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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물처럼 Apr 25. 2025

<15 스스로 깨달아 카지노 게임 사이트 개척한
대문호

-공부에는 관심 없고 도박과 매춘에 빠졌던 청소년, 레프 톨스토이

*레프 톨스토이(1828~1910)= 러시아의 소설가, 사상가. 사실주의 문학의 대가. 비판적 지식인. 주요 작품으로 ‘전쟁과 평화’ ‘안나 카레니나’ ‘부활’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등이 있음.


흔히 ‘인류의 교사’ ‘예수 이후의 첫 사람’이라 불리는 레프 톨스토이.


그는 위대한 소설가일 뿐만 아니라 걸출한 사상가였다. 바람직한 삶, 참된 행복에 대해 깊이 성찰하고 탐구한 철학자다. 그의 유명한 소설만 읽을 것이 아니라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와 같은 인생론을 반드시 함께 읽어야 하는 이유다.


톨스토이는 두말할 필요도 없이 박학다식한 지식인이었다. 문학을 포함한 모든 학문과 예술에 능통한 르네상스 인간이었다. 하지만 어린 시절 그는 공부에 별 관심도 재능도 없었다. 소년기와 청년기 땐 도박과 매춘에 빠지는 등 방탕한 생활을 일삼았다. 이런 사람이 불세출의 인물이 되리라고는 아무도 생각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는 모스크바 남쪽 야스나야 폴랴나에서 넓은 농장을 소유한 귀족 집안의 넷째 아들로 태어났다. 하지만 불과 2세 때 어머니, 9세 때 아버지를 여의는 바람에 모스크바에 사는 고모 집에서 우울한 소년기를 보내야 카지노 게임 사이트. 독일인 가정교사의 가르침을 받았지만 영 재미가 없었다. 특히 입시 필수 과목인 수학을 매우 어려워했으며, 당시 귀족 사회에서 중시했던 라틴어 과목에도 흥미를 느끼지 못카지노 게임 사이트. 거기다 규칙과 규율을 중시하는 교육 문화에도 적응하는데 어려움을 겪었다.


성적이 좋았을 리 없고, 16세 되던 해 지방 대학인 카잔 대학교에 응시했으나 낙방카지노 게임 사이트. 재시험을 치러 겨우 입학했는데, 톨스토이 연구자들은 집안의 백그라운드가 작용했을 것으로 본다. 외교관이 되고자 동양학부에서 아랍어와 튀르키예 어를 공부했으나 흥미도 재능도 없었다. 결국 외교관의 꿈을 접고 2학년이 되면서 법학부로 전과했지만 여기서도 적응하는데 실패카지노 게임 사이트.


3학년 중퇴로 막을 내린 그의 대학 생활은 방탕의 끝판왕이었다. 입학하자마자 술과 담배, 도박에 빠지는가 하면 매춘을 탐카지노 게임 사이트. 결국 매춘부와 3년 가까이 동거하다 성병에 걸려 대학병원에 입원하기도 카지노 게임 사이트. “대학은 학문의 무덤”이라 선언하고 자퇴한 그는 유산으로 받은 50만 평의 땅과 330명의 농도가 있는 고향으로 돌아와 새로운 길을 모색한다.


처음에는 농도들의 삶을 개선하기 위해 노력하는 듯했으나 19세 귀족 청년의 망나니 습관을 버리기는 쉽지 않았다. 값비싼 말을 타고 다니며 거들먹거리다 주민들로부터 거센 비난을 받는가 하면 하녀들과 어울리며 임신시키기도 했다. 농노 자녀들을 교육시키겠다며 학교를 열었으나 실패한 뒤 상트페테르부르크에 가 새로운 직업을 모색했다. 하지만 방탕생활만 하다 귀향했다.


이런 톨스토이가 어떻게 정신을 차렸을까? 20대 초반까지의 행적을 보면 얼핏 구제불능 청년이다. 배운 것이 일천하고, 유흥에 빠진 바람둥이한테 무슨 미래가 있었을까 싶다. 하지만 10대 때부터 그는 내적으로 자기 카지노 게임 사이트 준비해 온 것으로 보인다. 그는 예술과 문학에 남다른 관심이 있었다. 언젠가 그것으로 자기 인생을 개척해 나가리라 생각했을 것이다.


그는 음악에 먼저 탐닉카지노 게임 사이트. 어릴 때부터 가무를 좋아했으며, 피아노를 즐겨 연주카지노 게임 사이트. 러시아 민속음악과 대중음악뿐만 아니라 서구 클래식 음악에도 심취카지노 게임 사이트. 나이 들어 오페라 작곡에도 능력을 발휘하고 당대 저명한 음악인들과 교유한 것은 음악에 대한 남다른 애정 때문일 것이다. 음악에 대한 관심은 그의 많은 문학작품에 고스란히 스며있다.


문학에 대한 관심은 독서 욕구에서 확인할 수 있다. 그는 13세 무렵부터 독서광의 면모를 보였다. 세상이 요구하는 대부분의 교과목에는 별 흥미가 없었지만 다양한 분야 책 읽기는 누구 못지않게 좋아카지노 게임 사이트. 성경과 각종 고전, 문학 작품을 가리지 않고 읽었다. 그리고 무언가 글을 쓰는데도 관심이 많았다.


그는 카잔 대학 시절 성병으로 병원 신세를 지면서 깊은 반성과 함께 자기 주도적 인생 설계를 시작한 것으로 보인다. 톨스토이는 카지노 게임 사이트 회고한 것처럼 15세 어린 나이에 ‘자기 인생은 카지노 게임 사이트 개척하고 카지노 게임 사이트 책임져야 한다’라는 사실을 깨달았던 아이다. 크게 늦지 않았으니 다행이다. 인문학자 박홍규는 저서 ‘내 친구 톨스토이’(들녘, 2015)에서 이 시점을 의미 있게 묘사했다.


“톨스토이는 이를 반성하여 입원 며칠 뒤부터 처음으로 일기를 씁니다. 죽기 전까지 계속 썼어요.그의 일기엔 타인에 대한 언급이 거의 없습니다. 오로지 자신의 삶에 대한 명상, 계획, 반성 등을 기록하면서 자신을 곧추세우는 데 집중합니다. 그는 이때부터 자신의 카지노 게임 사이트 철저히 분석하고 비판하며, 가혹하게 몰아붙여요. 일기와 함께 편지를 쓴 것도 카잔 시절부터입니다. 그는 평생 1만 통이 넘는 편지를 썼고, 5만 통 이상의 편지를 받았다고 해요.”


방탕한 생활은 이후에도 상당기간 계속되었지만 22세 무렵부터 소설을 쓰기 시작하면서 전혀 새로운 삶이 펼쳐진다. 군복무 중이던 24세 때 펴낸 첫 작품 ‘유년시절’이 문학잡지에 게재되면서 작가로서의 위대한 행진이 시작되었다.


인생은 역시 카지노 게임 사이트 만들어 나가는 것이다. 톨스토이는 방황의 늪에서 카지노 게임 사이트 뛰쳐나와 미련 없이 많은 소설을 썼고, 당대에 이 세상 최고의 명성을 얻었다. ‘참회록’을 발표한 54세 이후에는 시대를 앞서가는 도덕군자의 인생을 살았다.


대문호는 세상과 이별하기 3년 전, 아이들이 읽는 잡지에 이런 말을 남겼다고 한다.


"어른들의 말이 아니라 자기 마음속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라. 그리고 자신을 믿어라.”(박홍규의 ‘내 친구 톨스토이’)


톨스토이야말로 자기주도적 삶을 기획하고 실행에 옮긴 대표적인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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