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긴밤 슬로리딩(1)
가끔씩 노든의 카지노 게임을 멈춰 세우는 풍경들이 있다. 저 멀리서 몰려오는 시커먼 먹구름이라던가, 그 속에서 번쩍이는 번개, 아침 해가 떠오를 때 주변의 풀들이 반짝이는 광경, 하늘에서 떨어지는 첫 빗방울이 남긴 자국, 그 길고 키가 큰 풀들이 바람에 몸을 맡기고 이리저리 움직이는 모습에 노든은 압도되었고, 시간을 충분히 들여 눈앞에 펼쳐진 풍경을 감상했다.
<긴긴밤 19쪽
이른 아침 다용도실 작은 창문 틈 사이로 태양이 붉게 떠오르는 걸 볼때,
길가에 늘어선 가로수에 푸릇푸릇 연초록 빛 새 이파리가 보일 때,
엊그제는 안 보이던 노란 개나리가 만개했을 때,
길 건너 신호등에서 이제는 고등학생이 된 제자의 무심한 표정을 발견했을 때,
뒤뚱뒤뚱 많은 짐을 들고 건널목 파란불 시간을 5초 남았는데아직도 건너고 계신어르신을 볼 때,
오토바이가 내달리는 길가를 핸드폰에 얼굴을 처박고 걸어 다니는 작은꼬마를 볼 때,
어린아이를 둘러업고 두 손에는 가방과 마트서 장 봐온 짐이 잔뜩 들려진 어린 엄마를 볼 때
나는 시선이 멈춘다.
계절이 바뀌는 것을 발견하고 멈추고, 위험하고 안타까운 순간을 감지하고 멈추고 그렇게 조용히 세상이 계절 따라 변화하는 것에 감사하고 위험한 순간, 그들의 카지노 게임이 무사하길 기도하고 바라본다. 특히나 버스를 타거나 지하철을 탔을 때, 핸드폰이 아닌 세상에 눈이 가 있는 것만으로도 누군가에게 큰 기여를 하고 있는 것 같은 이 느낌, 나만 그런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