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공지능을 비롯한 첨단 기술의 발전은 이제 우리 삶의 거의 모든 영역에 깊숙이 스며들고 있다. 예술 역시 예외는 아니다. 기술이 예술에 어떤 방식으로 접목되고, 또 어떤 역할을 할 수 있을지에 대한 관심은 점점 더 높아지고 있다. 이 변화의 흐름을
이해하기 위해 나는 ‘기술이 예술로 변모하는 순간’을 가장 잘 보여주는 사례로, 영화의 초창기를 떠올려본다.
영화는 처음 등장했을 때, 철저히 기술적 경이로움 그 자체였다. 움직이는 이미지라는 사실만으로 사람들을 매혹시켰고, 만국박람회 같은 산업 전시장의 하이라이트로 자리 잡았다. 그러나 기술이 이야기를 품기 시작하고, 감정을 전달하게 되었을 때 비로소 사람들은 그것을 단순한 볼거리가 아닌 예술로 보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순간, 영화는 천막을 벗어나 극장으로 들어갔다. 이것은 단순한 공간의 이동이 아니라, 기술이 예술로 진화하는 첫 번째 이정표였다.
오늘날 우리가 마주한 새로운 기술들 역시 같은 경로를 따라가고 있다. 처음에는 다소 낯설고, 정확한 쓰임을 가늠하기 어려운 기술들이지만, 어느 순간 미술관과 공연장 속에 자연스럽게 들어와 있다. 기술이 예술로 스며드는 과정은 늘 그렇듯 조용하고, 그러나 결정적인 방식으로 이뤄진다. 그 변화의 본질은 기술이 단순한 기능을 넘어 감정을 다룰 수 있을 때 비로소 예술이 된다는 데 있다.
기술은 점차 인간의 감각을 바꾸고 있다. 더 깊은 몰입, 더 복합적인 감정의 자극을 위해 예술은 ‘구경’에서 ‘경험’으로 확장되고 있고, 관객은 더 이상 수동적인 관람자가 아니라 작품과 반응하며 함께 존재하는 주체가 된다. 기술은 새로운 언어가 되고, 시간의 흐름을 조절하고 감정의 반응에 따라 형태를 바꾸는 이미지들은 이제 새로운 감각의 문법을 구성하고 있다. 과거 영화가 편집과 몽타주를 통해 시간의 언어를 만들어냈듯, 지금의 기술은 감각과 인지의 구조 자체를 다시 쓰고 있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오늘날의 미술관과 공연장은 단지 예술이 머무는 공간이 아니라, 기술이 감각을 실험하고 새로운 언어를 시도하는 실험실로 기능하고 있다. 평면을 넘은 설치, 정적인 오브제를 벗어난 인터랙션, 스크린을 넘어선 몰입형 전시까지—이제 기술은 회화나 조각처럼 하나의 예술 매체로 작동하고 있으며, 이미 그 자체로 예술의 일부가 되어가고 있다.
기술이 예술이 되기 위해 던져야 하는 질문은 간단하면서도 본질적이다. 기술이 감정을 건드릴 수 있는가? 관객을 움직이게 할 수 있는가? 창작자에게 새로운 감각을 제공할 수 있는가? 인간이 기존에 알던 감각과 인지를 흔들 수 있는가? 이 질문들에 ‘예’라고 답할 수 있다면, 그 기술은 이미 예술로 진입하고 있는 것이다.
새로운 기술이 새로운 예술이 되고, 미술관과 무대가 그 기술이 펼치는 드라마의 무대가 되는 순간은 이미 시작되고 있다. 그리고 우리는 지금, 그 전환의 가장 흥미로운 경계에 서 있다.
#기술 #예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