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물 안에서 뒤처진 줄도 모르는 개구리가 되지 않으려면
많은 기자들은 이 작은 우물 안에서 자기들이 최고로 잘난 줄 안다.기사라는 콘텐츠를 독자들에게 제공하는 한편 사회의 공기(公器)로서의 역할을 수행하려면 기자의 역할이 필수 불가결하다고, 그러므로 언론사를 떠받치는 기둥은 기자들뿐이라고 믿는다.언론사의 또 다른 구성원인 디자이너나 개발자나 경영지원실은 기자들의 '따까리' 정도로 여긴다. 코딩도 할 줄 모르고 포토샵도 프리미어도 엑셀도 아래아한글도 잘 만질 줄 모르면서 그렇게 제 잘난 맛에 산다.
나도 그런 재수 없는 인간들 중 한 명이긴 했는데, 산업부에서 기업들을 출입하기 시작하면서 허구한 날 망치로 뒤통수를 세게 얻어맞는 것 같은 기분을 느끼며 강제로 개조되고 있다. 대기업은 물론 중견·중소기업들도 이미 피할 수 없는 대세가 된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Digital Transformation·DX)'에 열을 올리는 판국이다. 보수적이고 의사 결정이 늦기로 유명한 업계들도 예외는 아니다. 사업가적 본능의 영역에서 경영진들이 그런 결단을 내렸을 것이다. 현상 유지는 도태의 또 다른 얼굴일 뿐일진대, 오로지 언론사만 위기의식 없이 세월아 네월아 하는 중이다.
볼이 파울이 되고, 파울이 안타가 되고, 안타가 홈런이 되듯이, 여러 가지 시도를 한 결과 갖은 헛발질 끝에 괜찮은 결과물들을 얻어 내는 회사들이 있기는 하다. 어디라고 언급하지는 않겠지만, 이 느려 터진 세계에서 그런 시도를 한다는 것 자체가 박수를 받을 만하다. 그런 회사들과 비교하면 나나 우리 회사는 뭘 하고 있을까. 당장 우리 회사 홈페이지만 봐도한숨이 나온다. 후지기 이를 데 없다. 2000년대 중후반쯤의 언론사 홈페이지들이 대체로 다 이런 모양새를 하고 있었을 것이다.
남들 다 하는 인터랙티브 뉴스 같은 걸 만든다는말도 들어 본 적이 없다. 포털에 종속되는 구조에서 벗어나서 자체 PV(Page view)를 높이려면 독자가 언론사 홈페이지에 머물 만한 동력과 유인을 만들어내야 할 테고, 그것을 가능하게 하는 힘은 콘텐츠에서 온다. 하지만 우리 회사는 말로만 "좋은 기사를 써야 한다"라고 할 뿐이지,오로지 기자들을 마른걸레 짜듯 쥐어짜서 기사 생산량만을 늘린 다음 조회수를 짜내기에 바쁘다.
특정 이슈가 불거져서 사회 전체를 시끄럽게 하는 날이 오면 뒤늦게 각 부서별로 기자들을 차출해서 TF팀을 꾸리기는 한다. 짐작하겠지만 이 역시 조회수 짜내기의 일환일 뿐이다. 사람들이 많이 찾으니까 관련된 기사를 최대한 많이 써야 한다는 취지다. TF팀의 존재가 기사의 질을 담보하지는 않는다. 내 기사가 해괴망측한 제목이 달린 채로 포털에 걸려서 뭇매를 맞는 꼴을 보고 있으면 정말이지 그 자리에서 혀를 깨물고 죽어 버리고 싶다. 위에서 쪼아 대는 서슬에 못 이겨 있으나 마나 한 기사 한 꼭지를 써내고 바이트를 낭비하는 일도 숱하다.그야말로 2000년대 수준에 머물러 있다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언론 산업은 사양산업'이라고 자조하게 된 것도 어찌 보면 스스로들 자초한 일이다. 생각해 보면 기자들의 괴상한 자부심은 그것 하나밖에 내세울 게 없는 데서 비롯된 모종의 열등감 비슷한 게 아닌가 싶기도 하다. 남들은 10년 뒤를 향해 달려가는데, 언론사들만 10년 전에 머무르고 있다면 뒤처져 보이는 게 당연하다.이렇게 불평을 늘어놓는 나 역시 휴가 중이기 때문에 한가한 고민을 할 시간이 있어서 이런 글을 쓰고 있을 뿐, 다시 현업에 복귀하면 아마 하루살이처럼 허덕거리기에 바쁠 것이다. 이 일이 재미있고, 또 이 일을 좋아하기는 하지만, 언제까지 이대로 계속 일을 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다. 제자리에만 머무는 멍텅구리가되고 싶지 않다.
[사족] 최승영·강아영, "조직·업계에 느낀 실망이 임계점 넘을때, 기자는 떠난다", 「한국기자협회」, 2021.11.02.
(…) 가장 시급한 지점은 언론 본령의 가치를 방점에 둔 뉴스룸의 노선 설정과 실행이다. 언론인으로서 열정과 꿈이 가장 클 시기인 젊은 기자들이 일의 의미와 가치를 실현하게 도움으로써 동기를 부여하는 방법론으로서다. “기사를 쓰고 지면을 만들고 사회적 파급을 일으키는 일이지 않나. 아무리 신뢰가 떨어지고 인정을 안 해줘도 책임감과 사명감은 자연스레 쌓이는 거고. 다들 받는 월급에 비해 너무 진지하게 사회 문제를 고민하고 토론하고 답을 찾으려는 거 아닌가 싶기도 한데 (웃음) 다시 언론사를 선택하면서 ‘내가 이 일을, 이 사람들을 좋아하는구나’ 싶었다. 일반회사엔 못 가겠다 싶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