빨대라는 말도 싫어한다
다른 업계에서는 일해 본 적이 없어서 어떤지 모르겠는데, 언론 바닥에는 사람을 수단으로써 대상화하는 것을 용인하는 데서 파생된 은어가 흔하다. '빨대'가 대표적이다. 빨대란 기자와의 친분 내지 상호 이해관계의 합치 등을 바탕으로 어떤 조직이나 업계 내부의 사정을 기자에게 소상하게 전해 주는 취재원을 이른다. 내용물이 밖으로 새 나가지 않고 단 한 사람의 기자에게만 전달된다는 함의를 담아 빨대라고 부르는 모양이다. 많은 단독 기사들이 그런 빨대로부터 비롯되고, '빨대가 많다'는 말은 보통 기자의 취재 능력을 칭찬하는 말이다.
하지만 나는 빨대라는 말을 들을 때마다 영 적응이 되지 않아서 흠칫 놀라곤 한다. 카지노 게임을 나와 교류하는 인격체가 아니라 정보의 소스 정도로만 여기는 느낌이라 잘 쓰지 않는다. 어떤 선배는 "나도 카지노 게임을, 카지노 게임도 나를 이용한다고 생각하면 된다"라며 나를 다독였었는데, 누군가를 이용해서 뭔가를 도모한다는 것이 어떤 감각인지 잘 모르겠다.나도 내부 소스를 받아서 기사를 쓴 적이 없지는 않지만, 바탕에는 적어도 내가 기사를 개판으로 쓰거나 카지노 게임 보호를 제대로 못하진 않을 것이라는 상호 신뢰가 있었다고 믿는다. (나한테 늘 "보현 기자한테 좋은 걸 못 줘서 미안해요"라고 말하는 사람이었다.)
비슷한 맥락에서 '카지노 게임'을 '관리'한다는 말도 싫다. '인맥 관리'라는 말을 싫어하는 것과 비슷하다. 물론 무슨 뜻인지는 알겠다. 뭘 맡겨 놓은 듯이 친하지도 않은 카지노 게임에게 전화를 해서 코멘트를 내놓으라고 하는 것은 내가 제일 싫어하는 일이다. 취재가 잘 되지 않는 것은 물론이다.다만, 결국 이 일도 사람이 하는 일인데, 사람을 무슨 물건처럼 관리한다는 행위에는일 외적으로 주고받을 수 있는 호의의감정과 존중이 개입될 여지가 없는 것처럼 들린다. 사람을 쓸모에 따라 재단하는 것 같아서 싫기도 하다.
작년 여름에 휴가를 내고 비수도권 지역에서 근무하는 친한 취재원을 만나러 갔을 적에동료들로부터 "보현이 취재원 관리 열심히 하네?"라는 이야기를 듣고 당황했던 것도 그 때문이다. 나는 그냥 그 사람이 보고 싶어서, 또 그 사람이 근무지에 놀러 오라고 해서 갔을 뿐이었다. 출입처를 옮기고 나서도 계속 연을 이어 나가는 사람들도 딱히 '쓸모'를 고려해서 만나는 것은 아니다. 그냥 내가 좋아해서 만날 뿐이다. 누군가 보기에는 약지 못하고 멍청해 보일 수도 있는데, 난 30년 이상을 이렇게 살아와서 어쩔 도리가 없다. 그냥…… 진심은 통한다고 믿는다. 내가 출입처에서 가장 '날아다닐' 때 만났던 취재원들로부터 그렇게 배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