 함께 먹고 쉬지않고 캠핑카를 운전했다. 슬슬 배가 고프기 시작했는데 아이도 옆에서 배가 고프다고 했다. 점심은 쉼터에서 라면을 끓여먹기로 계획했기에 쉼터 사인을 찾아 헤매었는데 도통 나타나지 않았다. 드디어 쉼터가 보였는데 갑자기 맞은 편에 차들의 행렬이 이어지고 내 뒤에도 따라오는 차들이 줄을 서 있다. 그냥 지나쳤다. 계속 달리다가 어느 마을에 들어왔는데 그곳 쉼터도 지나쳤다. 초초해질 무렵에 왼편에 쉼터 사인이 보였고, 그리로 들어갔다. 커다란 나무 아래있는 피크닉 테이블이 프라이빗한 멋진 곳이었다. 캠핑오기 전 집앞에 좁은 마당에서 삼겹살과 라면 끓여먹는 연습을 했기에 준비가 어색하지 않았다. 브루스타를 켜고 라면을 넣고, 이틀 전 훠궈에 넣어먹고 남은 배추로 담근 겉저리를 넣어둔 타파통을 꺼내는 순간, 뭔가 잘못되었다는 걸 직감했다. 담아놓은 겉저리 통을 가져온게 아니라 한달도 더 된 푹 쉰 김치통이 놓여있었다.

"아악!" 아이 앞에서 소리를 질렀다.'포 스트라이크!'속상해 하는 나에게 아이가 한마디 한다. "이것도 맛있어보이는구만. 안가져온 것보다는 낫네"

뉴질랜드 쉼터 나무그늘에서 끓여먹는 달걀 풀고 꼬들꼬들한 면이 살아 있는 라면에서 정말 말 그대로 "꿀맛"이 났다. 그래. 괜찮아. 이정도는 되어야 여행이지.


하지만 운전하는 내내 마음속으로 부정의 마음이 일었다. 그냥 집에 있는 승용차로 다녔으면 숙박비만 들었을텐데, 괜히 캠핑카를 빌려서 고생하나 싶었다. 마음에는 한 사람에 대한 생각도 들어있었다. 그 사람은 아이와 둘이 캠핑카 여행을 다닐꺼라고 하는 말을 듣자마자, "둘이 가는데 굳이 캠핑카를 빌릴 필요가 있을까요?"라고 했다. 주변에서 그런식의 판단과 충고를 하는 사람이 거의 없어져 오랜만에 신선한 자극이 일었다. 말이란게 얼마나 중요한지 캠핑카 여행을 아이와 둘이 다닐 생각을 하던 마음에 부정적인 생각이 일기 시작했다. 질문이 나오자 다른 말로 화제를 바꾸었는데 그 사람이 다시 말을 꺼냈다. "둘이 여행가는데 왜 캠핑카로 여행가요? 그럴 필요가 없을 것 같은데요?" 그럴 땐 더 이상 개입을 하게 만들면 안된다. "제가 알아서 할게요."라고 말하고 대화는 끊겼다. 무례하다는 생각도 들었다. 이후에 캠핑카를 예약하려고 했을 때 그 사람의 말투가 귀에 멤돌며 스스로 의심하게 되었다. '그래, 둘이간다면 여행경비가 두배는 더 들게 캠핑카를 빌릴 필요가 없을지도 몰라', '남편 없이 아이와 캠핑카 여행을 하게 되면 내가 더 힘들어질지도 몰라' 그렇게 결론이 내려지자 마음에서 반발심이 일었다. 왠지 그 사람의 생각과 말대로 내가 움직이는 것 같아 더 싫었다. 하지만 이면에는 캠핑카가 너무 비싸서 다행이라는 생각도 있었다. 깨끗이 포기하면 되니까. 그냥 자차 운전을 하기로 결심했는데, 여전히 합리적인 가격에 빌릴 수 있는 캠핑카가 있었다. 손가락은 예약버튼을 눌렀고 나중에 알게 되었지만 급한 마음에 날짜를 잘못 예약했던 것이었다.


네 번의 스트라이크! 날짜를 잘못알아 하루치 캠핑카 비용을 날려버리고, 출발하자마자 사고를 낼뻔하고, 아이는 출발전 우유를 엎지르고, 다른 김치를 챙겨버리고... 액땜일까 전조일까. 별의 별 생각을 다하며 캠핑장에 도착했다.


뉴질랜드의 체인 캠핑장인 Top 10 캠핑장이었고 시설은 훌륭했다. 헝클어진 짐 대부분을 샤워실에 박아버리고 (유럽 캠핑카 여행때처럼 샤워실과 화장실은 쓰지 않기로 혼자 마음먹었다) 캠핑의자와 식탁을 잔디밭에 셋팅했다. 안심 스테이크와 아이가 좋아하는 마늘을 공용주방에서 구워 캠핑카 옆 테이블로 가져왔다. 노을이 내려앉고 있었고 와인과 스테이크는 환상적이었다. 맞다.. 이런 마음을 놓치고 있었구나. 캠핑카 여행은 그냥 자동차 여행보다 비싸고, 귀찮고, 분명 힘들다. 하지만 유럽 캠핑카여행을 떠올렸을때, 매일 저녁 캠핑카에서 북적대고, 개인적인 장소에서 아무거나 요리해 먹어도 맛있는 음식들과 와인을 마시다보면 몽글몽글해지는 그런 마음, 직접 경험해보지 않으면 느낄 수 없는 그런 마음이 있었다. 나에게 둘이 가는데 굳이 캠핑카를 빌려서 여행할 필요가 있겠다고 말한 사람은, 한번도 캠핑카여행을 해 본적이 없는 사람이었고, 혼자 캠핑카를 운전하지 못하는 사람이었다. 무엇보다 이런 마음을 모르는 사람이다. 그렇지.. 어떤 길을 경험해보지 않은 사람의 충고는 듣는게 아니라는 걸, 알고 있었으면서도 또 함정에 빠져들게 되는게 사람 마음일까. 이런 마음을 알아차리고 몸으로는 힘들더라도 마음으로는 평화로운 마음을 그대로 받아들이고 있는 중이다.


그런데'파이브 스트라이크!'를 외쳤으니, 칫솔치약을 포함해 세면용품을 챙기지 않았다. 없는 짐을 어디 있을까 찾는 것보다 그냥 다시 구입하기로 한다. 아이와 손을 잡고 걸어가는 밤길, 밤 하늘에는 달 무리와 별이 멋지게 박혀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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