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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석근 Jul 30. 2022

카지노 게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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힘을 갖지 못한 약자들은 카지노 게임들을 악한자로 매도하고 그럼으로써 자신을 선한 자로 만든다. - 프리드리히 니체



어릴 적 셋집에 살면서, 나이가 비슷한 주인집 아들들과 몇 번 싸운 기억이 있다. 그때마다 승리를 했다.


어린 마음에도 주인집 아들에게 지면 안 된다는 강박관념을 가졌던 것 같다. ‘지면 안 돼!’


그때는 사내아이들 사이에는 ‘결투’라는 게 있었다. 둘이 맞장을 떠서 깔끔하게 승자와 패자를 정했다.


부모에게 고자질하는 아이는 아마 따돌림을 당했을 것이다. 아이들 세계에서 가장 무서운 게 따돌림 당하는 거 아닌가?


기와집에 사는 주인 가족과 초가집에 사는 우리 가족의 대비는 어린 내게 얼마나 큰 상처였겠는가?


어느 날 주인집 아들과 놀다가 다투게 되었다. 내가 말했다. “나가자! 냇가 언덕에서 보자!”


나는 어머니가 떠 주신 목장갑을 끼고 나갔다. 나는 두 주먹을 꽉 쥐고 공격 자세를 취했다.


나는 그의 눈을 주시하다가 잠시 그의 눈빛이 잠시 흔들리는 사이에 오른 쪽 주먹으로 그의 코를 강타했다. 코피가 흐르고 그는 울면서 집으로 돌아갔다.


그 뒤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 아마 그 아이가 부모에게 일러바치지는 않은 것 같다. 지금도 그때의 장면이 선명히 기억이 난다.


그 후 다른 집으로 이사를 갔다. 초가집이지만 통째로 빌렸나 보다. 나는 우리 집으로 알고 살았다.


그런데 어느 날 동년배인 한 아이가 우리 집으로 들어오더니 이 집이 자기네 집이라는 것이었다.


서로 우리 집이라며 우기며 뒤엉켜 싸웠다. 겨울이었던가 보다. 배춧잎들이 허옇게 말라붙은 밭고랑에서 우리는 흙투성이가 되었다.


나는 그의 몸을 온 몸으로 꽉 눌렀다. 그때는 얼굴을 때리는 것은 금기였다. 몸에 상처 안 나게 싸우기.


상대방을 제압하는 게 주된 싸움의 기술이었다. 그는 헉헉 가쁘게 숨을 내쉬더니 팔을 휘저으며 자신이 졌다고 말했다.


그러면 싸움은 끝이다. 중요한 건, 승부를 가리는 것이니까. 누구의 집이라는 건 사라지고, 승패만 갈렸다.


그 뒤 나는 철이 들면서 부터는 싸우지 않았다. 겁이 많아서인지 싸우다가 재수 없으면 부모님이 알게 되고 치료비까지 물려주는 사태가 발생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어서였는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내 마음 속은 변화가 있었다. 카지노 게임를 깎아내리는 것이었다. 나보다 부유한 아이들은 속으로 은근히 경멸했다.


이러한 ‘정신승리법’은 참으로 오래 갔다. 나는 세상을 비웃으며 나의 곤궁한 삶을 견뎠다.


‘냉소주의는 천박한 영혼들이 정직성에 접근하는 유일한 형태’라는 말이 있다. 자신에게 당당하지 못한 천박한 영혼이 ‘정직하게 사는 방식’이라는 것이다.


나는 가끔 생각했었다. ‘나만큼만 사람들이 착하게 살면 이 세상은 좋은 세상이 될 텐데.’


지금 생각해보면, 얼마나 천박한 짓거리인가! 자신을 속이고서, 어떻게 정직하게 살아갈 수 있단 말인가!


그 뒤 문학을 공부하고 철학자 니체를 알게 되면서 나는 나 자신에게 정직해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니체는 말했다. “선한 자가 되지 말고 약자가 되어라!” 그래, 나는 약자였다. 그래서 카지노 게임를 악한 자로 만들고 나는 선한 자가 되어 나의 못난 삶을 견뎠던 것이다.


내가 나를 약자로 인정하고 나니, 나의 마음에 켜켜이 쌓인 때들이 맑은 물로 말갛게 씻어지는 느낌이었다.


그때부터 나는 나를 성찰하며 살기 시작했다. ‘먼저 나를 알아야 해!’ 나는 나의 장단점을 선명하게 알아갔다.


내게도 장점이 많았다. 강의와 글쓰기, 내가 찾아낸 카지노 게임되기의 길이었다. 나는 나의 길을 가기 시작했다.


카지노 게임는 약자를 돌보고 약자는 카지노 게임의 보살핌을 받는 게 너무나 당연한 삶의 이치라는 걸 깨달아가게 되었다.


그리고 그 카지노 게임, 약자라는 것도 수시로 바뀔 수 있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어릴 때는 카지노 게임인 어른의 보호를 받고 어른이 되었을 때는 약자인 아이들과 노인을 보호하는 게 당연한 게 아닌가?


돈이 많은 사람과 적은 사람 사이, 몸이 강한 사람과 약한 사람 사이, 지식이 많은 사람과 적은 사람 사이, 지혜가 많은 사람과 부족한 사람 사이...... .


이 모든 카지노 게임와 약자 사이에는 ‘아름다운 돌봄과 보살핌의 관계’가 만들어져야 한다. 나는 어떤 사람인가?


이 세상엔 나의 몫이 있다. 내가 가야 할 길이 있다. 모든 생명체들은 자신의 길을 잘 알고 살아간다.


‘포식자’라는 말이 있다. 단지 다른 동물을 먹는다는 뜻인데, 우리는 포식자를 카지노 게임라는 의미로 쓴다.


얼룩말을 먹는 사자, 얼룩말은 약자이고 사자는 카지노 게임인가? 모기가 사자의 피를 수시로 빨아 먹는데, 그럼 모기가 최카지노 게임라는 말인가?


크게 보면 모든 생명체들의 관계는 ‘상극-상생’이다. 서로를 죽이는 듯이 보이지만, 실은 서로를 살리는 것이다.


어느 누가 카지노 게임이고 어느 누가 약자인가? 하나의 커다란 생명의 공동체에서 각자의 길을 가며 더불어 잘 살아가고 있을 뿐이다.


나는 60을 넘어서며 비로소 나를 오랫동안 괴롭혔던 ‘카지노 게임-약자’의 강박증에서 서서히 벗어나기 시작했다.



나는 변신해서 짐승들과 함께 살았으면 한다.

그들은 실로 평온하고 자족해 왔다.

나는 지켜 서서 오래 그들을 살펴본다.

그들은 고역이 없고

저희들의 처지에 불평하지 않는다.


- 월트 휘트먼, <짐승들 부분



언젠가부터 인간은 스스로를 ‘만물의 영장’이라고 불렀다. 그때부터일 것이다.


인간이 짐승만도 못하게 되어버린 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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