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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보리남순 Apr 30.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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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기가 나간 밤에

아스트라가에서 묵은 알베르게는 내가 20대에 묵었던 지리산 산장을 생각나게 하는 곳이다. 이곳의 알베르게가 지리산에 있던 노고단이나, 세석, 장터목 산장 보다 규모도 훨씬 더 크고 시설도 월등히 낫지만 1980년대와 2025년의 시간차를 감안하면 그때 지리산 산장도 나빴다고는 말할 수는 없을 것 같다.

지리산 산장에는 개별 침대가 없었다. 나무 마루에 들어오는 순서대로 자리를 잡고 누웠다가 늦게라도 누가 들어오면 몸을 옆으로 세워 옆사람과 밀착시켜 새로 온 사람에게 자리를 만들어 주곤 했다. 책받침을 세우듯 칼잠을 잤기 때문에 몇 명이 같이 잤는지 알지도 못했다. 그렇게 자고 일어나서 다음 날 또 거뜬하게 산을 탔다.

새로 지은 산장 이전에 있던 오래된 노고단 산장은 그때만 해도 지리산의 어떤 산장보다 운치와 멋이 더 있었다. 노고단 산장은 돌로 지은 산장으로 기억한다. 노고단에만 털보라는 별명의 산장지기가 있었는데 그의 커피는 지리산의 3대 명물 중 하나라고 사람들이 말을 했다.
나는 그의 커피를 한 번도 마시지 못했다. 학생신분에 커피값 500원이 크기도 했지만 그보다는 20대 어린 처녀가 어른들(거의가 남자 어른들이었다.) 틈에 끼어들어 커피를 마실 자신이 없었던 것이 더 큰 이유였다.
세월이 많이 흘러 지리산의 산장과 그 시절의 추억을 떠올리며 스페인의 까미노에서 그때처럼 배낭을 메고 알베르게에 누워 있을 줄 누가 상상이나 했을까.

지리산 산장의 세배쯤 되는 크기의 알베르게에는 침대가 26개가 있다. 이곳에서는 90명을 수용할 수 있는 곳이다. 내가 누워 있는 곳은 3층이다. 나란히 또는 대각선으로 일인용 침대가 스물여섯 개가 놓여 있다. 건물은 목조 건물로 창문 2개와 큰 천창이 3개가 있다. 낮동안은 그곳으로 해가 들어와서 불을 켜지 않아도 실내가 환했다. 밤에는 달빛, 별빛이 들어와서 보름달이 떠오르는 날에는 천창으로들어오는 달빛에 설레어서잠을 설칠 수도 있겠다.

내 침대는 석가래를 받치고 있는 기둥에 붙어 있다. 내 양옆에 있는 침대에는 모두 프랑스여자들인데 왼쪽 침대에 계신 분은 머리가 올 백색으로 센 할머니가 있고 기둥을 사이에 두고 내 오른쪽 침대에는 내 또래로 보이는 아줌마가 있다.
아줌마 뒤로 세로로 침대가 몇 개 놓여 있고 그 뒤로는 벽에 붙여 침대가 여러 개 놓여 있다. 내 이야기는 지금부터다.

나와는 가장 멀리 떨어져 있는 두 사람은 부부다. 까미노를 걷는 사람들 중에는 부부가 꽤 많았다. 남자들은 걷거나 산책 같은 목적 없는 활동을 좋아하지 않는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는데모든 남성에게 해당되는 말은 아닌가 보다.


이 부부는 이탈리아에서 왔다고 했다.
부부는 소곤소곤 목소리를 낮춰 이야기를 나누다가 갑자기 우스워 죽겠다는 듯이 둘이 동시에 웃어댔다. 낄낄 대다가 다시 이야기를 나누고 그러다 다시 동시에 박장대소를 하기를 여러 차례 반복하고 있다. 그 부부의 소곤대며 박장대소하는 것을 가만히 듣고 있자니, 저들이 진짜 부부가 맞나 의심이 들다가 아, 저런 게 개그 코드라는 거구나 싶다. 요즘 젊은 사람들 중에 이상형을 '개그 코드가 맞는 사람'이라고 말하는 것을 듣고도 정확히 어떤 건지 알지 못했었는데, 개그코드라는 게 저렇게 함께 박장대소를 하는 거구나 싶다. 나이 든 부부가 아니라 십 대 소년과 소녀가속 삭이며 끼득거린다고 해도 믿을 것 같다.


전기가 나가서 깜깜하다.

모르긴 몰라도 부부를 뺀 나무지 침대에 누워 있던 사람들은 어둠 속에서 숨죽여 부부에게 귀 기울이고 있는 것 같았다. 두 사람 외에는 누구도 숨소리도 내지 않았다.


부부의 이야기를 들으며 사람들은 어떤 생각을 했을까?

나는 남편을 생각했다. 우리도 저렇게 웃던 때가 있었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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