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래알만 한 진실이라도, 박완서
학교를 다녔으면 중3일 둘째의 검정고시 시험을 준비 중이다. 이번 주가 원서 접수 기간이라 수험표에 들어갈 사진이 필요하다. 문득 저런 얼굴로 수험표 사진을 찍어도 될까 걱정이 되었다. 아이의 코밑에 콧카지노 쿠폰이 잔뜩 자라있기 때문이다.
"수험표 사진을 찍으려면 면도를 해야 할 것 같은데" 했더니 둘째가 답한다.
"왜 그래야 하는데?"
말문이 턱 막혔다.
"공식적인 사진인 데다가 너는 청소년인데 콧카지노 쿠폰이 있으면 좀 그렇지 않을까? 카지노 쿠폰을 밀고 사진만 찍고 다시 기르면 되잖아."
"굳이 왜 그래야 하는데?"
으아, 답답해진다. 공식적인 사진에 카지노 쿠폰이 있는 중학생이라니. 이거 좀 이상한 거 아닌가?
나는 한 발 더 나아갔다.
"시험장에 들어갈 때 가져갈 청소년증도 만들어야 하는데, 그것도 콧카지노 쿠폰 있는 대로 찍을 거야? 청소년증은 주민등록증처럼 너를 증명하는 거고, 몇 년을 가지고 다녀야 하는 거야. 내년에 콧카지노 쿠폰 있는 사진이 싫어지면 어떻게 할 건데?" 했더니 아이가 말한다.
"그때는 사진을 바꾸면 되는 거 아니야?"
아이 말이 맞는 것 같은데 내 말도 맞는 것 같다. 이럴 때는 큰 아이에게 물어봐야 한다. 큰 아이의 의견을 물어보았다. 답을 해줄 줄 알았던 큰 아이는 핸드폰을 보고 있었다. 뭐 하는지 물어보니 검색을 하고 있단다.
"뭐를 검색해?"
"주민등록증에 콧카지노 쿠폰 있는 사진 써도 되는지 알아보고 있어."
큰 아이에게 이 문제는 허락의 문제가 아니라 규정의 문제였다. 검색하는 큰 아이를 보고 있자니 조금씩 내가 과하게 생각하고 있는 것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큰 아이가 나에게 물었다.
"주민등록증에는 콧카지노 쿠폰 있는 사진 써도 된대. 청소년증은 더 규정이 약해서 괜찮다는데? 엄마는 콧카지노 쿠폰 있는 청소년증을 쓸 때 뭐가 문제일 것 같아?"
"청소년증을 사용하려고 내밀 때마다 어른들이 쳐다보지 않겠어?"
"어른들의 그런 시선이 당사자가 괜찮으면 아무 문제 없는 거 아니야?"
큰 아이의 답까지 듣고 보니, 틀린 말이 하나도 없었다. 청소년 증은 공식 시험을 보거나 요금을 할인받거나 할 때 신분을 증명하기 위해 사용된다. 아주 가끔 사용된다는 뜻이다. 그때마다 받는 어른의 시선이 뭐가 그리 문제일까. 게다가 둘째 아이는 콧카지노 쿠폰에 대한 어른들의 시선을 이미 넘어본 경험이 있다.
둘째는 중1 때 즈음부터 면도를 시작했다. 원래 몸에 털이 많아 친구들에 비하면 좀 이르게 면도를 하기 시작했다. 이모부에게 생일선물로 좋은 면도기를 받았고, 아빠에게 면도하는 방법을 배웠다. 처음에는 1~2달에 한 번 정도 신기해하며 재미있게 면도를 했다. 그런데 이제는 일주일에 한 번은 면도를 해야 한다. 면도가 귀찮아진 아이는 카지노 쿠폰을 기르겠다고 결심했다. 나는 네 얼굴이니 네가 관리해라 했다. 나는 청소년의 외모에 대한 권리는 그 자신에게 있다고 생각하는 편이다. 문신처럼 나중에 후회할 일이 생길지도 모르는 것만 아니면 대부분 막지 않는 편이다. 문신도 어른이 되면 본인의 선택이다. 자기 몸에 새겨지는 건데 다 알아보고 하겠지 생각한다.
그러나 둘째의 콧카지노 쿠폰은 추석을 지나 사라졌다. 추석 때 할머니 집에 갔다가 혼쭐이 났기 때문이다. 어른들부터 사촌 형들까지, 아이의 콧카지노 쿠폰을 보고 저게 뭐냐며 부정적으로 말했다. 도착한 날 한 번만 하는 것도 아니고 다음 날도, 헤어질 때도 했다. 나는 속으로 왜 남의 외모에 저렇게 신경을 쓰는 걸까, 청소년기 마음대로 이것저것 실험해 보면 안 될까 생각했지만, 친척들을 말리지는 않았다. 나에게도 뭐라고 하는 친척들에게 "저는 괜찮아요. 자기 얼굴인데요 머"라고 답만 해줬을 뿐이다. 집에서 듣지 않았던 이야기를 명절 내내 들은 아이는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면도를 해야겠어" 하고 말했다. 그리고 다시 귀찮은 면도를 시작했다.
