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른 중반을 넘겨 나는 처음으로 다국적 카지노 게임에서 한국식 조직 생활을 시작했다. 2년 계약직으로 조인한 이 회사에서 내가 맡은 역할은 ‘사내 영어 아카데미 운영’이었다. 당시만 해도 카지노 게임 내부에 영어 전담 조직을 둔 곳은 없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미국 본사를 둔 글로벌 금융카지노 게임이라는 특성상 직원 영어 교육에 대한 남다른 투자가 느껴졌다.
그렇게 해외 지사와 영어 소통이 많은 부서나 영어 사용이 많은 분들부터 주재원, 단기 해외 파견, 임원분들 등 다양한 그룹의 수업을 기획, 운영해 갔다 외부 강사로만 일하던 시절과 달리 실제 직무에 도움이 되는 교육을 기획해야 했기에 헬스케어와 보험 관련 산업 지식을 틈틈이 익혀 나갔다. 모든 정보가 공유되는 위치는 아니었지만 그 안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최대한의 도움을 주고자 열심히 스터디했다.
덕분에 수업을 들은 분들 중 상당수가 기대 이상이었다는 피드백을 남겨주셨고 실제로 해외 지사로 이전하신 분들도 계셨다. 대기업 강의, 진급 시험, 유학 준비 강의를 할 때도 그랬지만, 누군가의 커리어 전환에 직접적인 실질적 도움이 될 때, 나는 가장 큰 보람을 느꼈다. 가시적인 성과는 언제나 내가 일하는 이유에 큰 힘을 주었다.
카지노 게임 교육 전문가로 내 입지를 다지는 동시 낯선 근무 환경에서 전문 용어, 회의 문화, 보고 체계 등도 빠르게 익혀 나갔다. 외국 항공사, 프리랜서, 개인 사업자 등 비교적 자유로운 환경에서 일해왔기에 수직적 조직에 적응하는 것이 쉽지 않았지만 맡은 역할에 대한 긍정적인 피드백과 평가가 있어 늦은 나이의 입사였음에도 적응할 수 있었다. 무엇보다 오랜만에 일을 통해 다시 성장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기에 힘들면서 행운이라는 생각이 공존했던 시간이었다.
하지만 그 모든 성과와 보람 뒤에는 말하지 못했던 어려움들도 있었다. HR 소속이었지만 나는 정식 부서원도 외부 강사도 아닌 애매한 위치였다. 팀 회의에 초대되지 않을 때도 있었고 접근이 허용되지 않는 공유 폴더도 있었다. 그러다 보니 어느 순간부터 종종 무력한 느낌을 받기 시작했던 것 같다. 내가 기획한 수업이 호응을 얻고 있어도 인사 평가 결과가 좋아도 소속감이 느껴지질 않았다. 그래도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했고 그렇게 조금씩 시간을 쌓아갔다.
#일#커리어#에세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