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평론을 통해 많은 아픈 영혼들이 마음에 위로를 얻게 되길 바랍니다.
일본의 대문호 <엔도 슈사쿠에 대해 언젠가 한 번쯤 들어보신 기억이 있으실 것같습니다. 일본 문학을 사랑하는 분들이라면, 언젠가 스치듯 지나쳐버린 뿌연기억의 인물 중에 흐릿하게나마 그를 기억하실지도 모르겠습니다. '아 어디서 분명히 들어본 기억이 있는데.. 어디였지?'라고 희미하게나마 옅은 기억으로 장기 기억 창고에 저장되어 있는 이미지를 기억해 내실수도 있고요. 특별히 일본 문학에 꾸준한 관심을 가지고 있는 분이 있다면, 그의 여러 작품들에 대해 익히 수차례 접하고, 읽어본 경험을 가지고 있을 것입니다. 그는 1966년 이 작품을 발표 한 이후로 노벨 문학상의 유력한 수상 후보에 오르기도 했고, 실제 그의 작품의 깊이는 그 심연을 알아보기 어려울 정도로 깊다고 저 개인적으로 해석하고 있습니다.
'침묵'은 제 유년기에 가장 커다란 충격을 던져 준 대표적인 소설 작품이었습니다. 열다섯 살부터 소위 예수쟁이로 살아 가려 애쓰기 시작한 제게 있어 이 책은 가히 운명과 같은 충격을 던져 준 종이 위에 펼쳐진 저자와의 직접적인 만남이었습니다. '다이너마이트'의 위력을 넘어, '원자폭탄'과 같은 심대하면서도 파괴적인 위력으로 제 가슴속을 송두리째 뒤집어 놓은 작품이었습니다. 깊이 잠들어 있던 심장을 깨어 내어, 마구 뛰게 만든 어마어마한 에너지를 생성하는 심장 박동기와 같았습니다. 작가는 작품으로 말합니다. 이 작품으로 문장의 힘이 얼마나 대단한 것인지 어린 저는 처음으로 제대로 경험했습니다. 일본 여류 작가, 미우라 아야코의 작품 세계가 제 인격모체의 든든한 뿌리가 되었다면, 앤도 슈사쿠의 글은 제정신의모형을 이루는데 커다란 근간을 이루어 주었습니다. 비단 저뿐만 아니라 전 세계 많은 분들에게 매우 소구력 있게 글의 위대함을가감 없이 전달해 낸 책으로 정평이 나 있기도 합니다.
그의 노벨상 수상 실패 이후 여러 가지 갑론을박이 있을 정도로 세기의 관심을 모았던 작품이었던 이 침묵은 자연스럽게 제 인생 책이 되었습온라인 카지노 게임. 왜냐하면 실화를 바탕으로 쓰인 이 소설이 제게 매우 실제적이면서도 근본적인 질문을 던져 주었기 때문입니다. '그 상황 속의 나라면 나는 과연 어떤 선택을 했을까?라는질문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제 인생길 굽이 굽이를따라, 꽤 오랜 세월 따라와 주었기 때문이었습니다. 매우 긍정적인 의미로, 저를 한 단계 성장할 수 있도록 만들어 준 고마운 책이 되어 주었습니다. 고뇌하는 한 인간이 내릴 수 있는 선택지란 기대와 달리 그 폭이 그리 넓지 않을 수 있다는 사실을마치 그림 그리듯 너무도 생생하게 보여주었습니다.
이 소설은 한 마디로 '자신 인생의 전부인 신념에 대해 집요하게 묻고' 있습니다. 자기 의사와 관계없이 갑작스레 닥친 고난 앞에서 하나님의 오랜 침묵이라는 이름 하에, 자연스레 따라오는 인간적 연약함이 그대로 드러나는 상황들을 감추지 않습니다. 그 안에 놓인 여러 믿음 조각 사이의 균열과 갈등을 적나라하게 드러내고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나라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면 과거 선조들 역시 이 '침묵'의 상황에 놓여, 삶과 죽음이란 선택지 사이에서 하나의 선택을 분명히 해야만 했습니다. 후대에 들어서 숭고한 신앙으로 추앙되고 기려지는 거룩한 선택으로 기억되었지만, 당시 그 시대를 사는 사람들에게 있어서는 '삶과 죽음' 사이의 갈림길이었으며, 사랑하는 사람들과의 작별의 시간이기도 했고, 당장 견뎌야 하는 잔혹한 고문과 진배없는 고통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이라면 과연 어떤 선택을 하셨을까요? '침묵'을 읽어 보고 생각해 보시길 추천드립니다.