그러던 아이가 작년 말 즈음부터 다시 카지노 쿠폰을 기르기 시작했다. 카지노 쿠폰 사이에 뾰드락지도 나고, 카지노 쿠폰에 뭐가 묻기도 했지만 꾸준히 길렀다. 턱 가운데로도 세로로 카지노 쿠폰이 났다. 그리고 설날이 왔다. 다시 친척들을 만나야 했다. 이번에는 큰 아이의 긴 뽀글 머리도 어른들의 지적질의 대상이 되었다. 에센스를 발라라, 네가 하고 싶어서 한 거냐 등등. 큰 아이, 둘째 아이 모두 친척들의 지적질에 대한 스킬이 생겼다. 큰 아이는 웃으면서 "에센스 가끔 발라요, 집에 에센스 있어요, 집에 가서 바를게요" 하는 센스를 장착했고, 둘째 아이도 웃으면서 "저는 카지노 쿠폰 기르는 게 좋아요. 계속 기를 거예요"라고 답했다.어른들의 말문이 막혔다.
이렇게 설 명절을 넘긴 아이는 지금도 역시 콧카지노 쿠폰을 가지고 있다.
생각해 보니, 아이는 콧카지노 쿠폰을 기른 채로 학원도 가고 편의점도 간다. 동네 어른들도 만나고 나와 같이 지하철을 타고 미술관, 박물관을 다닌다. 아무 문제가 없었다. 그런데 수험표에 들어가는 콧카지노 쿠폰이 뭐가 문제라고. 심지어 여권 사진에도 콧카지노 쿠폰이 있어도 된단다. 둘째 아이 콧카지노 쿠폰 덕에, 청소년의 외모에 대한 어른들의 과한 침해(도덕적으로 무해한 외모를 원하면서도 성적 대상화하는)에 분노해왔던 내 안에 남아있는 벽을 보았다.
콧카지노 쿠폰이 있는 채로 수험표에 담길 사진을 찍었다. 온라인 접수할 거라 집에서 찍은 사진도 괜찮다. 아이를 흰 벽에 세워두고 사진을 찍는데, 콧카지노 쿠폰투성이인 아이가 막 웃는다. 왜 웃냐고 하니 그냥 막 웃음이 난단다. 앳된 얼굴에 콧카지노 쿠폰을 잔뜩 달고 삐쭉삐쭉 삐친 머리를 하고 웃는다. 머리에 물을 발라주고 웃으면 안 된다고 입을 다물어야 한다고 주의를 주고 사진을 찍었다. 몇 년 후 자기 사진을 보고 뭐라고 할지는 알 수 없다. 그때의 아이는 어떻게 변해있을지 알 수 없으니.. 그래도 지금 콧카지노 쿠폰 기르는 것이 좋다 하니 마음껏 길러보라고 해주련다.
<모래알만 한 진실이라도에 새해에 찾아오는 손주들에게 성적 이야기를 하는 것보다는 키를 재볼까 생각하는 장면이 나온다.
올해부터 나도 세배 오는 손자들 키나 재볼까. 해마다 키를 재보고 잘 먹고 무병해서 키가 많이 자란 놈을 칭찬해 주는 할머니가 성적부터 묻고 안달하는 할머니보다 훨씬 귀여울 것 같다. 젊은이가 들으면 어느새 망령 났다고 할지 모르지만 이왕이면 귀엽게 늙고 싶은 게 새해 소망이다.
- 모래알만 한 진실이라도, 박완서, p169
작가님이 옆에 계시다면 아이들 키재기는 절대로 하지 말라고, 아이들에게 '키'라는 것은 '성적'만큼 껄끄러운 소재라는 것을 말씀드리고 싶다. 명절날 어른들이 툭툭하는 성적, 연애, 취업, 결혼, 출산 등의 질문은 모두 약자가 생기는 질문이다. 잘할 수 없어 힘들어하고 있는 주제를 꼭 꺼내서 물어야 할까. 키 같은 외모에 대한 이야기도 마찬가지 주제다. 키 작은 아이들, 안 크는 아이들은 어떻게 하라고. 아이들은 있는 그대로 예뻐하기만 해도 충분하지 않을까.
둘째에게 콧카지노 쿠폰을 다듬는 가위가 필요한지 물어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