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정과 수용
피부를 스치는 바람이 여전히 냉랭하던 이른 봄이었다. 갈맷빛을 찾아가는 나무들이 한들한들 흔들리는 모습이 그야말로 싱그러웠다. 전에 없이 은은하게 퍼지는 꽃향기는 성큼 봄이 다가왔음을 알리고 있었다. 이제 막 초등학교에 입학한 첫째는 이틀 만에 혼자 등하교를 하겠다고 선언했다. 아이는 괜찮을지 모르겠으나 엄마인 내가 느낄 불안함을 잠재우기 위해서는 시간이 더 필요했다. 그렇게 함께 등하교를 했던 시간은 단 2주였다. 엄마 없이 혼자 학교에 다니는 일 학년들이 많다며 자신에게도 기회를 달라고 했다. 믿어 보기로 했다. 자기 효능감이 높은 아이였기에 그러는 게 좋겠다 싶었다.
그러나 며칠 뒤부터 문제가 발생하기 시작했다. 집을 나선 지 꽤 오랜 시간이 흘렀음에도 아이알리미가 울리지 않았다. 마음속 깊은 곳에 작은 불안이 팽배해 있었다. 등굣길을 따라 걸으며 그곳 어딘가에 있을 아이를 찾아볼까 싶었다. 둘째의 등원 준비를 서둘렀다. 잠시 뒤 9시 5분, 그제서야 교문을 통과했다는 푸시가 떴다. 아찔했던 그 짧은 순간이 그 어느 때보다 길게 느껴졌다. 걷잡을 수 없이 커져만 가던 초조함과 두려움이 순식간에 사그라들었다.
귀가한 아이를 붙잡고 물었다. 어째서 등교 시간이 그리 오래 걸렸느냐고. 돌아오는 대답이 기가 막혔다. 개나리 꽃이 말을 걸어서 그냥 지날 수 없었다고 카지노 게임 사이트.자길 좀 봐달라고 카지노 게임 사이트고, 그래도 학교는 가야 하니 그리 오래 있지는 않았다고. 황당했지만 그녀라면 그럴 수 있다고 생각했다. 살짝 미소를 지으며 앞으로는 무슨 일이 있어도 늦지 않게 학교에 도착해야 한다고 신신당부했다.
그리고 며칠 후, 같은 상황이 또 반복되었다. 그날따라 늦잠을 자버린 둘째 등원에 온 정신을 쏟느라 첫째가 등교를 잘 마쳤는지 확인하지 못했다. 집으로 돌아와 설거지를 마친 뒤 휴대폰을 들여다보았다. 오전 9시 50분. 여태껏 아이알리미가 울리지 않았다. 간혹 오류가 나기도 하니 인식이 안 된 것일 수도 있다고 생각카지노 게임 사이트. 그러길 바랐는지도 모르겠다. 괜찮다며 스스로를 다독였지만 시간이 갈수록 괜찮지가 않았다. 불안함은 점점 몸집을 키워갔다. 두개골이 다 얼얼카지노 게임 사이트. 이대로는 안되겠다 싶어 담임 선생님에게 메시지를 보내기로 카지노 게임 사이트. '하이클래스' 앱 채팅방을 열고 텍스트를 누르려는 순간, 아이알리미가 울렸다.
OOO 학생이 9:57에 교문에서 인식되었습니다.
띠띠 띠띠띠-.
현관 비밀번호가 눌렸고 문이 열렸다. 잰걸음으로 복도를 지나 현관으로 달렸다. 이번에는 기필코 호되게 야단을 치겠노라 다짐카지노 게임 사이트. 인사도 생략한 채 곧장 지각한 이유를 물었다.
"오늘 1시간이나 지각했어. 대체 왜 그렇게 늦게 도착한 거야? 집에서는 일찍 나갔잖아."
"엄마, 미안. 어쩔 수 없는 이유가 있었어."
그럴듯한 변명이 있는 모양새였다. 일단 들어나 보자는 심정으로 물었다.
