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주가 지나고
올해 초, 피터 엘보의 <글쓰기를 배우지 않기라는 책을 인상깊게 읽고 이를 반영한 글쓰기 무료 카지노 게임을 열었다. 그가 글쓰기를 배우지 않는 대신 제안한 것은 두 가지다. ‘무작정 쓰기’와 ‘교사 없는 글쓰기 무료 카지노 게임’.
무작정 쓰기의 핵심은 절대 멈추지 않는 것이다. 머리 속에 있는 걸 그냥 쓴다. 교사없는 글쓰기 무료 카지노 게임은 배움은 있지만 가르침은 없는 수평적 무료 카지노 게임이다. 피터 엘보는 말한다. “내가 보기에 학생들은 그들보다 나을 것 없는 동료들과 함께 글을 썼기 때문인지 글쓰는 솜씨가 눈에 띄게 발전했다.”
우리는 이것을 동시에 실행했다. 주중에는 네이버 밴드에 무작정 쓰기를 하고, 주말에는 교사 없는 글쓰기 무료 카지노 게임을 한다. 주중에는 타인의 시선을 신경쓰지 않고 ‘검열’이나 ‘멈춤’ 없이 그냥 쭉쭉 쓴다. 주말에는 퇴고를 거친 마감글을 쓰고, 친구들의 글 읽고 화상으로 피드백 한다.
교없모를 하는 시간 동안 나는 약 40개의 무작정 쓰기를 했고, 7편의 마감글을 썼고, 16시간의 온라인 무료 카지노 게임을 했고, 그보다 많은 시간동안 친구들의 글을 읽었고, 그보다 몇배의 시간을 들여 마감글을 짜내려고 머리를 싸맸다. 이 무료 카지노 게임을 글쓰기 해병대라고 부른 이유가 있다.
교없모 마지막 무료 카지노 게임을 앞두고 느낀 점은 다음과 같다. : 무작정 쓰기를 통해 글을 써내는 것에 부담이 덜어졌다. ‘글을 쓴다’는 것은 뭔가 대단해보이는 말이다. 하지만 그냥 ‘단어를 뱉는다’고 생각하면 부담이 없다. 한동안 나는 무작정 쓰기를 음성인식으로 하기도 했는데, 원리가 똑같다. 내뱉는대로, 말하는대로 쓰는 것. 물론 침을 잘 뱉는다고 해서 입에서 갑자기 삼다수가 나오지 않는다. 마감글을 쓰는 것은 여전히 어렵다. 하지만 ‘마감’이 꾸준히 있었다는 것, 덕분에 꾸역꾸역 글을 썼다는 것, 이 글에 대한 친구들의 다양한 의견을 들을 수 있다는 것이 글무료 카지노 게임의 장점이다.
이것보다 더 기억에 남는 것은 내 삶에 쏟아진 9명의 인생이다.
매주 9명의 친구들의 글을 읽는다. 우선 무작정 쓰기로 쏟아지는 삶의 파편들이 있다. 그리고 매주 마감글을 피드백하며 마주하는 사유들이 있다. 거의 글의 쓰나미, 삶의 홍수다. 이를 읽으며 나는 두 가지를 동시에 느낀다. 동일성과 차이를. 어떤 문장에 깊은 공감을 하면서도, 이 사람 자체는 나와 정말 완전히 다르구나- 한다. ‘대충 보기에 엇비슷해 보였던 우리들의 삶이 이렇게 화끈하게 다르구나.’ 우리는 화끈하게 다른 사람들의 글을 매주 공들여 읽고 나의 느낌을 그에게 전달해야만 한다.
글쓰기 무료 카지노 게임을 하면 글쓴이에게 도움이 되는 말을 해야 한다는 부담이 사로잡힐 때가 있다. 하지만 피터 엘보는 우리는 그냥 보통의 인간들이라는 것을 전제한다. 우리는 독자로서 그저 자신의 생각과 느낌을 전달하면 그만이다. 그들은 공정한 판단이나 결론, 조언을 제공하는 게 아니다. 독자는 “언뜻 보기엔 말도 안되는 의견을 진지하게 받아 들이고, 그 사람이 본 것을 나도 보려고 노력”해야 한다.