이제 페이지를 넘깁니다.
오늘 드러내고자 하는 주제를 조심스럽게 꺼내보려 합니다.
검은 수녀들 (Dark Nuns)
등장인물 :
유니아 수녀(송혜교),
미카엘라 수녀(전여빈),
문우진(희준),
바오로 신부(이진욱),
안드레아 신부(허준호),
효주 원(김국희)...
감독 : 권혁재
'검은 수녀들'은 송혜교 주연의 오컬트 혹은 공포 영화로 분류됩니다.다소 생소한 장르의 오컬트라는 뜻은 바로 초자연적이고 신비한 현상을 다루는 영화를 뜻합온라인 카지노 게임. 현대 과학으로는 설명이 되지 않는 초현실주의적이고, 초자연적이며, 초월적인 상황 속에서 인간이 그 상황에 대응하는 과정을 사실적으로 면밀하게 그려내는 듯한영화라고 할 수 있지요. 저 개인적으로는 어둠이 주로 배경이 되는 이와 비슷한 류의 공포 영화는 전혀 보지 않습니다 따라서 이런 오컬트류의 영화도 거의 본 기억이 없습니다. 그러나 한 인생의 아픔을 소재로 다룬 영화, 고통으로부터의 구원을 찾아가는 자유의 여정을 그리는 시나리오, 송혜교란 주연 배우가 이 영화의 주연이 되기로 선택한 이유가 분명히 있을 것 같아, 이 영화의 내용이 무엇인지 알고 싶어고심 끝에 영화표를 구매했습니다.가장 어려운 때를 지나고 있는 제게 선물로 안겨 주는 일종의 격려와같은 의미로서 영화표 한 장을 선물해 주었던 것입니다.
그 시작은 유니아 수녀 손에 들린 기름통 하나가 보이는장면부터 시작됩니다. 성수를 담은 것인지, 도대체 그 용도가 무엇인지 알 수 없는 어떤 액체를 가득 담은 모양의 기름통을 들고 수녀는 굳게 닫힌 철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갑니다. 이는 바로 부마자(의료적으로는 해리성 장애, 경계선 인격 장애의 복합적인 작용 현상으로 나타나는 질병)정신 분열증과 비슷한모습을 보이는희준이라는 한 인물을 향하고 있습니다. 영화의 시작부터 끝까지 유니아 수녀는 그 한 사람을 향해 구원의 손길을 내밉니다. 첫 등장부터 갖은 악을 쓰고 있는 희준을 향해 유니아 수녀는 전혀 당황하지 않는 기품 있는 모습으로 그를 정면으로 응시합니다. 그전에 가슴속에서 꺼낸 담배 한 개비를깊게 빨아들이는 것으로, 뭔가 깊은 속내를 드러내려는 시도는시작됩니다.
부마 현상은 쾌적한 환경과 상담, 약물 치료, 인지능력 향상훈련을 통해 해결될 수 있다고 믿는 의사 바오로 신부가 등장하면서, 부마 의식을 통해서만 어떤 이름 모를 악마로부터 한 개인을 자유하게 만들 수 있다고 믿는 유니아 수녀와의 첨예한 갈등이 영화 전반부를 지나며 대립적인 양상으로 점차적으로 큰 불꽃과 같이 점화됩니다.
영화의 사회, 문화, 역사적 맥락의 관점으로 비춰 보았을 때, 수녀들은 사실 가톨릭에서 주요 관심의 대상자는 아닌 것으로 표출됩니다. 여러 권위적인 신부들 사이에서 한 가녀린 수녀가 '부마 의식'을 거행해야 한다고 주장하지만 남성 위주의 질서 속에서 비주류 검은 수녀회에 속한 유니아 수녀는 보란 듯이 무시를 당합니다. 교구를 책임지고 있는 주교마저 그녀를 향한 일말의 인정은 없습니다. 따뜻한 시선을 나누지 않는 수도원 내의 차갑고 스산한 기운 속에서, 남녀 간의 갈등 양상은 시작부터 끝까지 첨예하게 대립합니다. 단순한 남녀의 대립이 아닌 중세 시대부터 고착화된 계급 구조의 일그러진 면으로써 등장합니다.
