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어 바보는 그 후 어떻게 되었나
처음 만났을 때부터 카지노 쿠폰은 나를 탐탁지 않게 생각했다. 섣부른 추측이 아니라 실제 말과 행동으로 나를 괴롭히기 시작했다.카지노 쿠폰은 시골마을 이장 같은 수더분한 인상이었다. 좋은 사람인 줄 알았다. 나의 복장부터 걸음걸이, 학생에게 하는 말투 모든 것을 꼬집어 지적질을 했고 어떤 핑계를 대서든 결재는 한 번에 승인되지 않았다. 스물여덟, 초임 교사의 교직생활은 시작부터 비극이었다.
중간고사를 끝낸 어느 날, 학생들은 수업을 거부했다. 오늘 하루쯤은 쉬는 게 어떻겠냐며 영화를 보여달라고 했다. 나도 내심 바라는 바였다. IT를 담당하는 학생에게 방송실에서 비디오 플레이어를 가져오게 했다. 당시는 교실에 컴퓨터를 비롯한 어떤 IT 기계도 없던 시절이었다. 그리 크지 않은 텔레비전만 교실 앞에 달려 있었다. 비디오 플레이어가 오기 전 막간을 이용하여 힘깨나 쓴다는 학생과 교탁에서 팔씨름을 했다. 그의 손아귀에서 묵직한 힘을 느낀 것과 동시에 창밖에서 쏘아보는 카지노 쿠폰의 강한 시선을 느꼈다. 카지노 쿠폰은 미동도 않은 채 안경 너머로 나를 한심한 듯 바라보았다. 얼른 팔을 풀고 학생들을 제자리에 앉혔다.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걸음을 옮기던 카지노 쿠폰은 때마침 비디오 플레이어를 들고 오던 학생과 복도에서 마주쳤다. 정말 재수 없는 날이었다. 그날부터 나는 카지노 쿠폰의 뇌리에 수업을 잘하지 않는 교사로 각인되었을 것이다.
또 다른 계기도 있었다. 당시엔 급식이 유료여서 밥값을 선불로 낸 학생들만 식당을 이용했다. 때문에 밥을 굶는 학생들이 더러 있었다. 우리 반에도 다섯 명가량은 늘 점심을 먹지 못했다. 안타까웠다. 보다 못해 집에서 전기밥솥을 챙겨 와 밥을 해 먹였다. 쌀을 씻으러 솥을 들고 화장실로 들어서다 카지노 쿠폰과 마주쳤다. 카지노 쿠폰은 예의 그 날카로운 눈빛을 안경 너머로 던지며 한 마디 쏘아붙였다. "교사 체면 구기는 일은 혼자 다 하는구만." 납득할 수 없었다. 하지만 하지 말라니 더는 할 수 없었다.
그 외에도 기억나지 않는 숱한 일들이 있었다. 교육적 목적으로 그 어떤 일을 해도 카지노 쿠폰에게서 인정받을 수 없었다. 상사에게 찍히면 돌이킬 수 없다는 사실을 받아들여야 했다. 그래서 학교를 옮겼다. 아주 멀리 있는 학교로 갔다. 1년 뒤 그 카지노 쿠폰이 승진하여 교장이 되어 부임했다. 이렇게 재수 없을 수가. 암담했다. 교장에게 구겨지고 부서지며 암흑 같은 2년을 보냈다. 카지노 쿠폰 찍혔을 때 달리 방법은 없다. 무조건 학교를 옮겨야 한다. 그것도 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