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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론산바몬드 Sep 20. 2022

제발 잊고 살자

영어 바보는 그 후 어떻게 되었나

9월, 신규 교사로 고등학교에 발령받자마자 1학년 담임이 되었다. 담당 학급에는 선생님들로부터 악명 높은 K가 있었다. 선생님들은 K에 대한 이야기를 해주며 나를 불쌍하게 보았다. 첫날부터 그의 실체를 단박에 알아차렸다. K와의 첫 만남은 얼굴이 아니라 정수리였다. K는 등교하자마자 엎드려 잤고 수업시간에도 점심시간에도 줄곧 잤다. 누가 깨워도 일어나지 않았다. 부러 깨지 않는 것이 아니라 정말 혼수상태가 되어 잤다. 모두가 하교한 텅 빈 교실에서 혼자 자다 집으로 돌아가는 일상이 반복되었다. 며칠이 지나고서야 처음 그의 얼굴을 보았다. 90kg은 될 만한 덩치에 짧은 머리, 학생만 아니었으면 깍두기 형님이라 부를 뻔했다.


그에게서 일상을 들을 수 있었다. 낮에는 자고 밤에는 도박장에 가서 일한다고 했다. 딜러도 하고 잔심부름도 하고 손님들의 술상대가 되어 주기도 했다. 수입이 짭짤하다며 학교는 그냥 형식상 다닐 테니 간섭하지 말라고 했다. 매일 그렇게 엎드려 자면서도 이상하게 시험을 칠 때면 자지 않았다. 분명 아는 문제가 없을 터였다. 그는 매 시험시간마다 문제는 풀지 않고 시험지를 노려보기만 했다. 미동도 않고 마치 시험문제를 암기라도 하려는 듯 읽기만 했다. 그리고 종료 10분 전이 되면 천천히 OMR카드에 마킹을 했다. 3번, 3번, 3번.... 모든 과목, 모든 문항을 3번으로 찍었다. 한날은 손을 들어 답지를 바꿔달라고 했다. 실수로 한 문항에 4번을 찍었다고 했다. 이상한 놈이었다. 더 이상한 건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교 꼴찌는 아니라는 거였다.


11월로 접어들 무렵 결석이 잦아졌다. 부모님께 전화해 물어보면 집에서 잔다고, 깨워도 일어나지 않는다며 죄송하다고 했다. 결석이 10일을 넘고 있었다. 나는 간단히 짐을 꾸려 무작정 그의 집으로 쳐들어갔다. 자발적으로 학교를 올 때까지 같이 자고 같이 등교하겠노라 선언했다. 녀석은 당황한 눈치였지만 싫은 내색은 없었다. 그날부터 그와의 동거가 시작되었다. 그에겐 5살 터울의 누나가 있었는데 나를 맘에 들어하는 눈치였다. 자꾸 먹을 것을 챙겨 주고, 같이 화투를 치자느니, 장기를 가르쳐 달라느니 하며 수작을 부렸다. K보다는 그의 그리 예쁘지 않은 누나 때문에 더 힘들었다. 그의 집에서 꼬박 3주를 살았다. 나의 정성에 감동했는지 집에 그만 오라는 뜻인지는 몰라도 그 후 그는 다시 정상 등교를 시작했다. 생활이 크게 달라지지 않았지만 어찌어찌 졸업도 했다.


그에게서 전화가 온 것은 졸업 후 5년쯤 지났을 때였다. 간단히 안부를 묻는 대화가 오간 후 그가 대뜸 삼천만 원을 빌려달라고 무료 카지노 게임. 트럭을 사서 장사를 하겠다고 무료 카지노 게임. 젠장, 이것이 스승의 은혜였던가. 화가 나지는 않았고 좀 서글펐던 것 같다. 당장 전화번호를 바꿨다. 지금도 가끔 그에게서 나던 술냄새와 담배냄새가 생각난다. 그럴 때면 내가 가장 좋아하는 시인 김춘수의 <꽃을 읊조려본다. 특히 마지막 연이 인상적이다.


우리들은 모두

무엇이 되고 싶다.

너는 나에게 나는 너에게

철저하게 잊혀진 남이 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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