사랑의 그리스도, 예수의 정신과 반대되는 인간의 악한 면을 등장인물들을 통해 고스란히 드러내려는 의도였을까요?영화는 유니아 수녀의 굳은 결기를 보여주면서 그 서막을 조금씩 열기 시작합니다. 사실 실제 가톨릭에서 신부와 수녀의 관계는 영화에서 묘사한 것과 전혀 다른 맥락과 관계성을 오랫동안 유지하고 발전시켜 왔을 것입니다. 오히려 서로가 서로를 진정으로 위하고 돕는 관계로 지금까지 수 천년의 역사 가운데 든든한 두 기둥으로 가톨릭을 만들어왔다고 보는 편이 보다 정확할 것입니다.그러나 영화는 그릇된 인간성을 다수의 기득권 신부와 소수의 힘없는 비주류 수녀 사이의 대립 관계로 놓고 보여줍니다. 실제로 있을 수 있을 만한 현실적인 모습으로, 인간 사이에 적잖은 긴장 관계를 가감 없이 드러냅니다. 서로의 다른 생각을 표현하고 설득하는 과정에 있어, 존중을 기반으로 하는 건강한 논의 과정을 거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 이 작품은 공공연하게 드러내고 있습니다. 마치 작금의 우리 사회에 말을 거는 듯한 어두운 모습으로 시각적인 이미지를 통해 '존중과 연대, 화합'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를 드러내고자 함이 아니었을까요?모를 일입니다. 가톨릭 계의 반감을 살 수도 있을 만큼 극화해서 갈등 관계의 양상을 부정적으로 표현하여 보여준 것일지도 모르겠습니다.
12 형상으로 의심되는 악령에 사로 잡힌 희준은 유니아 수녀를 향해, 인간으로서 감히 입에 담을 수 없는 온갖 더러운 욕설을 퍼붓기를 전혀 주저하지 않습니다. "감히 겁도 없이 암캐가.."라는 짧은 대사 속에는 인간 심연 속에 고스란히 똬리를 틀고꼿꼿이 앉아 있는 어두운 실체가 실제로 있음을 순식간에 깨닫게 만듭니다.소름이 돋을 정도로 잔악한 욕설과 저주를 반복하는 그오묘한 표정이 그녀를 압도하려 듭니다.
"일단 좀 씻자"라는 무해한 말로 유니아 수녀는 그 악에 대해 자신의 방법대로 응수합니다.
머리에 손을 얹고 기도를 이어 나가는 유니아, 그녀의 기도에 맞서 "넌 결국 죽는다"라는 저주의 말로 재응수하는 악의 모습을 봅니다. 유니아는 단 한 가지 바람만 가지고 희준이를 살려내기로 작정했기 때문에 그 순간의 반응, 두려움과 공포를 자아내는 악령의 목소리를 듣는 것보다는 그 자신의 마음속에 이미 오랫동안 고통받는 한 영혼의 구원을 하겠다는 목적에 집중하는 모습을 보입온라인 카지노 게임. 그녀는 두려웠지만 그 두려움에 굴하지 않고 영화의 장면을 계속 씨실과 날실과 이어 붙여 오밀조밀하게 지어 나갑니다.
