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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앤가은 Mar 30. 2025

92년산 카지노 가입 쿠폰


1.

1992년 가을. 부산에서 작은 여자아이 하나가 태어났다. 마른 체구에 얼굴은 좁고 길쭉하다. 막 태어나 시뻘건 몸으로 포대에 쌓여 어미 곁에 놓인다."손가락 발가락 다 10개. 건강해요. 산모님 고생하셨어요."제왕절개를 하느라 마취에 들었다가 눈을 뜬 어미가 아이를 쳐다보고 한마디 한다. "애가 무슨... 카지노 가입 쿠폰 같네"그의 어미는 아이는 낳아 놓으면 뚝딱 다 예쁜 줄 알았더랬다. 막상 낳아놓고 보니 눈도 못 뜨고, 피부는 쭈글쭈글한 게, 갓 태어난 새끼는 그리 예쁘지 않다는 걸 실감한다. 감자 같던 첫째를 낳을 때 느꼈던 거지만 카지노 가입 쿠폰 같은 둘째를 보며 더 확신을 가진다.


고구마처럼 빨갛고 길쭉하고 작게 태어난 그 아이가 바로 나다. 감자를 낳은 지 4년째 되던 해에 고구마도 세상에 발을 들였다. 고구마를 조심스럽게 씻기는 어미의 어미가 한마디 한다. "아이고 얘는 크면 아주 예쁠 애다-" 어미는 그 말을 잘 믿지 못한다. 그 아이가 말을 하고 뛰어다닐 무렵 '그래 엄마 말이 맞을 수도 있겠어' 하고 생각한다. 막 태어난 아이를 보고 약간 실망했다면 본인의 출생 사진을 보면 마음이 놓인다고 했던가. 고구마는 커서 엄마가 해준 이 얘기를 기억한다. 그 고구마가 다시 새끼 고구마를 낳을 때쯤 이 이야기를 떠올릴 것이다. 그리고 물어볼 것이다."엄마, 얘도 크면 괜찮겠지?"



2.

4년 묵은 고구마가 드디어 유치원을 가는 날이다. 이제는 어미 아비 품을 떠나 비슷한 시기에 태어난 구황작물들을 잔뜩 만날 시간이다. 4살 때 살던 아파트 앞에는 붉은 벽돌로 지어진 신광 유치원이 있었다. 세원아파트 101동을 걸어 나와 어른 걸음으로 15걸음이면 입구에 도착할 만큼 넘어지면 코 닿을 거리에 있다. 그 짧은 거리를 엄마는 작은 고구마의 손을 잡고 유치원 입구까지 데려다주었다. 유치원에 가는 날이 익숙해질 때쯤, 어느 날은 엄마가 열 걸음에서 멈추고 나를 배웅했다. 어느 날은 다섯 5걸음까지, 어느 날은 아파트 입구, 그리고 어느 날은 우리 집 신발장 앞이었다.


고구마 엄마는 떨렸다고 했다. 저 작은 아이가 집 대문을 열고, 엘리베이터를 타고, 아파트 입구를 나와, 아이 걸음으로 30걸음이나 되는 그 길을 혼자 갈 수 있을까. 한동안은 베란다에 서서 계속 아래를 내려다봤다. 노란색 유치원 가방을 메고, 양 갈래를 하고, 분홍색 바지를 입고, 손바닥보다 작은 발로 열심히 세상을 배우러 가는 고구마를. 쟤가 어느 세월에 세상을 알려나 했다. 혼자 고구마를 유치원에 보내던 날 엄마는 기념으로 베란다에서 사진을 찍었다. 아이는 중간쯤 가다가 뒤를 돌아 4층 아파트 베란다에 나와있는 엄마를 올려다본다. 웃으며 손을 흔든다. "엄마- 나 갔다 올게!" 태어난 지 4년 째부터 고구마는 엄마 손을 놓는 연습을 했다.


하지만 그로부터 30년이 지난 지금. 32년 된 고구마는 여전히 엄마의 손을 빌려 반찬을 얻어먹는다. 30걸음이 아닌 30년을 수없이 엄마의 손을 놓는 연습을 했는데도 여전히 엄마 손이 필요한 고구마다. 그간 무수히도 엄마의 손을 잡고 중학교 교복도 맞추러 가고 대학교 수시 면접도 보러 갔다. 서울로 취업을 해 자취방을 구할 때도 엄마의 한 손에는 고구마의 짐이, 한 손에는 고구마의 손이 들려있었다. 결혼을 할 때도 엄마는 안 쓰고 안입고 차곡차곡 모은 돈을 고구마 손에 쥐여줬다. 장성한 고구마가 멀쩡한 직장을 지가 때려치워놓고 엉엉 울 때도 나보다 궁한 엄마는 "엄마가 너 사업 자금 좀 주랴-?" 했다.


아파트 4층 베란다에서 '너 혼자 잘 갈 수 있지-' 하며 환하게 손을 흔들던 엄마 덕분에. 나는 앞만 보며 걸을 수 있었다. 유치원도, 학교도, 알바도, 해외에도, 회사도, 결혼도 용감하게 했다. 나 이제는 진짜 못할 거 같애- 할 때도 너무 힘들면 집으로 오라던. 언제든 엄마 손잡아도 된다던 그 말에 늘 다시 일어섰다. 피부에 닿지 않아도 영원히 내 등을 밀어주고 있는 엄마의 손을 빽 삼아 고구마는 오늘도 씩씩하게 맨 주먹으로 집을 나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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