내게는 무료 카지노 게임을 하며 이게 가장 재미있는 부분이었다. 실제로 글무료 카지노 게임을 하면, 각자의 삶이 다른 것처럼, 글을 읽는 각자의 시각도 모두 다르다. 종종 독자가 타인의 글에 대해 피드백할 때, “저 사람은 잘 못 이해한거 아니야? 나와 너무 생각이 다른데”라는 생각이 들 때도 있다. 하지만 한번 더 생각해보면, 저 사람은 저사람의 위치/경험/생각/오늘의 기분 등에 따라 내게 보이지 않는것을 본 것이다. 나아가 “글을 저렇게 읽을 수 있구나”, “저 사람은 저렇게 보는 사람이구나”를 이해하게 된다. 어떤 글을 바라보는 다각적 시각을 조금씩 알게 된다.
글쓴이는 그 모든 독자의 반응을 통째로 받아들이면 된다. 내 글에 대해 독자의 생각이 분분하다면 그냥 그 상태로 끝내면 된다는 것을 배웠다. 어느 무료 카지노 게임이나 수업에서 합의에 이르고 싶다는 서둘러 정리하고 싶다는 충동이 생기기 마련이다. 피터 엘보가 말하는 교없모의 핵심은 절대 논쟁하지 않는 것이다. 무료 카지노 게임은 최대한의 차이를 이끌어내야지, 상황을 정리하거나 하나로 수렴해서는 안된다. 가장 문제적인 상황은 차이가 없을 때다.
시간이 갈수록 사람들은 자신의 느낌을 전달하는데 익숙해진다. 그리고 피드백을 ‘듣는 일’에도 익숙해진다. 타인의 말에, 타인의 존재에 숙련된다. 초반에는 특정 피드백에 너무 흔들릴 수 있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그 피드백에서 새로운 의미를 발견하게 되기도 한다. 언젠가 ‘긁혔던’ 그의 말이 결국 글을 쓰는데 새로운 돌파구가 되기도 하고, 글을 쓰는데 의지할 믿을 구석이 되기도 한다.
서로를 그저 들어주는 동안 우리는 몇번이나 오해와 이해를 반복한다. 누군가의 글이나 피드백에 다급하게 결론을 내리거나 충돌하려는 순간과 싸울 때, 새롭게 생겨나는 연대가 있다. 서로를 재단하고 논쟁하지 않고, “너는 그렇게 생각했구나”하고 바라볼 때 발견하는 우정 말이다. 우정은 서로를 참아주는 시간 속에서 발생한다. 그도 실은 나를 참고 있을 것이다.
이 ‘인내심’에 대해 피터엘보가 남긴 말이 있다.
이 무료 카지노 게임에 참여하는 동안 즐기는 법을 배우라. 다른 사람들을 더 이해하게 되는 과정을 좋아해야 한다. 타인의 눈을 통해서 세상을 보는 것은 유익한 일이다. 피드백을 주고 받는 과정을 놀이처럼 생각하고 즐겨보자. 그 무료 카지노 게임을 일주일에 한번 모여서 취미로 악기를 연주하는 음악 애호가들의 무료 카지노 게임이라 생각하면 어떨까.
우리는 각자 다른 악기를 연주하고 있다. 비단 글쓰기 무료 카지노 게임에만 국한되는 조언이 아니다. 저 사람은 그저 나와 다른 악기를 연주하는 사람이라는 것을 아는 일. “쟤 왜저래?”라고 하기보다, 그냥 저런 그의 생각까지 그냥 통째로 흡수해보는 일. 피터엘보는 내게 데일카네기 <인간관계론 뺨치는 관계서다.
교없모 첫 무료 카지노 게임에서 한 친구가 ‘알콜중독차 치료 무료 카지노 게임’같다고 얘기한 적 있다. 서로에게 연민과 공감을 느끼면서 각자의 삶을 응원하고 있다는 측면에서 일 것이다.
그때 나도 내가 좋아하는 단어 ‘자조 무료 카지노 게임’을 얘기했었다. ‘자조’란 스스로 돕다란 뜻이고, ’자조 무료 카지노 게임’이란 스스로 돕기 위해 모인 사람들이다. 자조무료 카지노 게임의 영문 명이 ‘Self help group’인 점은 그래서 좋다. 이건 역설적이지만 진실이다. 셀프로 자신을 돕기 위해서는 그룹이 필요하다는 말. 이건 타인이 나를 돕는다는 의미보다, 타인이 있을때 나를 더 잘 들여다볼 수 있다는 뜻인 것 같다.
‘교사 없는 글쓰기 무료 카지노 게임’도 ‘AA(Alcoholics Anonymous, 익명의 알콜중독자 무료 카지노 게임)’도 일종의 자조무료 카지노 게임이다. 해당 분야 전문가 혹은 교사 없이, 자발적으로 참여한 사람들끼리 결국 자신을 돌아보고 스스로를 돕는 것이다. 다양한 정체성이 혼재된 친구들 사이에서 나는 세상에서 나의 위치를 더 잘 상상할 수 있게 된다.