그녀는 일단 의연하게 대처합니다. 악령의 거짓 소리에 맞서, "뭐라고 하는 거야, 짜증 나게"라는 무미건조한 말투로 그 악령의 존재 자체를 부인하지않으면서도, 그의 능력에 대해서는 강력하게 부인합니다. 존재는 인정을 하지만, 그 존재의 쓸모는 없다는 것을 매우 강력한 어조로 드러냅니다. 예수의 이름 앞에 결국은 힘이 풀려 달아나 버릴 그 악령의 실체를 이미 파악하고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녀는 이미 숱한 '부마 의식'의 경험을 가진 전문인과 다름없이 화면에 비칩니다. 그에 반해 신부이지만 의학적인 지식 말고는 초자연적이고 초현실적인 상황에 대해 믿지 않으려고 하는 어떤 면에서 무지한 신부, 박형곤 바오로 신부(부마자를 부인하는 신부)가 그녀 전면에 갑자기 등장합니다. 그는 신부라는 1. 전통적인 권위와 2. 부인하기 어려운 의학적인 지식, 3. 그것으로부터 부여되는 또 다른 권위, 의사라는 이름에서 부여되는 강력한 권위를 가지고 유니아 수녀의 말에 전혀 동의하지 않습니다.
"부마라는 거 정말 존재하지 않는 걸까?.. 악의 존재는 선을 확인하기 위해서라는 말도 있잖아요."
어느 신부 의사와 수녀 간호사 간의 대화가 이어지면서 화면은 바뀝니다.
이때 미카엘라(박형곤 신부 제자)가 등장해 다음으로 이어질 상황들에 대한 불길한 예감을 드러내기 시작합니다. 한 나약한 인간이 오컬트나 미신에 기대어, 마치 사이비 교주들의 엉터리 교리들에서 드러나는 이야기와 같은 주장을 하고 있다고 다그치는 바오로 신부의 말에 맞서, 미카엘라와 유니아 수녀는 점점 자신들이 해야 하는 '부마 의식'을 향한 마음을 하나로 모으기 시작합니다. 그러나 바오로 신부가 건넨 책 제목처럼 빙의의 정신분석과 치료에 대한 의학적인 논문은 그 안에 담긴 질병에 대한 의료학적인 정의, 해석, 해결방법까지 말 그대로 희준을 구원할 수 있는 교과서와 같은 권위를 가지고, 그러한 시도를 애초부터 방해하려는 것처럼 보입니다. 다만 그 책에 쓰여 있는 바는실제로 어떠한 힘도 책 밖으로 꺼내지 못합니다.
유니아 수녀는 해방수녀회라는 조직에서 활동하는 수녀로서, 신부와 달리 서품을 받을 수 없는 태생적인 한계를 지니고 있습니다. 로마의 김범신 신부에게 연락해야 한다고 강하게 주장하는 유니아 수녀는 자신이 속해 있는 주교, 가장 최상위 권위자 앞에서 부마 의식을 거행할 수 있도록 재가해 달라는 요청을 거듭하고 있지만, 환영받지 못합니다. 이미 기성 문화에 완전히 젖어 있는 꼰대와 같은 신부들 앞에서 거절에 다시 거절을 당하는 꼴에 직면하고 맙니다. 그것도 수녀 자신이 아닌 허윤철 안드레아 신부의 도움 요청으로 시작된 이 의식이 마치 자신의 헛된 욕망인 것처럼 받아들여지는 거짓된 현실 속에서 분노하고 맙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물러서지 않습니다. 최고 권력자 주교에게 "부마자임에도 방관하는 것은 살인과 같습니다."라는 촌철살인과 같은 한 문장으로, 눈앞 신부들의 방관이 얼마나 커다란 부정적인 결과를 초래할 수 있는지를 사전에 경고합니다. 실제로 인간 역사에 여러 가지 사유로 인해 자신의 목숨을 끊어 버린 많은 아픈 사실들이 있었습니다. 거기에는 남녀노소의 여부를 불문하고 이루 헤아릴 수 없는 많은 이유들이 상존하여 존재해 왔습니다. 일부는 드러나고 대다수는 자살의 이유를 찾지 못한 채 말입니다. 자살 시도하는 아이들의 문제는 영화의 묘사처럼 소위 악령이 괴롭혀서 진행되는 경우도 일부 있겠지만, 그보다는 여러 환경적인 영향도가 훨씬 더 클 것입니다. 어쩌면 이 영화는 우리 시야의 사각지대에 놓인 그러한 이 시대의 아이들을 주목하여 시나리오를 그렸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신부와 수녀의 대립 양상에서 우리는 어떤 문제에 대한 두 가지 시선을 바라볼 수 있습니다. 원인이 무엇이든 그 원인을 특정해 내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는 사실과 함께 힘을 합쳐 수렁에 빠진 '한 사람'을 그 고통에서 구원해 내려는 시도가 얼마나 지난하고, 고통스러울 수 있는지, 동시에 그것이 얼마나 가치 있는 것인지를 알아보아야 한다는 사실을 말해줍니다.인간의 몸을 빌려서 지독한 악행을 저지르는 악마들을 12 형상이라고 부르는 '검은 수녀회'의 유니아 수녀의 외침처럼, 실제로 우리들이 종종 말하는 귀신에 씌어 그런 고통받는 사람들도 실제 한다고 사람들은 말합니다. 그러나 그보다는 우리의 무관심 속에서, 혹은 방관 가운데 고통받는 어려운 이웃들이 결국 달리 선택할 수 있는 선택권이 전혀 남아 있지 않아서, 죽음 밖에는 선택할 것이 없다는 우울의 병에 서서히 빠지면서, 아주 깊은 고통 속으로 점차적으로 침잠해 들어간다는 사실을 이 영화는 비유적으로 말하고 있습니다.
