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점에 대한 부담에서 조금씩 벗어나자 학업 외의 활동들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게시판에 붙은 공지들도 그때부터 유심히 보게 되었는데 그중 눈에 띈 건 1년에 한 번 진행되는 TESOL 학회 참가 비용 지원 안내였다. 우리 과는 장학금 제도가 없어 작은 지원금이라도 받고 싶은 마음에 신청서를 쓰기 시작했다. 왜 다른 학우들이 아닌 ‘나’여야 하는지 설득력 있게 써야 했고 선정되면 학회 참석 후 과 친구들에게 간단한 발표로 경험을 공유해야 했다. 뽑히지 않더라도 이 과정 자체가 공부가 될 것 같았다.
운 좋게 혜택을 받게 된 나는 학회에 다녀온 후 여러 세션 중 채용 관련 내용을 친구들과 공유했다. 저명한 분들의 발표보다 대학원생으로서 내가 가장 궁금했던 ‘채용과 트렌드’를 나누고 싶었다. 학회에서 챙겨 온 브로셔와 찍어두었던 사진들을 정리해 발표 자료를 만들고 필요한 친구들이 가져갈 수 있도록 핸드아웃도 제작했다. 리허설까지 해 가며 준비한 발표는 큰 호응을 얻었다.
긍정적인 경험은 또 다른 긍정적인 경험을 낳는다. 학업 외 카지노 게임에서 처음 느낀 성취감은 유학 생활 중 쌓여 있던 응어리를 조금씩 녹여 주었다. 그리고 나는 학과에서 가장 적극적인 학생 중 한 명으로 변해갔다. 그전까지 나는 학업에만 몰두하며 그 외의 카지노 게임은 모두 차단한 채 지냈다. 성적은 좋았지만 원어민 학우들 사이에서 발표와 토론이 일상화된 환경은 나를 점점 작게 만들었다. 그러던 내가 이 사건을 계기로 다양한 카지노 게임에 적극 나서게 되었다. 그중 가장 기억에 남는 건 학습지원센터에(Learning Assistance Center)서 근무했던 일이다.
LAC는 학부와 대학원생 모두에게 학습 지원을 제공하는 센터였다. 경쟁이 치열해 큰 기대는 없었는데 합격 연락을 받았을 땐 얼떨떨하면서도 기뻤다. 첫 학기 교수님의 빨간펜 가득한 피드백에 충격받아 수업을 전부 녹음하며 공부했었던 내가 이듬해에는 영어가 모국어가 아닌 학생들은 물론 미국 학생들의 학습까지 돕는 사람이 되었다.
미국에서는 대부분의 과제가 리포트 형태로 제출된다. 다시 말해 ‘쓰기’가 되지 않으면 좋은 성적을 받기 어렵다. 조교와 튜터 카지노 게임을 병행하면서 나는 많은 학생들이 콘텐츠에 대한 충분한 이해 없이 쓰기에 먼저 들어간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글의 내용이 제대로 이해되지 않은 상태에서 쓰기를 시작하니 정확도도 떨어지고 자신의 생각도 정리가 되지 않는다. 그렇게 시작된 글은 여러 번의 수정을 거쳐도 논리적으로 맞지 않게 되는 경우가 많았다.
에세이 작성을 위해 찾아온 친구들과 나는 오히려 쓰기보다는 먼저 읽고 이해하고 자기 생각을 정리하는 카지노 게임에 시간을 더 들였다. 그 결과 글쓰기가 편해졌을 뿐만 아니라 수정하는 데 드는 수고도 줄어든 학생들이 하나둘 늘어났다. 단지 성적 향상 때문만이 아니라 그들의 자신감과 태도가 달라지는 모습을 보며 이 일이 내게 점점 더 큰 의미로 다가왔다.
처음 석사를 시작할 때는 영어 전공자가 아닌 내가 영어로 일할 수 있다는 가능성 그리고 미국이라는 무대에 대한 오랜 로망으로 시작했지만 이제는 그 이상의 이유가 생긴 것이다. 이때부터 영어 교육은 내게 단순한 일이 아닌 나만의 ‘업’이 되어가고 있었다.
#영어교육#일#미국석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