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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테호른 Dec 22. 2021

카지노 가입 쿠폰 최고 명군(名君)의 두 얼굴



6월 4일 이른 아침, 황태자 이건성(李建成)과 동생 이원길(李元吉)이 현무문에 들어섰다. 함께 온 정예병 2,000명은 문밖에 남겨 둔 채였다. 두 사람은 경비가 엄중한 궁성에 복병이 숨어있으리라고는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 임호전(臨湖殿)까지 와서야 이상한 낌새를 느끼고 서둘러 말을 돌리려고 했지만, 이미 늦었다.

“대형(大兄)! 어디 가시는지요?”

그 말에 깜짝 놀란 이원길이 이세민을 향해 활을 쏘았지만, 맞히지 못했다. 그러자 이세민이 곧 이건성을 향해 활을 쏘았고, 황태자는 말에서 떨어져 즉사했다.

… (중략) …

깜짝 놀란 이원길은 허겁지겁 아버지 고조가 있는 무덕전(武德殿)으로 도망쳤고, 울지경덕(尉遲敬德)이 곧바로 추격해 화살을 쏘았다. 화살은 이원길의 등 정중앙에 꽂혔고, 원길은 다시는 일어나지 못했다. 잠시 후, 울지경덕은 이건성과 이원길의 머리를 현무문에 걸었다.

… (중략) …

이 소식을 들은 고조는 모든 것을 포기하고, 이세민을 황태자로 세워 대권을 이양하겠다고 선언해야 했다. 이세민은 즉시 병사를 보내 이건성의 다섯 아들과 이원길의 다섯 아들을 남김없이 죽여 후환을 막았다.

― 《자치통감》 중에서


이것이 바로 당나라판 왕자의 난인‘현무문의 변(玄武門之變)’이다. 그렇게 해서 이세민은 정변 3일 후 황태자가 되었고, 두 달여 후인 9월 4일 당의 제2대 황제로 등극하였다. 그가 바로당 태종이다.


이세민이 형이자 황태자인 이건성과 동생 이원길을 죽이고 황위를 차지한 것은 크게 놀라운 일은 아니다. 중국사에서 그런 일은 꼽을 수 없을 만큼 많기 때문이다. 다만, 눈길을 끄는 것은 그런 그가 중국 역사상 최고의 ‘명군’ 중 한 명으로 꼽힌다는 점이다. 그 치세에 중국 역사상 최고 전성기를 누렸을 뿐만 아니라 가장 모범적인 정치를 보였기 때문이다.


황위를 찬탈한 패륜아 당 태종은 어떻게 해서 중국사를 대표하는 명군이 될 수 있었을까.


사실 그가 카지노 가입 쿠폰이 될 수 있었던 데는 수양제(隋煬帝, 폭정을 일삼아 수나라의 멸망을 초래한 수나라의 제2대 황제)의 공이 매우 크다.그의 실정 때문에 수나라 중신이었던 그의 아버지 이연이 나라를 가로챌 수 있었을 뿐만 아니라 그의 아들인 그 역시 황제가 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또한, 양제의 폭정에 대한 기억이 생생했던 시점에 황제가 된 것 역시 그의 치적을 더욱 돋보이게 카지노 가입 쿠폰는 것이 역사학자들의 공통된 견해다.


형과 동생을 죽이고 황위를 찬탈한 부끄러운 ‘흑역사’ 역시 그가 카지노 가입 쿠폰이 될 수 있었던 이유 중 하나다. 황제가 된 후 그는 밑에서 올라오는 상소와 간언(諫言)을 열린 마음으로 받아들이고자 했다. 그런데 문제는 민심이었다. 민심을 얻어야만 자신의 행위를 어느 정도 정당화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그러다 보니 어떤 황제보다 민심에 민감했고, 민심을 얻기 위해 다방면으로 노력했다. 승려와 도사들의 환속 중지와 계급이나 서열을 따지지 않고 신하들의 상소를 받은 것, 3천 명이 넘는 궁녀들에게 자유를 주고 풀어준 것 역시 그 때문이었다.


또한, 거기서 더 나아가이건성과 이원길 일파의 죄 역시 더는 묻지 않겠다고 선언하고, 그 일파를 끌어안았다.그 대표적인 인물이 바로 이건성의 참모였던 설만철(薛萬徹)과 위징(魏徵)이었다. 특히 위징은 오래전부터 이건성에게 이세민을 죽여야 한다고 한 인물로 그와는 견원지간과도 같았다. 그런데 그런 그를 오히려 중용한 것이다.


하지만명군(名君)이기는 하지만, 성군(聖君)은 될 수 없다는 것이 역사학자들의 공통된 의견이다.


자신의 행위를 정당화하고, 약점을 미화하기 위해서 사서를 제멋대로 고쳐서 후대 황제들에게 역사서를 자기 멋대로 쓰게 하는 악습을 남겼기 때문이다. 이에현무문의 변과 관련된 기록 역시 직접 수정을 명했는가 하면, 위징이 죽은 후 그가 올린 상소 역시 별도로 기록하기도 하였다.


또한, 말년으로 갈수록 초심을 잃은 나머지 신하들의 간언을 귀담아듣지 않아 후계자 선정 등에서 실수했을 뿐만 아니라 고구려를 무리하게 침공하여 패배함으로써 국력을 크게 쇠퇴시키기도 했다.


그러다 보니그를 부정하는 이들 중에는 아예 수양제와 동급 내지는 그 이하의 인물로 평가하기도 한다. 심지어 거품만 잔뜩 낀 인물이라며 혹평하는 이들도 적지 않다. 그렇다고 해도 당이라는 나라를 말할 때 그를 언급하지 않고는 설명할 수 없을 만큼 그의 존재감은 매우 크다. 그만큼 뛰어난 황제였기 때문이다. 명예와 민심을 중시했던 그가 이런 평가를 듣는다면 어떻게 생각할지 자못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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