바로 며칠 전 뉴스에서 보도되었던 바와 마찬가지로 도움의 손길을 수차례 요청하였으나 결국 예산 부족으로 고독사한 50대 어느 남성의 이야기를 그냥 넘겨서는 안 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이 소식은 어쩌면 단 한 명의 유니아 수녀가 그의 곁에 없었기 때문은 아니었을까?라는 자문이 들게끔 만들었습니다. 물론 실상은 예산 부족의 문제였습니다만 민간과 정부의 선제적인 대처가 함께 있었다면, 그 한 사람은 지금도 꿋꿋이 살아가고 있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20대 초반에 홍대와 서울역 근처에서 만났던 수많은 노숙자 분들의 얼굴이 영화를 보는 내내 스치듯 지나갔습니다. 당시 그분들 만큼은 아니었지만 경제적으로 곤란을 겪고 있던 저도, 그분들에게 빵 몇 개 사서 건네 드리는 게 제가 할 수 있는 최대치였습니다. 생의 최전선, 가장 곤궁한 상황으로 밀려 난 누군가에게 있어 일반적인 무관심은 결국 죽음으로 가라는 표시일 수도 있다는 걸 그때 알게 되었습니다. 군을 제대하고 알게 된 자매가 있었습니다. 그 친구를 처음 알게 되었을 때는 몰랐지만, 점차적으로 그 자매를 이해하게 되면서, 그녀가 어떤 한 남성으로 인해 커다란 실의에 빠져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밤마다 술을 매일 마실 정도로 깊은 우울에 잠겨 있다는 걸 알 게 되었습니다. 그 자매는 제게 자주 전화를 걸어 죽고 싶다는 이야기를 했습니다. 그럴 때면, 전화통을 오래 붙잡고 이야기를 들어주거나 때로 심각한 어느 밤에는 제가 아는 다른 이성 선배를 데리고 그 집으로 찾아가, 문을 두드리고 설득을 해서, 죽지 않도록 하는 시간들이 필요했습니다. 다행스럽게도 그 자매는 결국 그 일을 잘 극복하여 가정을 이루게 되었습니다. 그때 깨닫게 되었던 것 같습니다. 슬픈 자, 죽음에 가까운 사람들에게는 단 한 사람이 필요할 수도 있다는 것을요..
영화 속 반전은 유니아 신부에게서 다시 시작됩니다. 유니아 신부는 영화 전반을 통해 종종 배 부위를 강하게 압박합니다. 통증이 올라와서였던 것 같습니다. 자신의 몸에 안 좋은 예후가 있을 것을 직감한 듯 그녀는 산부인과를 찾아가 의사에게 단도직입적으로 묻습니다. " 선생님 저 죽습니까?"라는 간결하지만, 자신의 모든 것이 담겨 있는 짧은 질문을 하는데 전혀 주저함을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녀는 자신의 구원보다는 고통받는 희준이를 살리는 것이 유일한 목적이 되어, 그녀를 계속 움직이게 하는 동인으로 이미 마음속에 자리하고 있음을 잘알고 있었습니다.
