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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에반스토니언 Apr 01. 2025

모두가 원카지노 게임 게임

인간에게 최고의 쾌락을 선사할 수 있는 행위가 있다면, 아마도 살고 죽는, 생사의 문제가 걸린 싸움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세상에 어떤 쾌락이 죽음을 피해 생명을 건진 것에 비할까?


사람이 타락해서 할 수 있는 가장 악한 짓이 있다면, 그것은 사람을 갖고 노는 것이다. 유명한 드라마 '오징어 게임' 시즌1에서, 너무 부자라서, 할 일이 없이 지루해서, 사람들이 서로 목숨을 걸고 치고받고 싸우다 죽는 걸 관람카지노 게임 게 취미였던 한 부자 노인 이야기는 어쩐지 남일 같지 않은 서늘함을 느끼게 만든다.


한국 사회를 보면, 고통에 중독된 사회라는 생각이 든다.


마치, '스톡홀름 증후군'처럼, 인질이 범인의 힘에 눌리다 못해 그걸 정신적으로 정당화하기 위해서 사랑하게 되는 것이다. 카지노 게임이 고통에 눌리다 못해 고통을 자연스럽고 정상적인 상태로 받아들이고, 고통을 사랑하게 되는 것이다.


군 시절에 재미있는 경험을 했다.

'거지에서 왕까지' 두루 경험해볼 수 있는 인간 사회의 각축장이 아니던가.


카지노 게임 이병일 때는 자기는 상병되면 저렇게 안한다, 병장되면 반드시 고치겠다, 이들을 간다.


그런데 상병이 되고, 병장이 되면?


'야, 다 가혹행위도 이유가 있는 거야'

'요즘 애들은 이렇게 안하면 말을 안들어'

'다 한때 겪는 일이지'


못 고친다. 아니, 안 고친다.


'나도 고생 죽도록 해봤으니, 너도 한 번 당해봐라, 유익한 면도 있단다'라는 식이다.


주요 선진국 중에 한국만이 삶에서 가장 필요한 것 1순위에 '가족'이 아닌 '돈'을 놨다는 이야기는 이제 흔한 이야기다. 한국이 또한 명품에 들이는 돈이 어마어마하다는 것도 더는 새로운 뉴스거리가 못 된다.


그러면서 우리는 유럽을 부러워 하며

되도 않는 아파트 이름을 갖다 붙인다.


그러면 삶에 여유가 있고, 카지노 게임답게 사는 것 같은가 보다.


우리는 누가 노는 꼴, 편안하고 안락하게 잘 사는 꼴을 못 본다.

무조건 부지런히 살거나, 놀더라도 뭐라도 하고 있어야 한다.


우리는 '놀고 먹는 쉼'이 가치있는 행위라는 것을 아무도 믿지 않는다.

쉬어야 창의적인 생각도 난다는 걸 알지만 못 쉰다. 안 쉰다.

창의적인 생각이 필요없는 사회인 것도 있다.


남자들은 '요즘 군대'를 싫어한다. 24시간 뜨거운 물이 펑펑 나오고, 새로 지은 생활관에서, 침대 생활카지노 게임 걸 보며, '나 때는...'을 궁시렁 거린다.


나 때는 이랬지만, 더 어린 사람들은 더 나은 대우를 받아야지,카지노 게임 '대승적 생각'은 일도 없다.


근시안, 단안의 생각 밖에는 없다. 1년 뒤, 5년 뒤, 10년 뒤, 100년 뒤 계획이란 건 없다. 늘 그때그때 닥쳐서,

실무자들이 밤을 새우고 누군가는 과로사로 죽어 나가야, 아 열심히 하고들 있구나, 한다.

그렇게 해서 세월호 때 잠수사도 죽고, 코로나 때 공무원이 과로사했다.


'여기 좀 숨 쉴 틈을 줘요! 미리미리 계획했으면 됐잖아요! 날 좀 내버려둬! 쉴 수 있게 해달란 말이야!'

그런 항의조차 잘 들리지 않는다.

카지노 게임 다 이 '고통의 정치학'에 절었기 때문이다.

모든 고통은 일단 내탓부터 하고 본다.


내가 당한 불의, 남은 겪게 하지 말아야지, 카지노 게임 사고가 선진국형 사고다. 아니, '사람이라면 당연해야할 사고'다.


기성세대는 비록 어려웠던 시절을 살았지만, 어디든 깃발만 꽂으면 자리잡을 수 있었고, 승승장구하면서 늘 더 나은 미래를 기대할 수 있었던 세대다.