‘AA’의 설립자 중 한 사람인 빌 윌슨은 AA를 두고 ‘좋은 무정부 상태’라고 말했다. 이는 AA가 전통적인 위계 질서나 권위 없이, 각 구성원들이 자발적으로 운영하며 서로 도움을 주고받는 자율적인 공동체라는 것을 의미한다. ‘교사 없는 글쓰기 무료 카지노 게임’도 마찬가지로 ‘좋은 무정부 상태’를 추구한다. 물론 이끔이가 있긴 하지만, 기본적으로 전문가 없이 돌아가는 이 무료 카지노 게임은 함께 꾸려나가야 한다.
피터 엘보는 성공적인 글쓰기 무료 카지노 게임은 오랜 기간 걸쳐 여러번의 ‘작은 돌파구’가 있다고 말한다. 그런 돌파구가 쌓이면 본격적으로 글에 대한 감상과 경험을 더 깊이 공유하게 된다는 것이다. 교없모를 진행하는 과정에서도 나는 이런 작은 돌파구를 몇 번 마주했다. 그건 어떤 배짱있는 사람의 말이기도 했고, 친구들의 영리한 제안이기도 했고, 전에 없던 새로운 방식을 시도하는 글이기도 했다. 그런 것들은 서로에게 영향을 주며 이 무료 카지노 게임을 변화시킨다. 그렇게 8주간 타인의 글을 읽고 피드백하는 과정은 엄청난 시간과 에너지가 드는 일이다. 이런 헌신은 이 무료 카지노 게임을 함께 같이 만들어가는 원동력이 된다.
어떤 우정은 무정부적이다.관계 아나키(RA, Relationship Anarchy)는 2006년 안디 노드그렌(andie nordgren)에 의해 처음 만들어진 용어로 관계에 순위를 매기고 비교하는 것을 거부하는 것을 의미한다. 노드그렌은 “어떤 관계를 진짜라고 말하기 위해 한 사람을 우선(primary)으로 지정할 필요는 없다”고 말한다. 각 관계는 독립적이고 자율적인 개인들 간의 관계다.
모든 관계가 이럴 수 없지만, 적어도 이 작은/제한된 실험공동체 안에서 우리는 아나키적 우정을 실험하고 있다. 위계나 권위 없이, 서로 동등한 구성원으로서 도움을 주고받는 일. 이 독립적이고 자율적인 관계 속에서 나는 내 위치성과 정체성에 대해 더 잘 인지하게 된다. 이 ‘차이의 조직'을 표준집단 삼아 나는 내가 세상에서 어디쯤 있는지 더 잘 상상하게 된다.
‘교사 없는 글쓰기 무료 카지노 게임’은 세상에서 내가 어디에 있는지, 그리고 혼자가 아니라는 사실을 알려준다. 그러나 ‘글쓰기’ 자체는 아주 고독한 일이다.
지난 7주간 내 모습을 돌이켜보면.. 읽고-생각하고-쓰고-말하고-영향을 받고-다시 홀로 쓰고 읽고의 반복이었다. 함께 읽고 말하는 순간에는 내가 어디에 있는지 명확히 알 수 있지만, 마감글을 쓰기 위해 나를 마주하는 고독한 시간 속에서 나는 오히려 자아가 흐려지는 것을 발견했다. 세상에 존재한다는 느낌과 완전히 혼자라는 느낌이 교차된다.
이는 숨바꼭질을 닮았다. 아키코 부시의 <존재하기 위해 사라지는법의 첫번째 챕터는 숨바꼭질에 대한 것이다. 우리는 유년 시절부터 숨바꼭질에 익숙하다. 심리학자 앨리슨 카퍼는 말한다. “우리 모두 때때로 숨을 필요가 있다. 마음의 개인적인 공간으로 들어가 자신의 생각을 가늠해야 한다.”
글쓰기란 결국 홀로 자신을 마주하는 일이다. 먼저 아무도 없는 곳으로 숨어야 한다. 올해 들어 가장 행복했던 순간이 있었다. 일기장에 1월 31일이라고 적어둔 날. 다섯번째 무료 카지노 게임을 앞둔 날이었다. 정오를 지난 시간 홀로 거실에서 책을 읽고 무슨 글을 쓸지 고민하고 있던 시간에, 나는 고개를 돌려 창밖을 봤다.