희준으로 인해 발생한 병원 살해 사건 이후 유니아 수녀는 하늘을 향해 외칩니다. "주 예수 이름으로 명하노니 너희는 악령은 당장 떠날지어다"라고 선포합니다. 보이지 않는 악령을 볼 수 있는 눈과 귀를 가진 그녀이기에, 그녀는 악의 존재가 또 다른 사람들을 잡아먹지 못하도록 물러가라는 강력한 경고장을 날립니다. 본인 스스로가 청각장애를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실제 귀로 들어야 하는 소리는 제대로 알아듣지 못했지만, 그녀는 마음으로 소리를 들을 줄 알았습니다. 그녀는 고통받는 한 영혼을 향한 고결한 사랑의 마음을 굳게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런 유니아 수녀는 미카엘라 수녀를 단 번에 알아봅니다. 그리고 이렇게 질문합니다. "너는 뭐야, 영이 보여? 들려?"
영화에서 타로 카드를 펼치는 미카엘라 수녀의 모습은 뭔가 전문적이면서도, 자신감이 바탕에 깔려 있는 듯한 인상을 줍니다. 분명한 확신 가운데 무언가를 결심하는 듯한 미카엘라도 처음과는 다르게 결국 유니아 수녀를 도와 희준이를 악령으로부터 구원하도록 자기 역할을 감당하겠다는 뜻을 내 비칩니다. 그녀의 원래 이름은 수영이 , 자기 자신이희준이와 같은 병을 똑같이 앓고 있었기에, 어린 희준이를 보면서 그녀는 아마도 과거의 자신을 생각했을 것입니다.
과거 수녀였지만 지금은 신내림을 받은 효원 보살을 찾아가는 유니아와 미카엘라 수녀는 그녀와 함께 영적인 세계를 논합니다. 의사이면서 수녀이기도 한 미카엘라는 수녀가 보살을 찾아간다는 것 자체가 불가한 일이라며 강하게 저항하지만 결국 영험한 그녀에게서 어쩌면 답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으로 끌려가듯, 유니아 수녀를 쫓아갑니다.
그러나 그녀는 묻습니다.
미카엘라 : "무당이요??"
유니아 : "남들 눈엔 너나 나나 무당이나 다 미친년들 맞지요"
미카엘라와 유니아의 대화로 이 모든 것들이 정리됩니다. 세 명의 여성들이 희준이라는 인물을 가운데 두고 관찰을 하고, 굿까지 진행하지만, 결국 이길 수 없다는 사실만 확인한 채 흩어지게 됩니다. 그러나 그 가운데서도 보살인 친구 무당은 유니아 수녀를 향해 뿌리내린 죽음의 그림자를 보고, 건강 검진을 권합니다.
희준이라는 한 사람을 살리기 위해, 자신은 죽어가고 있던 유니아 수녀는 자신의 삶과 희준의 삶을 맞바꾸는데 이견이 없는 상태로, 자신이 해나가야 할 일을 묵묵히 수행해 나갑니다.민속 종교와 가톨릭의 결합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유니아는 희준이를 살리기 위해 자신이 할 수 있는 모든 방법을 찾아 헤맸던 것입니다. 기꺼이 그렇게 한 것이었습니다. 결국 그렇게 희준이는 봉쇄 수도원으로 들어가, 희준이를 살리기 위해 바오로 신부가 시도한 것으로부터 다시 그 아이를 악령에서 구할 수 없다는 사실을 재확인한 채 아이를 데리고 나옵니다. 멀쩡히 달려있던 거대한 십자가가 떨어지면서 희준이를 덮치려고 하던 순간에 그녀는 자신의 몸을 던져 희준이를 보호합니다.
마치 예수가 인류를 위해 자기 자신을 십자가 제물로 쓰기에 망설임이 없었던 것처럼, 그녀가 보여주는 내면에 정신은 예수의 희생과 그 결을 같이 합니다. 악마는 그런 행위를 서슴지 않고 희준이라는 청소년을 보호하는 유니아에게 희준의 몸을 빌려 기괴한 목소리로 묻습니다.