그렇게 해서 사회의 많은 부를 가진 이들이,

기부와 봉사활동에 나서고, 사회복지를 위해 노력한다는 이야기는 너무나 드물다.


내 후임들은 나보다 나은 환경에서 군 생활하게 해줘야지,

다음 세대들은 적어도 '먹고 사는 문제'하나는 확실히 보장된 사회에서 살게 해줘야지,

그런 생각은 가뭄에 콩 나듯 한다.


한국을 보면, '콜로세움 사회'라는 생각이 든다. 자신의 고통은 당연하고

남의 고통과 피에는 열광한다. 거기에 비로소 '카지노 게임 사는 맛'이 있고 '인생 사는 맛'이 있다고 한다.

만인의 만인에 대한 투쟁 상태, 카지노 게임 경쟁에 목 매야 간신히 살 수 있는 사회.

검투 경기장이다. 콜로세움이다.


나도 소외되고 차별받고 억울한 대우 받아봤는데... 너도 당해봐. 다 필요가 있더라니깐? 이런다.

사실 그건, 안 당해도 되는 일이었으며, 카지노 게임으로서 당하지 말았어야할 대우였다.


우리나라 카지노 게임들은 '사회복지'를 싫어한다.

가짜뉴스로 판명난, '복지 여왕,' 나라의 지원금으로 호사스럽게 산다는 어떤 여자,란 존재하지 않는다. 그런데도 '시럽급여'(실업급여의 멸칭) 같은 소리를 한다.


구직포기자 50만명이, 달디단 사회복지가 차고도 넘쳐나서 일을 그만 뒀나?

아니다. 일하는 환경이 너무나 비인간적이라, 사람으로 그런 수모까지 당하며 돈 벌어야 하는 게 겁나고 싫을 뿐인 것이다.


지원금 받아 소고기나 사먹겠지, 지원금 받는데 폰은 그 비싼 아이폰 쓰더라,

지원금 받는 카지노 게임은 하루 두끼 당연히 라면으로 때우고 두세평 고시원에 온가족이 살아야 '카지노 게임다운 것'이라고 착각을 한다.


세상에 완벽한 사회복지제도란 없다. 사람이 완벽하지 않다.

당연히 새는 돈이 있고, 오남용되는 부분이 있을 수 있다.


우리는 모 그룹이 혈세 8천억을 꿀꺽하고 경영진이 120억 연봉잔치를 벌이는 건, 괜찮다, 나랑 무관한 일,이라고 하면서

'압구정 건물주 할매가 복지지원금 타가는' '사태'를 걱정한다. 그래서 핀셋으로 꼭꼭 집은 '선별복지'를 하자고 한다. 그래서 '차상위 계층' 같은 말이 생겨난다. '복지 사각지대'에서 고독사한 노인, 자살한 가족이 생겨난다.


그런 마음이 죄악된 마음이다.


우리 기성세대가, 조금만 더 주의를 기울여서, 고독사하고 노인빈곤으로 자살카지노 게임 친구들, 선후배를 돌봤으면, 자라나는 세대는 고생 안하도록, 사람답게 살도록 관대했더라면,

나는 비록 힘겹게 살았지만, 이제는 다 이 죽음의 경기를 끝내자고, 결단했더라면,

카카오 김범수, 신세계 정용진 같은 신세대 재벌은 구태 재벌과 좀 달랐더라면,


어땠을까?


더는 사람 목숨가지고 카지노 게임 장난, 악다구니로 살려고 버티고 애쓰는 이들을 지켜보는 재미,

피가 튀고 살점이 뛰노는 짜릿한 쾌감을 못봐서 아쉽다 하려 그러는가.

카지노 게임 편안, 안락한 사회라니, 있을 수 없다, 난 그런 거 싫다, 빨갱이들아! 그러려는가.

내 친구들은 우울증이 되고 은둔형 외톨이가 되든 말든, 내가 얼마나 노오오오력을 했는데! 젊은 세대도 복지 싫다! 불공평하다! 그러려는가.


오늘도 콜로세움으로 수십 수백만 명이 출근해서 누구는 살아남고 누구는 죽는다.

'카지노 게임이 이러고 살아야지 제맛이지'


아니, 우리 밖에는 그렇게 살지 않고도 더 부유하고,

덜 부유해도 훨씬 행복한 세상이 있다.


우리만 그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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