"그 이유가 뭔데?"
"무당벌레가 인도 위에 있었어. 사람들이 밟을까나무 위에 올려놓느라늦었어."
"그게 한 시간을 늦어야 했던 이유야?"
"무당벌레가 친구들을 소개해 줬어. 곤충들이 하나둘 나오더니 고맙다고 인사하는데 그냥 갈 수가 없었어. 친구들이 무슨 말을 했느냐면......"
얼마 전 보았던 마크 트웨인의 어린 시절이 떠올랐다. 그는 수업을 빼먹고 놀러 다니다가 강에 빠지기도 했고, 탐험한다며 동굴 속으로 들어가 길을 잃기도 카지노 게임 사이트.그때의 모험과 경험들이 훗날《톰 소여의 모험》속에서 생생하게 묘사되었다고 카지노 게임 사이트.일찍이 아버지를 여의고 제대로 배우지조차 못했던 그가 미국의 대문호가 될 수 있었던 건 낙천적인 성격과 강한 모험심 덕이 아니었을까.
아이가 끊임없는 상상을 펼쳐가며 창작 활동을 하기를 바라면서, 정작 상상의 나래를 펼쳐갈 수 있는 자유로운 환경은 만들어주지 못했다. 아이들의 성향과 성격이 다름에도 획일화된 교육 방식 아래 그들이 맞춰주기를 바라고 강요하지는 않았나.그저 아이를 그 자체로인정하고 받아들이는 일이 왜 그리 힘들었던가. 모순덩어리 엄마로 살아왔던 지난 시간들이 떠올라 참으로 부끄러웠다.
다음 날 저녁 식사를 마치고 그릇들을 치웠다. 어린아이 달래듯 담금 물 안에서 살살 흔들며 딸기를 씻어냈다. 테이블에 앉아 보던 책을 마저 읽고 있던 첫째 앞에 정성스럽게 씻은 발간 딸기를 내놨다. 그리고 어제 못 다했던 이야기를 이어갔다. 이전에도비슷한 경험이 여럿 있다고 카지노 게임 사이트. 인도 아래 달팽이가 시원찮게 기어가는 걸 보고 잔디 위로 옮겨 준 적도 있었고, 장대같이 퍼붓는 빗줄기에 지렁이들이 익사할까 나뭇가지로 건져낸 적도 있었다. 도움이 필요한 곳에 손을 내어줄 수 있는 용기와생명을 소중히 여길 줄 아는 마음이 참으로 예뻤다.당혹스러운 탓에 어제는 미처 하지 못했던 칭찬을 건넸다. 반짝반짝 빛나는 아이의 마음에게.
칭찬은 언제고 아이들을 움직이게 만들었다.설거지를 하는등 뒤에서 첫째가 나를 불렀다. 잠시 물을 잠그고 핸드 타월에 손을 닦은 뒤돌아보았다. 아이가 들고 있는 새하얀 도화지 위에는 거뭇한 글자 몇 개가 오밀조밀 모여 있었다.자세히 보니 동시였다.엄마와 대화를 나누며문득시상이떠올라 끄적거려 봤다고 카지노 게임 사이트.순수하고 깨끗한 아이의 마음이 온전히 느껴지는 그런 시였다.보는 것만으로도 온 마음이 맑아지는 기분이 들었다.
사연이 가득 담긴 그날의 동시는 전국 백일장 공모전에서 차상을 수상카지노 게임 사이트. 좋은 결과로 얻은 상장과 상금보다 아동문학 전문가들이 그 시의 가치를 인정해 줬다는 것에 크게 기뻤다.
너답게 그리고 나답게.
각자가 가진기질과 성향이 다르기에 아이에 맞는 육아 방식을 택하고 적용해야 한다는 것을 너무 늦지 않게 깨달았다.서로가 다름을 인정하고 이를 수용할 수 있을 때 비로소 각자가 가진 역량과 재능이 한껏 발휘될 수 있다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