"이 아이 몸이 그렇게 소중해? "
유니아에겐 희준은 자신의 몸과 바꿀 만큼 소중한 한 인생이었기 때문에 그녀의 대답은 망설임이 없는 행동으로 한결같이 나타납니다.성수를 맞고서야 정신이 돌아오는 희준이는 그저 자신이 죽고 싶다고 울부짖으며 도저히 벗어날 수 없는 악령의 손아귀에서 벗어나고 싶다는 의지를 재차 내 비칩니다.
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한 문장,
잘할 수 있어 우리!라는 한 문장이 온 공간을 가득 메우는 순간은 어쩌면 이 영화의 클라이맥스일지도 모르겠습니다.
희준은 흐느끼며 애원합니다.
유니아는 물러섬이 없는 사제였습니다. 비록 서품을 받을 수 없는 수녀였지만, 그녀는 신부가 해야 할 몫을 대신 감당하면서, 미카엘라에게 나지막하게 이렇게 말합니다.
"그냥 직면해.."
희생양을 상징하는 염소 이미지는 중세 시대부터 악마를 상징했다고 합니다. 그러나 유니아와 미카엘라는 보이는 형상에 집착하지 않고, 그 안에 진짜를 보라는 말로 영화를 보는 관객들로 하여금 많은 생각을 불러일으킵니다. 시간이 지날수록 힘이 강해지는 12 형상, 진짜 이름을 아직 몰라 계속 씨름해야만 하는 그 악한 존재 앞에서 수녀들은 있는 힘을 모두 모읍니다. 부마자를 구하기 위해 구마 행위를 해야 하는 상황에서 필요한 성물들을 로마 교황청에 요청하고 장미 십자회와 검은 수녀회가 합심하여 12 형상을 영원히 쫓아내는 계획을 세우는 것을 통해, 결국 공동체로 묶인 사람들의 힘은 크게 증폭되게 됩니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말고 악마를 제거하라."는 장미십자회의 간곡한 음성에 온몸과 마음을 합쳐 싸울 각오를 다지는 수녀들, 그녀들은 철저한 준비를 마치고 악령의 이름을 알아내고, 예수 이름으로 그를 쫓아낼 계획을 세웁니다. 향초를 켜고 한쪽에 앉아 무릎을 꿇고 기도하는 수녀들의 모습을 통해 악마와 천사들과의 싸움을 절정의 단계까지 밀고 올라갑니다.
끝끝내 악령과 대결하여 그의 이름을 알아낸 유니아 수녀는 <가미긴이라고 불리는 12 형상을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쫓아냅니다. 성부 성자 성령의 이름으로 기도하는 것에서 성인들까지 불러 모아 악마를 희준으로부터 쫓아내는 것으로 영화는 점차적으로 짙은 색의 마침표를 찍습니다. 악마는 최후의 순간까지 성경에서 나온 말씀을 그릇 인용합니다. 그는 주장합니다. 자신이 태초부터 있던 자라고 거짓말합니다. 그러나 성경에 따르면 악마는 태초부터 있지 않았습니다. 그는 그 이후에 지어졌으며 천사였지만, 그릇된 욕망으로 하나님의 지위를 넘보다 악마가 된 것입니다.
영화는 성당의 종을 3번 울리는 것으로 피날레를 장식합니다. 영원히 가미긴이 희준에게 가까이 다가설 수 없도록 유니아 수녀는 자신을 불 가운데 던지며, 악을 데리고 영원 속으로 잿더미가 되어 사라집니다. 그 마지막 순간까지 "더러운 영들아 당장 떠나가라"라고 기도하는 유니아, "심판을 잠시 멈추시고, 내 이웃을 구할 수 있는 지혜를 주소서"라고 기도하는 유니아, "구원의 은총을 베푸소서"라고 마지막 음성을 토하듯 꺼내는 유니아는 자신의 사명을 다하고 불 가운데서 사라집니다.
"제 위에 내리소서 , 저를 녹이시고 새롭게 하시어
이 모든 악들을 지옥 불구덩이에 던져 버리시어 당신으로 채우시어 도구로 써주소서 세상의 모든 창조물을 건드리지 못하게 하소서 부디 지켜 주소서"
그녀가 외친 마지막 기도문은 마치 십자가에서 인류의 구원을 위해 마지막 거친 숨을 몰아 쉬며 기도했던 예수 그리스도를 떠올리게 합니다.