눈이 내리고 있었다. 그때는 이 세상에 나 밖에 없다는 느낌이 든다. 조용하게 쌓이는 함박눈, 세상은 조용하고, 나와 눈만이 있다. 그럴 때는 나 자신이 세상에서 때때로 흐려진다. 글을 쓰고 얘기하는 것은 세상에서 나의 위치를 헤아리는 일이지만, 글을 쓸 시간을 마련하고 홀로 나를 마주하는 시간은 나의 위치와 존재가 흐려지는 일이다. 그저 이 세상 속에 숨쉬고 있다는 것만을 감각하면서, 내가 그렇게 중요하지 않다는 사실을 느끼며.
아키코 부시의 책에서 소개하는 ‘자르뎅 시크레(jardin secret, 비밀정원)’의 개념에 빠진 것도 당연하다. 자르뎅 시크레란 식물을 기르는 곳이 아니라 일종의 영적인 상황을 의미하는 프랑스어 용어다.
소소하고 개인적인 의례부터 마음 상태까지, 개인적인 일이나 생각 혹은 사람들이 자신만을 위해 하는 활동을 뜻하기도 한다. 창문 너머로 보이는 특정 풍경일 수도 있고, 은신처나 휴양지, 이른 아침의 산책, 다리 근처 강 위의 한 지점, 카페 안의 탁자, 음악 한 곡이나 직접 수집한 깃털, 돌맹이, 책, 부채일 수 있다.
아키코 부시는 자르댕 시크레에서는 사생활이라는 개념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사회적으로 관계를 맺으며 경험을 나누는 건 개인적 영역을 잘 간직하고 있느냐에 달려있다는 것이다. 깊은 차원의 개인적 의식 속을 잘 항해하고 자신만의 비밀을 간직한 사람이, 친밀성을 더 잘 쌓아갈 수 있다는 것이 위로가 됐다. 다시 숨바꼭질의 비유로 돌아가자면, 잘 숨는 사람이, 타인에게 발견되는 기쁨도 안다.
교없모를 하는 동안에 나는 종종 각자의 비밀정원에 숨은 친구들을 상상하고는 했다. 그들도 잠깐 눈을 돌려 창밖을 바라보았을까? 세상에서 자신이 지워지는 느낌을 그도 느꼈을까?
망각하기 위한 쓰기
세라 망구소의 <망각일기는 모든 일을 기록하는 한 작가가 쓴 일기다. 그는 처음엔 모든 순간을 병적으로 집착하기 위해 쓰다가, 아이가 태어난 후에는 달라진다. 망구소는 자신이 아이에게 가장 중요한 배경이자 세상이 된 이후에 달라졌다고 말한다. 전에는 ‘이렇게 많은 것을 잊어버리고도 살아남을 수 있을까’ 질문했다면, 이제는 내가 사랑하는 순간만을 어렴풋이 기억하고 그 모든 것을 잊어버리는 것이 자연스럽다고 여긴다.
이걸 읽고 약간의 낭패감이 들었다. 나는 아이를 낳지 않을텐데, 그 감정을 영원히 모르는 것일까? 내가 누군가의 세상이 되고, 망각을 자연스럽게 느끼는 일이 내게도 올까? 그래도. 아기가 있는 삶에 대해선 영영 모를지라도, 망각에 관해서라면 일정 부분 비슷한 생각을 갖고 있다.
글무료 카지노 게임을 한다는 것, 무작정 쓰기를 한다는 것은 모든 것을 까먹지 않기 위함이 아니다. 이미 나는 내가 지난 두달 간 내가 쓴 무작정 일기를 까먹고 있다. 나는 글을 통해 나의 모든 순간을 기억하려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그럴 수 없다는 것을 알아간다. 지금 이 순간에도 나는 계속 변화하고 있으니까. 내가 좋아하고 싫어하는 것도 변하고, 고민도 변하고, 누군가에 대한 생각도 변하고, 자아도 변한다. 모든게 변한다는 것만 확실하다. 그리고 그것만으로 충분하다. 글쓰기는 상기시킨다. 삶은 시작과 끝이 없이 계속 흐르고 있다는 것을. 이 모든게 연속된 삶이라는 것을.
망구소가 쓰면서 알게된 것 역시 단순하다.
시작도 끝도 끝도 허구.
역사는 시작하거나 끝나지 않고 계속된다는 것 인정하는 것
그러니 글쓰기 무료 카지노 게임을 하는 순간은, 존재하기 위해 사라지는 법을 배우는 일이다.
그것은 생존법인 동시에 죽어가는 법이다.
그것은 잘 숨고 발견되는 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