검은 수녀들의 마지막 장면에서 송혜교는 바다 앞에 섭니다. 아마 그녀는 죽음으로 가는 길목에서 환상으로 들어가, 바다 앞 해변가로 도착합니다. 그곳에서 이전까지 실제로 꺼낼 수 없었던 이야기를 잔잔한 목소리로 고백합니다. 검은 수녀회의 수녀였지만 하얀 옷을 입고 나지막이 이렇게 말합니다.
유니아 수녀는 엔도 슈사쿠의 '침묵'의 대사를 인용하여 고통으로 점철된 인간사, 그 안에 숱하게 많은 인생들의 슬픔의 눈물이 마치 바닷물을 이룬 듯 분명한 목소리로 기도합니다. 실제 엔도 슈사쿠의 <침묵의 배경이 되는 일본 소토메 섬에서 볼 수 있는 침묵의 비에는 유니아 수녀, 송혜교가 읊조린 그 글귀가 그대로 적혀 있다고 합니다.
실화를 바탕으로 한 소설의 구절이 다시 영화로 재탄생되는 순간을 통해,
죽지만, 결국 다시 살아나는 인간의 소망을 그대로 담아 놓습니다.
유니아 수녀는 1983.12.10 ~2024.04.09까지 이 땅에 살아 있었다는 걸 영화의 끝자락은 아무 말 없이 서 있는 묘비를 통해 조용히 말합니다. 마치 보고 싶은 사람만 보란 듯이 그녀의 자취를 남깁니다. 마치 엔도 슈사쿠가 '침묵의 비'에 새겨 놓은 저 글귀가 여전히 우리 곁에 남아 있는 것처럼 말입니다. 이 영화는 단순히 오컬트 영화를 넘어섰다고 보고 싶습니다. 권혁재 감독이 추구했던 바와 저의 해석이 결을 같이 하는지는 모르겠지만, 이 작품은 인간의 심연 속에 고통을 드러내어, 치유하는 과정을 고스란히 담고 있습니다.그것은 결코 혼자 만의 작업으로 가능한 것은 아님을 말하고 있습니다. 종교를 통해사랑이라는 인류 보편적인 질서, 그것만이 어떠한 고통이든 치료할 수 있는 것이라고 작품은 시종일관 주장합니다. 가톨릭의 일부 역사 속의 단면을 보여줌으로써 실제 가능했을 수도 있는 서사를 그린 것도 인상적이었지만, 무엇보다 인상적인 부분은, "한 사람"을 향한 구원의 손길이 결국 자신의 죽음까지 불사한 또 다른 "한 사람"의 희생적인 사랑으로 드러났다는 점이었습니다.
우리는 주로 살아가면서 형식적인 면에 치우치는 경향이 있습니다. 물론 보기 좋은 떡이 먹기 좋다는 옛말이 있지만, 그 너머의 무엇이 분명히 존재하고 있음을 이 작품은 밝히 보여주고 있습니다. 공포 영화, 미스터리, 다크 판타지, 스릴러와 같은 장르로 구별될 수 있겠지만, 제가 보는 이 영화의 핵심은 "희생의 사랑, 곧 구원"을 향한 굳건한 결의이자 행동입니다. 자신과 피를 나누지도 않은 한 인간을 향한 보편적인 사랑을 보여주는 것으로, 우리 시대에 가장 흔하게 언급되는 사랑이 실제적으로는 그 어디에도 잘 보이지 않는다는 점을 꼬집어 말하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모두가 저마다의 사랑을 이야기하는 세상이지만, 진정한 의미의 사랑의 모습은 정말 어디에 있는 걸까요? 우리는 그 사랑에 대해 이제 깊이 생각해 볼 시간을 가져야 하지 않을까요?
사랑은 죽음조차이기는 힘이 있다는 것을 이 영화를 통해 보았습니다.
제가 말하고 싶은 것은 바로 이것입니다.
영화 <검은 수녀들 포스터, 제작 [영화사집], 출처 [출처 나무위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